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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2. 2024

<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생각하는 정원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스물 한번째 글

  아내, 둘째 아들 찬수와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을 찾은 것은 2022년 5월 중순이었다. 이곳은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오설록 티 뮤지엄’ 근처에 있었다. ‘오설록 티 뮤지엄’은 그날도 관광객으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 날씨가 화창한 5월인데다가 코로나에 대한 경계심이 풀어진 탓일 것이다. 반면 ‘생각하는 정원’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한산했다.

  정원 입구에 들어서서 첫번째로 눈에 띈 것은, 성벽과 같은 모습으로 둘러쳐져 있는 큰 벽이었다. 제주의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태풍으로부터 나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쌓아 올린 것이라고 한다.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무질서한 바깥 세상과 단절시키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원 곳곳에는 아름다운 분재 정원수들, 기괴한 모양의 나무들, 그리고 화산석으로 만든 폭포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다양한 아이템들이 영혼의 정원, 향나무 정원, 평화의 정원 등 8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었다. 

  여기 저기 신기한 나무와 조각품들을 감상한 지 30분쯤 흘렀을까? 쌍무지개 모양의 대문같은 곳에 그네가 두개 걸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용암으로 쌓아 올린 기둥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네가 두개 걸려있었다. 잠시 쉴 곳을 찾고 있던 우리는 그네에 걸터앉았다. 마침 옆에 있던 안내문을 보고, 이곳이 ‘영혼의 정원’인 것을 알았다.

  “재미있니? 이런 분재 정원은 처음 와보지?”

  아무 말없이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둘러보면서 신기해하던 찬수에게 물어봤다. 한국이나 미국의 국립공원에서 거대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봐왔던 그에게, 이곳은 색다르게 느껴 졌을 것이다. 

  “아름다워요. 그런데 왜 나무들을 이렇게 인위적으로 작게 만든 거예요?” 

  “글쎄, 아빠도 왜 이런 분재 정원을 만들었는지가 궁금하구나.”

  찬수의 머리속에서는 굳이 나무를 분재형태로 만들 필요가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는 듯했다. 그냥 자연의 상태로 놓아두어도 아름다운데. 사실 나도 이곳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알 길이 없었다. 

  

  300년 수령의 향나무, 여기 저기서 가져온 해송나무 등이 전시되어 있던 ‘향나무 정원’을 지나니,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진 공간에 사진들을 전시해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족히 백평은 넘어 보이는 넓은 곳이었다. 이곳 정원을 맨 처음 만드는 단계부터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찍어 놓은 사진들이었다. 사진들 밑에는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 있었다. 

  이곳은 1968년부터 ‘성범영’이라는 분이 평생을 바쳐서 만들어왔다. 성범영 선생의 고향은 경기도 용인인데, 제주도가 고향인 군대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제주도에 반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용인에서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재산을 많이 모았지만, 대신 건강을 잃고 말았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자주 찾아오면서, 차츰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침내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은 저지리까지 제주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도 채 안 걸리지만, 1960년대 후반에는 제대로 된 도로도 없었다. 특히 저지리의 땅들이 모두 용암으로 뒤덮여 있어서, 농사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으로 버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밀감나무를 심었는데, 어느 날 한경면장이 분재원을 만들자고 제안해서 육지에서 분재를 사다가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나무를 좋아했던 성원장도 분재원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 부쳤다. 성원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외국의 유명한 정원들을 연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재 나무들의 정원’이라는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왜 이런 무모하기까지 한 작업을 평생 동안 해왔을까?’

  그곳을 돌아보면서 줄곧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질문이었다. 어쩌면 ‘제2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에게,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정원’ 어디에도, 성원장이 왜 평생을 분재원 가꾸는 데 투자를 했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은 없었다. 단지 그 동안 이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쏟아 부었고, 어떤 유명한 사람들이 분재원을 방문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만 알 수 있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나무들이 어른거리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는 것을 느끼곤 했죠.” 

  성원장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었다. 그는 나무 분재하는 일을 매우 좋아했던 것 같다. 1960년대 당시 전국적으로 분재하는 사람이 몇명 없었기에, 전국을 돌아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젊었을 때 와이셔츠 공장을 운영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던 그였지만, 그것보다는 자연과 함께 사는 삶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 모양이다. 잃었던 건강을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분재원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시공간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가치까지 제공하였다. 

  그는 인생을 바쳐서, 좋아하는 일을 하였다. 좋아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즐거움 속에서 건강을 회복하면서 행복을 만들어갔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곧 삶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생각하는 정원’이 제2의 삶을 설계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메시지인 듯했다.


  50년이상을 도시에서 생활했던 나도, 제2의 삶은 자연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강원도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자그마하지만 농사를 짓고 싶은 욕망도, 자연속에서 삶의 스토리를 만드는 재료로 만들고 싶었다. 농산물은 다른 사람에게 건강한 삶을 만드는 가치도 제공해줄 수 있다. 행복한 생활속에서 만들어진 건강한 농산물은 나와 내 가족, 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감정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성원장이 생각했던 삶의 가치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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