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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18.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 영양생장과 생식생장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무번째 글

  곁순 따기는 보통 첫 번째 꽃이 피고 나서부터 진행한다. 곁순은 본줄기와 가지 사이에 있는 순을 말한다. 곁순 가지의 밑동을 살짝 밀어주면 떨어져 나간다. 첫 번째 꽃이 핀 토마토 한 그루에 3~5개의 곁순이 있어서, 이것들을 모두 따냈다. 5월말쯤 나는 동료들과 같이 토마토 곁순제거 작업에 들어갔다.

   토마토만 곁순 제거 작업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고추나 가지 등 열매채소들은 대부분 곁순을 따주어야 한다. 심지어 고추는 ‘Y’자 모양의 첫 번째 방아다리보다 아래쪽에서 자란 잎들을 모두 따주고, 방아다리에 생긴 첫번째 고추까지도 제거해준다.

  열매채소들의 곁순을 제거해주는 작업은 영양생장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곁가지가 지나치게 많이 자라면 영양분이 분산되면서, 본줄기와 주요 가지의 성장이 더디어 진다. 줄기와 잎, 뿌리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면, 광합성 작용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토양으로부터 영양분을 원활하게 섭취할 수 있다. 


  식물들은 영양생장을 한 뒤 생식생장으로 전환하면서, 꽃이나 씨를 가진 열매와 같은 생식세포들이 성장하게 된다. 고추나 토마토 열매는 자신들의 자손 번식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씨 주머니인 셈이다. 튼튼한 열매나 꽃이 맺히기 위해서는, 건강한 줄기와 잎을 만드는 영양생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동물들은 배 발생 초기부터 생식세포가 생긴다. 하지만 생식세포의 발달은 몸이 건강하게 자란 뒤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성장과정은 식물과 비슷한 셈이다. 건강하게 성장해야, 수컷과 암컷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건강한 부모가 건강한 새끼를 낳을 수 있다.’는 종족번식을 위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다.


  “지나치게 영양생장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토마토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 거예요.”

  내가 재배하고 있던 토마토 나무를 보고 멘토인 박선생님이 지적하였다. 토마토 본 줄기가 지나치게 두껍고, 곁줄기가 너무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반면에 토마토 열매의 성장이 더디었다. 

  “생식생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작물에게 절박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해요. 물도 소량으로 자주 주는 것보다는 가끔씩만 주고, 밤낮 온도차도 커질 수 있도록 관리해주고.”

  토마토나 고추와 같이 열매를 수확해야 하는 작물은,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이 균형있게 이뤄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열매가 맺히기 전에는 영양생장이 잘 이뤄져야, 본 줄기와 잎들이 건강하게 자란다. 하지만 열매 수확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토마토나 고추 열매에 영양분이 많이 가도록 유도해줘야 한다. 열매가 실해지고 맛있어지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식물의 생존에 위협을 받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생식생장이 강해지게 된다. 관수를 해주는 횟수를 줄이거나 밤낮 온도차가 크게 되면, 작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환경이 되면, 식물은 본능적으로 종족번식 욕구가 발동되게 된다. 항상 편안하게 성장하는 환경만이 최선은 아니며, 척박한 상황에도 처해봐야만 좋은 과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맛있고 큰 열매를 맺히게 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게 된다. 


  지나치게 영양생장만 한 토마토는 그 열매가 보잘 것이 없다. 물을 지나치게 자주 준 토마토는, 굳이 땅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어 나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열매나 꽃이 많이 달리면서 충분한 영양분을 요구하게 되더라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얕게 뻗어 내린 뿌리로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기에, 미래(후손)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은 탓이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기까지의 성장기에는, 나중에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할 때 필요한 육체적/정신적인 능력을 쌓아 가게 된다. 학교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친구나 이웃들과 생활하면서 정신적/사회적 역량을 축적해 나간다. 식물의 영양 생장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하더라도 많은 일들을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힘들지만 거친 환경에서 살아나가는 법을 시행착오를 통해서 습득하도록 해야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일 게다. 어차피 성인이 된 뒤에는 사회 환경에 혼자서 적응하고,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야 하니까. 

  

  언젠가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어미 호랑이가 아기 호랑이를 훈련시키는 모습을 본 기억이 떠오른다. 아기 호랑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어미 호랑이는 먹이를 가져다주는 대신 사냥하는 법을 가르쳤다. 여러 자식들 중에서 사냥을 잘 하는 호랑이는 맛있는 먹이를 많이 먹을 수 있게 한다. 어미 호랑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아기 호랑이들이 살아남는 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아기 호랑이가 커서 스스로 가족을 거느릴 수 있는 능력을 익힐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이다. 

 식물이나 동물 모두가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쌓여야, 비로소 가족과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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