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Jan 28.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강제 요리

-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세번째 이야기

  수확철이 돌아왔다. 농촌에서 제일 풍성한 시기이다. 재배한 농작물을 출하해서 매출을 올릴 뿐 아니라, 이웃과 나눠 먹기도 하고 직접 이런 저런 요리를 해먹기도 한다. 농산물의 출하에 사용되는 박스 크기에 맞춰서 포장 작업을 하게 되면, 출하하기 어려운 B품 농산물들이 남는다. 농부들은 주로 이렇게 남은 농산물을 이용해서 이런 저런 요리를 해먹곤 한다. 

  나도 임대한 밭에서 토마토, 청양고추 등의 작물들을 수확할 수 있었다. 여분의 토마토가 생기면 손쉽게 주스를 만들어 먹었다. 때로는 소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토마토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토마토는 주스를 만드는 간단한 요리 방법이 있지만, 청양고추는 그렇지 못했다.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했지만, 매워서 많이 먹기가 어려웠다. 

  2023년 7월 중순에 첫번째 고추 수확을 진행하였다. 첫 수확이어서 그런지, 수확할 고추 양이 제법 많았다. 백평도 안되는 작은 고추밭이지만, 아침 9시가 되기전에 시작한 작업을 오후 3시가 지나서야 끝낼 수 있었다. 중간에 점심식사도 거르고 하였기 때문에, 6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10kg짜리 고추 출하용 종이 박스로 6~7개 정도가 나올 분량이었다. 

  수확한 고추를 출하하기 위해서는 구부러져 있거나 피부에 상처가 난 고추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해줘야 했다. 일자 모양으로 곧게 자란 고추들을 출하해야,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도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출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B품 고추들도 충분히 먹을 수 있기에, 산채마을의 팀장님과 ‘농촌에서 살아보기’ 3기 후배들과 나누어 먹었다.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고추여서 인기가 있었다. 


  출하하고 나누어 주어도, 청양고추는 내가 먹기에 너무 많은 양이 남았다. 집에 있는 냉장고에 모두보관하기도 어려웠다. 고추가 상하기 전에 뭔가 요리를 해서 보관해야 했다. 애쓰게 재배한 고추였기에, 상해서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 고추 장아찌였다. 보관도 용이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요리였다. 청양고추, 양파, 간장, 식초, 설탕 등 몇 가지 재료만 사용하면 되는 간단한 요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간장 맛이 너무 강해서, 많이 먹기 어려웠다. 장아찌를 만드는 다른 방법이 없을 까 고민하다가, 아내가 준 처갓집 레시피를 받아 들었다. 

  고추와 깻잎이 주 재료였다. 마침 고추 밭 옆에 심어 놓았던 들깨가 자라서, 깻잎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다. 사실 깻잎 찜을 해먹기 위한 요리법이었다. 그런데 청양고추를 같이 넣어주니까, 깻잎의 맛이 고추에도 베어 들어서 맛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요리였지만, 막상 시작을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국물도 우려내야 하지, 고추에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구멍도 뚫어 줘야지, 국물을 끓여줘야 하지... 요리에 서투른 나에게는 생소한 과정이어서 그런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내가 재배한 농산물들을 수확하면서, 평생 처음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에는 회사 다니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기껏 라면을 끓이거나 있는 반찬으로 비빔밥을 해먹는 것이 전부였다. 복잡한 과정이 소요되는 요리는 손도 대지 않았었다. 

  이제는 애쓰게 재배한 여분의 농산물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뭔가 저장해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요리를 해봐야, 소비자들이 농산물을 최종 소비하기까지 어떤 노력이 들어가는 지 알 수 있다는 측면도 있었다. 소비자들의 고충을 알아야, 농산물 가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월 중순이었다. 임대한 비닐하우스의 주인 할머니가 무를 여러 뿌리 주셨다. 무 김치를 담그려고 재배를 했는데, 양이 많아서 나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무가 제법 잘 자랐다. 나도 좋아하지만 아내도 깍두기를 무척 좋아했다. 특히 신맛과 어우러진 감칠맛이 나는, 국밥집에서 제공하는 깍두기를 좋아했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서, 곰탕에 잘 어울리는 깍두기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무, 대파, 멸치, 양파, 통마늘, 고추가루, 새우젓 등 들어가는 재료가 많았다.   

  주인 할머니가 준 무를 전부 깍두기로 담을 요량이었다. 남은 무는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블러그에서는 깍두기를 담은 뒤, 3일정도 상온에서 숙성시키는 작업을 진행하라고 했다. 그런데 깍두기를 담근 직후에 먹었을 때가 제일 맛있었고, 숙성한 뒤에는 맛이 떨어졌다. 결국 내가 원했던 맛을 내지는 못했다. 아주 맛있지는 않았지만, 겨울동안 나의 식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요리가 되었다. 


  요리를 하려면 여러가지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요리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세척하고 자르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한국 요리는 갖가지 소스와 함께 첨가되는 야채들이 많다.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끓이거나 데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요리를 몇 번 해보지 않았지만, 번거롭다는 인식이 머리에 새겨졌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아서, 마음을 여러 차례 다잡고 나서야 요리를 할 수 있다. 

  그래도 요리를 해 놓으면 내 손으로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것이라는 뿌듯함이 있었다. 다양한 야채나 소스들간의 섞이는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느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갈 때의 쾌감이다. 농산물의 가공에 적합한 요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강제요리의 즐거움이다.

작가의 이전글 <초보 농사꾼의 하루>농촌의 물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