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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5. 2024

<초보 농사꾼의 하루>나이 든다는 것

-귀농 첫해에 겪은 서른 한번째 이야기

  “오른쪽 팔꿈치의 근육과 힘줄이 손상되었네요. ‘테니스 엘보’라고 하는데, 오래 사용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귀농 첫 해 농사를 마무리 짓자 마자, 서울에서 살 때 주로 다니던 정형외과로 달려갔다. 올해 농사를 지으면서 물건을 들거나 작업을 할 때면, 오른쪽 팔꿈치에 통증이 몰려오곤 했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지만, 점차 악화되더니 보호대를 끼고 있어도 심한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의사는 ‘주사 치료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3~4주에 한번씩 치료받으러 병원에 와야 한다고 했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4월이전까지 치료를 받으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2022년 농사철에는 서울에 오가기 어려워서, 원주에 있는 병원에서 몇 달 동안 치료를 받았었다. 별다른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결국 서울의 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60년 가까이 사용한 팔꿈치였다. 그만큼 오래 사용했으면 고장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되면서도 ‘이제 내 몸도 늙어가는구나.’하는 서글픔이 함께 밀려왔다. 


  몇 달전에는 오른발의 엄지발가락에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무릎에 관절염이 걸린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엄지발가락 관절염은 생소하였다. 엄지발가락이 걸을 때마다 통증이 오면서 부어 오르곤 했다. 엄지발가락과 오른발 접촉부위의 인대가 많이 닳았단다. 

  내가 등산을 좋아해서 한국의 웬만한 산은 다 올라가 보았다. 산을 오르내릴 때마다, 온 몸의 체중이 엄지발가락 부위에 많이 실리게 된다. 특히 하산할 때는 체중의 부하가 더욱 커지게 되어, 엄지발가락에 부담을 많이 주게 된다. 더군다나 나는 fitness center에서 거의 매일 러닝머신으로 달리기를 했었다. 그럴 때면 러닝머신으로 경사를 만들어 놓고 뛰곤 했었다. 이 동작도 엄지발가락의 관절염 발생에 대한 요인중 하나라고 한다.

   더 이상 등산을 하면 발가락에 무리가 간다는 의사의 진단에 낙담을 했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을 때 했던 것들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망스러웠다. 이것이 나이 든다는 것을 느끼는 과정인 것 같다. 


  2022년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 참여했던 동료들끼리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고 있다. 모두들 횡성군으로 귀촌했거나 귀농한 탓에, 만나기 수월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식당으로 이동하던 차안에서, 나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와 나이 들어가면서 경험하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즘 단기 기억 능력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좀 전에 ‘뭔가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한 것도, 돌아서면 잊어 버린 다니까요.”

  잊어버리고 뭔가를 챙겨오지 못한 동료가 가방을 뒤지면서 말을 꺼냈다.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을 제일 실감한 것은 핸드폰에서 메시지를 보낼 때에요. 오타가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타자치는 속도도 느려지고.” 

  나는 한때 다른 사람들보다 타자 치는 속도가 빨랐었다. 회사에서 선배들이 문서 타이핑을 나에게 맡기곤 했었다. PC뿐 아니라 핸드폰의 타이핑 속도도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타이핑 속도가 늦어졌을 뿐 아니라 오타가 많이 나왔다. 할 수 없이 타이핑하는 속도를 늦추어서 오타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하는 영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실망감도 더욱 크게 다가왔다.


  몸이 하나씩 고장나고 단기 기억력도 감퇴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나의 마음안에서는 젊어서부터 길들여진 열정과 습관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뭔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욕구가 강하게 남아있다. 마치 아직도 30대인 듯이. 

  머리속에서 일을 계획해 나가는 속도는 젊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수십년 동안 해왔던 사회생활에 길들여진 생각과 습관이 여전히 내 몸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반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 머리로는 이미 저만큼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몸은 한없이 느리게 움직였다. 

  몸과 마음의 속도 차이가 나에게 외로움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수십년 동안 몸에 익숙했던 사회 환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소외감이란 형태로 다가온다. 나아가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을 수시로 일깨워주는 몸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노인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을 갖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으로 살펴보면, 전부 나쁜 조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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