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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2.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농촌의 물가

-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두번째 이야기

  “15톤 트럭 한 대의 흙을 사려면, 7만 5천원에서 8만원은 줘야해요.”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허총무가 내게 알려주었다. 내가 구입한 노지 밭은 원래 논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물기가 많았다. 장마철이면 발목까지 빠지는 곳이 있을 정도였다. 작물을 재배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면, 습한 토질을 개선해줘야 했다. 밭의 흙을 파서 유공관(有孔管)을 묻는 작업과 함께, 상부의 흙을 높여주는 성토작업도 진행해야 했다. 

  1년전만 해도 가까운 동네에서 흙을 구입하면 5만원 전후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7~8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조금 먼 곳에서 흙을 날라오면 10만원을 줘야 한단다. (조금 먼 곳이라야 기껏 5~10분 더 걸리는 거리이다.) 기름값이 올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최근에 하락한 국제유가를 감안할 때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물가는 무조건 상승하는 것이고, 그에 따라 ‘원자재값이 올랐다느니, 인건비가 상승했다느니’하는 변명이 붙어 다닐 따름이었다. 

  이 정도로 비싼 값을 주고 흙을 구입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이 되었다. 


  횡성군 둔내면에 터전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서울과 같은 도시와 비교해서 가장 차이를 많이 느끼는 것은 물가 수준이다. 거의 모든 제품의 물가가 도시보다 농촌이 비쌌다. 도시에는 많은 소비자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웬만한 기업들의 물류시스템이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니까. 농촌보다는 도시에 물자가 풍부하기에, 가격도 낮게 형성될 것이다. 

  규격화되어 있거나 대량생산이 이뤄지는 공산품의 가격차이는 거의 나지 않는다. 농촌지역까지 유통망이 잘 갖춰져 있어서,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 농산물이나 각종 서비스의 가격차이는 많이 난다. 

  “웃긴 것은 우리 동네의 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농산물 가격이 도시보다 더 비싸다는 거예요. 산지의 농산물 가격이 왜 비싼 지 이해가 안되네요.”

  2023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교육과정에 참여했던 후배중의 한 명이 한 말이다. 산지에서의 농산물 가격이, 도시보다 오히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농산물 역시 도시보다 농촌지역의 유통체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들은 거의 대부분 도시로 보내어진다. 농촌지역은 인구가 작은 데다가 자가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농산물 수요가 크지 않다. 큰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는 유통시스템이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급구조가 빈약한 서비스 업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비닐하우스 백평짜리 한 동을 짓는데, 천만원이 넘게 들어요.”

  둔내면의 한 농자재상에서 비닐하우스 설치가격을 물어보았다. 토마토 재배를 위해서 노지 밭에 몇 동의 비닐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다. 이 농자재상이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소문이 나서 견적을 부탁했다.

  “둔내의 농자재상에서 제시한 가격이 너무 비싼데요. 제가 지금 수천평의 밭에 비닐하우스 수십 동을 짓고 있는데, 한 동에 평균 팔백만원 정도밖에 안 들어가요.”

  얼마 후에, 수천평의 땅을 사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있던 멘토가 나에게 해준 조언이었다. 물론 한꺼번에 많은 비닐하우스를 짓고 있어서, 필요한 자재를 직접 생산공장에서 구입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닐하우스를 제작하는 전문가를 고용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일반 농자재상에서 붙이고 있는 제작 마진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구조이다. 

  일반 농자재상에서는 비닐하우스 한 동에 몇 백만원의 마진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져가는 이윤 폭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에서는 비닐하우스를 짓는 수요에 비해, 비닐하우스 제작을 해주는 공급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농부들은 비닐하우스 제작에 들어가는 원가 구조를 잘 알지 못한다. 시장규모가 작기 때문에 생기는 정보의 비대칭 현상이 심하다. 서비스 제공업자가 지나친 이익을 남기는 것이 가능한 구조이다. 


  인구 고령화의 영향은 농촌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추세이다. 농부들의 노령화로 노동력이 떨어지면서, 그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체하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점차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자그마한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인력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회사는 정부의 노동허가를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숙식도 제공해준다. 이외에도 외국인 근로자들의 한국 생활에 대한 관리감독도 같이 진행한다. 한국인들과 갈등을 빚게 되면, 한국 근로자들과 다르게 복잡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불법 체류자가 포함되어 있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수요가 있을 때면, 속칭 ‘감독’이라고 하는 한국 사람이 나서서 해당 농사일에 필요한 근로자의 숫자와 함께 인건비를 농부와 협상한다. 농사일을 도급제 형태로 맡아서 작업을 진행하곤 한다. 

  일년전까지만 해도 남자 외국인 근로자의 하루 일당은 15만원 전후, 여자 외국인은 12만원 전후에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17만원, 14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왜 일년만에 이렇게 일당이 많이 올랐는지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다. 단지 이웃집에서 이 가격을 지불하고 외국인 근로자들을 활용하였으니까, 나도 그렇게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소규모 수급시장에서 생기는 가격 정보에 대한 비대칭현상이다. 수요자인 농부는 가격 수준이 적정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농촌에서의 높은 서비스 가격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농업기반을 더욱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농산물 재배 원가를 올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민들의 생활물가도 높은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농촌에서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소규모 수급시장이기에 정부가 간여하기 힘들어서 그런지, 시장원리에 맡겨 놓는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장에서는 분산되어 있는 수요자보다는 소수 공급자의 nego power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오게 된다. 소규모 수급시장의 가격구조가 왜곡되지 않도록, 적정 수준의 가격체계가 형성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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