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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3. 2023

<한옥 대목반>점(點), 선(線), 면(面), 형(形)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세번째 이야기

   “오늘 홍어회와 막걸리를 사갈 테니까, 형님 집에 가도 되나요?” 

  한옥학교 동료인 용기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구나. 오죽했으면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없던 용기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할까?’

  이런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실 전날 술을 많이 마신 나는 그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용기가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몇 동료들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용기가 술을 잘 마시는 줄을 알기에, 나 혼자 감당해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한옥학교 수업이 끝나고, 6~7명의 동료들이 내 집으로 왔다. 용기의 손에는 홍어회, 막걸리와 함께 수육용 냉동 돼지고기가 들려 있었다. 요리사 출신인 종석이가 팔을 걷어 부쳤다. 순식간에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수육과 홍어회가 식탁위에 차려졌다. 


  용기가 발목을 다쳐서 깁스를 한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처음 의사가 진료했을 때는 4~5주 정도면 깁스를 풀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두 달이 되어가는 데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었다. 

  용기는 복싱종목의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평상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었기에, 의사가 말한 것보다 빨리 나을 줄 알았다. 목발을 짚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아픈 다리때문에, 대부분의 실습에서는 구경만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용기였기에, 빨리 낫지 않는 다리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던 모양이다.  

  용기는 식탁에 앉자 마자 큰 대접에 막걸리를 붓더니, 한번에 다 마셔 버렸다. 이렇게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켜더니,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이곳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이 너무 좋고, 이렇게 술 한 잔씩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너무 행복해요.”

  불그스레한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마치 사랑고백을 하듯이 수줍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들도 덩달아 행복한 표정으로 용기를 바라봤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강릉에 놀러 갔던 용식이가 콩비지를 사다 주었다. 코로나의 PCR검사를 받았던 용식이, 정원이, 그리고 유명이가 학교를 하루 쉬면서, 강릉 순두부마을에 놀러 갔다 온 모양이다. 우리는 콩비지까지 맛있게 끓여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즐겼다. 나의 삶에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준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즐겁게 웃고 있는 동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문득 그날 만들었던 한옥집의 아름다운 처마선(線)이 생각났다. 동료들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진 탓일 것이다. 

  처마의 선은 앙곡(昻曲)과 안허리곡(曲)으로 구성된다. 앙곡은 지상에서 한옥의 지붕을 올려다 보았을 때, 처마의 가운데 부분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이 올라가도록 처리한 선이다. 그리고 안허리곡은 한옥을 지붕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귀퉁이 처마 끝부분보다 가운데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간 선이다. 여자의 잘록한 허리 모양과 같다는 의미에서 안허리곡이라고 부른단다. 

  아래 덕수궁 중화전 지붕 사진에서 보듯이, 안허리곡과 앙곡이 만들어낸 처마의 선이 물결치듯이 아름답게 둘러치고 있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이다. 

  

  처마의 선을 만들어주는 부재는 평고대(平交臺)이고, 이 평고대의 곡선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추녀(春舌)이다. 추녀는 한옥 지붕의 네 모서리에 45도 방향으로 걸리는 부재이다. 서까래 바깥쪽으로 뻗어나온 부분을 하늘방향으로 약간 휘어지게 가공을 한다. 평고대가 앙곡과 안허리곡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추녀와 평고대라는 하나 하나의 목재가 만나서, 한옥의 가장 아름다운 처마선을 만들어낸다. 처마선은 서까래 등의 부재들과 더불어 지붕이라는 면(面)을 구성한다. 지붕은 기둥, 대들보 등과 함께 한옥이라는 아름다운 형태(形態)를 만든다. 결국 추녀와 평고대 등의 점(點)이 만나서 아름다운 한옥이 탄생하는 것이다.  

  용기가 홍어회와 수육용 돼지고기를 가져온 날이, 나에게는 행복함을 느끼는 한 점(點)이었다. 특히 다리에 깁스를 하고도 수업에 빠지지 않았고, 예상보다 회복 기간이 길어 졌음에도 웃을 수 있는 긍정의 힘이 마음 깊이 다가왔던 날이다. 나는 30여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후부터 이렇게 즐거운 추억들이 모여 있는 스토리(線)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스토리가 모여서 만들어진 나의 ‘행복함’이 나의 삶의 한 면(面)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온갖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나의 삶이라는 형체(形體)안에서, ‘행복한 면(面)’을 많이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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