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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0. 2023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며느리취(금낭화) 이야기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열아홉번째 글

  5월 어느 날, 산채마을의 팀장님이 사랑채 뒤뜰에 피어난 금낭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 옛적 어느 시골 마을에 착한 며느리가 살았어요.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심하게 구박을 당하면서 지냈지요. 그녀의 남편이 건너마을로 머슴살이를 가게 된 사이에, 시어머니의 횡포가 더 심해졌데요.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밥이 잘 되었는지 보려고, 솥을 열고 밥 몇 알을 씹어 먹었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시어머니가 몽둥이를 들고 부엌으로 와서, 며느리가 버릇없이 밥을 먼저 먹는다고 사정없이 때렸데요. 심하게 맞은 며느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죠. 

  아내를 사랑한 아들이 마을 앞 솔밭이 우거진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 자리에서 금낭화가 피기 시작했어요. 그 모습이 마치 며느리가 밥알을 씹다가 죽은 모습과 같다고 해서, ‘며느리 취’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박대하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흔한 스토리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나의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느리는 새로운 사회에 진입하려는 신참이고, 어머니는 기존 사회의 질서를 옹호하려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기존 질서에 편입시키려고 신참을 교육시키려 든다. 때로는 신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온갖 박해를 가하기도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했던 것처럼. 

  시골도 마찬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귀농이나 귀촌한 사람들이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가, 기존에 살고 있던 주민들과의 갈등이다. 나도 역시 귀농/귀촌을 하게 되면 겪게 될 가능성이 있다. 

  며느리 취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날은, 며칠 전 동료들이 수확을 도와준 곰취 밭 사장님이 보내주신 닭과 막걸리로 회식을 한 날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초기에, 농촌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이 바로 이 회식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회식을 한 것 같다. 

  또한 ‘농촌에서 살아보기’의 교육생이라는 지위는 산채마을 주민들에게 부담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치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산채마을의 대표님과 팀장님이 마을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을 많이 주선하였다. 덕분에 ‘금낭화’ 이야기에 얽힌 며느리가 받았던 배척감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지낼 수 있었다. 


  금낭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날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2022년 7월말에 마을 잔치가 열렸다. 중복날이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동료들이 삼계탕을 대접하고자, 마을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다. 삼계탕을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고, 미니 파크 골프도 즐기는 시간이었다. 산채마을에 사는 동네 분들 70~80여명이 왔다.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분들이 많았다. 대표님도 역시 금년에 처음 본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의 귀촌한 사람들은 마을 모임에 거의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채마을 주민의 70%정도가 귀농 또는 귀촌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중복잔치를 끝내고 교육생들과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대표님은 외지 사람들이 산채마을에 정착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대기업 사장을 역임했던 어떤 분은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꼭 자기 자랑을 한다는 이야기, 전원주택 단지에 살고 있는 어떤 분은 농사짓는 이웃에 대한 생활민원을 자주 넣는다는 이야기,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친 사람 이야기 등등… 결국 이들은 마을에서 외톨이로 지내거나 사라졌다고 한다. 대기업 사장 출신인 귀촌인을 누구도 마을 모임에 초대하지 않고 있고, 생활민원을 자주 넣는 사람을 상대도 하지 않았다. 사기를 친 사람은 마을에서 쫓겨나듯이 사라졌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역시 ‘이곳도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런 저런 소문이 떠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소문은 해당되는 사람뿐 아니라 외지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공동체에 입성할 때 느낄 수 있는 장벽이 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장벽이 없는 조직이나 사회는 없을 것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년말이면 조직개편을 하곤 했다. 새롭게 구성된 팀내에서의 갈등은 흔한 것이었다. 서로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회사 생활을 하는 자세도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었다. 한참동안을 부대끼고 나서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진다. 그러기까지 언쟁뿐 아니라 심하면 몸싸움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둔내면으로 이사온 지 겨우 한달이 지나간다. 지난 2년간 사귀었던 산채마을 사람들도 있지만, 이사온 집 주위에 사는 새로운 이웃들도 있다. 주민등록을 옮기면서 마을 회의에도 참석하였다. 지금까지 보다 훨씬 많은 마을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마을 주민들은 원주민, 귀농인, 귀촌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수십년을 서로 다른 생활환경과 이질적인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두 각자의 안경을 끼고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하지만, 때로는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틀, 생각의 관점을 나에게 집어넣으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무례하다고 느낄 만큼 거친 언행을 내뱉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낭화 이야기의 시어머니 마냥, 나를 잘 길들여진 며느리로 만들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사람을 만날 때 첫 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며느리와 같이 끝내 구박받다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가능하면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해야겠지.’라며 스스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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