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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04. 2024

<한옥 대목반>코로나의 습격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버전: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맞배집을 완성하는 마지막 작업으로 문틀을 가공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옥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실내 실습실 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들어오더니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전기대패의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처음에는 교장선생님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이윽고 동료들이 하나 둘씩 작업을 멈추었을 때,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소목반의 한 학생에게서 코로나 양성반응이 나왔어요. 그래서 여기 있는 대목반 학생들과 선생님도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해요. 지금 바로 움직여주세요.”

  2022년 2월이었다. 그 동안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전국적으로 코로나 누적 확진자 수가 삼백만명을 넘어섰고, 누적 사망자 수도 일만명에 가까워질 때였다. 말 그대로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던 시점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나 후유증도 큰 문제였지만, 확진자는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사회 생활과 단절되어야만 했다. 

  다행히 그동안 한옥학교에서는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 중에도 언젠가는 감염자가 나올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감염자가 나오니까 ‘이제 남의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료들은 순간 긴장을 하였다. 

  우리는 장갑과 앞치마를 벗어 놓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냈다. 이때 누군가가 근처 편의점에서 자가진단 키트를 사서 진단해보면 된다고 했다. 막내인 정원이가 키트를 사오겠다고 나섰다. 작업을 멈춘 우리들은 실내 실습장 외부 여기 저기에 흩어져서 담배를 피우거나 하얀 눈이 쌓여 있는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설마 나는 괜찮겠지?’, ‘만약 양성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나와 동료들의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키트 세트에는 하얀 면봉, 바이러스를 측정할 수 있는 액체가 담긴 작은 통, 그리고 진단 키트가 들어 있었다. 먼저 하얀 면봉을 꺼내서 내 양쪽 코를 후볐다. 그리고 나서 액체가 담긴 작은 통에 면봉을 넣고 흔들었다. 적당히 흔든 액체를 진단 키트에 떨어뜨리면, 감염여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를 포함한 대목반 동료들은 모두 음성이 나왔다. 오후에는 나머지 소목반의 학생들도 음성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의 습격을 처음 받던 날, 우리는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다. 


  첫번째 코로나의 습격이 있은 후 몇 주가 지났다.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코로나가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동료인 유명이가 코로나 키트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나타냈다. 그 이틀 후에 건축 목공 기능사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고 있을 때였다. 양성이 나오면 아예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테스트를 해봤다. 다행히도 유명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성 반응이 나왔다. 

  원래 대목반 동료들은 강릉에서 기능사 시험을 마친 뒤, 한옥학교의 마지막 추억으로 간직할 이벤트를 계획했었다. 묵호항에서 회식을 하고, 종석이 장인어른이 별장으로 쓰고 있던 근처의 아파트에서 하루 자기로 했던 것이다. 유명이가 양성이 나오면서, 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었다. 

  “주말이면 병원에 입원하신 어머님을 만나러 가야 하거든요. 제가 코로나에 걸리게 되면, 어머님을 만날 수가 없어요.”

  당장 정원이가 마지막 이벤트에서 빠지겠다고 했다. 주말마다 편찮으신 어머님 간호를 위해 서울에 가야 하는데, 아무래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도 그 주 토요일에 부모님을 모시고 고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내가 감염되는 것은 괜찮은 데, 연로하신 부모님이 감염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의 묵호항 여행 계획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이렇게 코로나의 두 번째 습격으로, 우리의 추억거리 하나가 삭제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코로나가 찾아온 것은 한옥학교 졸업식을 일주일 정도 앞둔 4월초였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나였다. 처음에는 다른 클래스의 학생, 두 번째는 같은 클래스의 유명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점점 좁혀져 오던 코로나의 포위망에 걸려들고 말았다. 몇 주전부터 내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탓이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목이 칼칼하고 가끔 기침이 나왔다. 근처 편의점에서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사서 테스트를 해봤다. 진단 키트에 두 줄이 선명하게 만들어졌다. 코로나가 만연한 지난 2년여동안 제주도, 동해안, 미국 등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도 걸리지 않았던 나였다. 그런데 코로나가 그 힘을 잃어갈 즈음에 그만 감염되고 만 것이다. 다행히 전날 마지막 회식을 했던 한옥학교 동료들은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평창에 있는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에 한옥학교 프로그램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학교에 남아있던 동료들은 실습 목적으로 지었던 사모정과 한옥 맞배집의 분해작업을 진행하였다. 다음 기수의 동료들을 위해서, 실내외 실습장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아야 했다. 물론 자신들이 사용했던 개인 물품들도 모두 치웠다. 

  나도 자가격리에 들어가기 전에 학교에 있던 내 짐을 미리 빼놓아야 했다. 나는 가급적 동료들과 멀리 떨어져서, 차에 짐을 실은 뒤에 작별인사를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모양으로 찾아온 작별이어서 섭섭했다. 모두들 한옥학교밖에까지, 내가 가는 길을 환송해주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 등 자가격리 기간동안 필요한 것을 구매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진부면의 선별진료소에 가서 PCR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서, TV를 보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때 문득 자가 격리기간동안 거실에 놓을 탁자를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격리기간에 만들면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옥학교에서 한옥에 들어갈 창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거실 탁자로 활용할 요량이었다. 차에 실린 필요한 도구와 재료들을 꺼내와서, 거실에 신문을 깔고 작업을 시작했다. 

  다리 4개가 꽂아질 홈을 파내고, 다리 사이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문틀을 가공해 나갔다. 하나의 창문에 다리만 연결해서는 무게를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틀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한옥 창문 두개를 이용해서, 탁자를 만들 생각이었다.

  가로 세로 방향으로 들어가야 할 문 살은 두께가 얇기 때문에, 가공중에 끊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시 만들어야 했다. 치수를 잘못 재는 바람에 다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탁자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자가 격리기간의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거실 탁자 제작을 시작한 지 3일정도 지나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그 날 갑자기 한옥학교 동료들이 내 집에 찾아왔다. 내가 코로나에 걸린 탓에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는 못하고, 거실 창문을 열고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옥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모두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후줄근한 작업복 대신에 그럴 듯한 외출복을 빼입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들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졸업식장에서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내 집에서 작별 인사를 하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생각지도 못한 방문이라서 나는 너무 반가웠다. 멀리 제주도가 고향인 유명이를 비롯해서 인천, 서울, 동해 등 각자 흩어져서 집으로 가야하는 동료들의 다음 계획도 잘 만들어 가도록 격려해 주었다. 그해 10월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의 프로그램을 뒤로 하고 작별인사를 했다. 


  코로나는 한옥학교에서 나의 마지막 이별을 이상한 그림으로 만들어 버렸다.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자가격리하고 있는 집에서 전해 받아야만 했다. 유명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묵호항으로의 1박 2일 이별여행을 취소해야만 했다. 비록 예정대로 한옥학교를 졸업했고 건축목공 기능사 자격증 시험도 치뤘지만, 코로나는 나와 동료들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경험을 만들어주었다. 

  삶의 큰 궤적은 예정대로 그려갔지만, 추억의 스토리는 크게 달라지게 만든 코로나의 습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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