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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26. 2022

<스물 한번째 이야기> 한옥학교의 예술가들

  언제부터인가 나는 동료들과 즐길 수 있는 다음 주의 이벤트를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 평창 한옥학교에서의 생활을 그만큼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그리고 대목반 동료들이 그만큼 좋았다. 

  지난 주에 몇몇 동료들과 이야기하다가, 고추잡채를 먹으면서 술을 곁들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옆에서 듣던 요리사출신 종철이가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추잡채를 만들 수 있다고 거들었다. 고추잡채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종철이가 고추잡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기로 했다. 종철이가 사는 횡성의 인근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일부 품목은 내가 조달하기로 했다. 그래서 주말에 인천의 대형마트에서 꽃빵과 중국 고량주를 사왔다. 

  그렇게 요리된 종철이의 고추잡채는 예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내 집에 모여든 일연, 정수, 호권, 유상은 고추잡채를 나오기가 무섭게 먹어 치웠다. 고추잡채가 너무 맛있다 보니까, 고량주보다 고추잡채가 먼저 떨어졌다. 

  너무 먹는 데 집중해서 일까? 동료들이 고추잡채를 먹는 쩝쩝 소리만 방안에 가득 찼다. 먹는 소리만 내던 동료들은, 고추잡채가 다 떨어지고 나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ㅎㅎ 묵묵히 먹기만 하던 동료들이 차츰 말이 많아져 갔던 것이다. 웃고 떠들던 중 유상이가 제주도에서 노래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유상은 제주도의 한 TV 드라마에 나올 정도로, 약간(?) 유명한 배우였다. TV보다는 주로 연극을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노래도 수준급이었다. 

  유상이가 좋아하는 가수가 김광석, 이문세 등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비슷했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이야기는, 어느덧 이 가수들의 노래를 유튜브로 들으면서 따라 부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것도 우리가 고추잡채 먹을 때 사용했던 나무 젓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면서. 나무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 부른 것이 얼마만인가!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그렇게 해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우리들의 고추잡채 프로젝트는 유상이의 노래와 함께 행복한 대학시절의 추억으로까지 이어졌다


  고추잡채 프로젝트를 진행한 다음날, 술을 마신 여파로 유상이는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 조퇴를 했다. 점심도 먹지 못하는 등 속이 좋지 않아서 수업을 받을 수 없단다. 그리고 어제 술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후유증으로 비실비실 했다. 동료들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데다가 날씨마저 야외 실습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오늘은 실내에서 치목 작업을 진행했다. 


  맞배집에 들어갈 둥그런 모양의 도리는 그동안 집을 지을 만큼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모정에 쓸 정사각형 모양의 귀틀과 기둥도 치목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이제 창방, 보아지 등 각목재를 만들어내야 한다. 직사각형 모양의 가로는 5치부터 9치짜리까지 목재가 허락하는 두께를 감안해서 잘라내고, 세로는 3치로 만들었다. 길이는 10자 또는 그 이상으로 하였다. 

  2명씩 5개조로 나뉜 우리는 조별로 치목 작업을 진행하였다. 나는 일연과 같은 조인데, 우리 조가 거의 매번 주어진 일을 일찍 끝내곤 한다. 일연이 워낙 일을 잘하고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일연은 수년전부터 집에서 취미로 목공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기계 장비 다루는 데 능숙했고, 목재의 나무 결이나 상태를 감안해서 치목이나 가공을 아주 잘했다. 거기에다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부지런한 성격이어서, 우리 동료들 중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친구이다. 그런 친구와 같은 조에 있게 된 것이 내게는 행운이다. 

  이날도 각목재 치목 작업을 먼저 마무리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작업하는 것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내 도움이 필요하면 가서 도와주기도 했다. 멍하니 서있던 내가 재미 있었는 지, 용섭이가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속에서 내 발밑에 톱밥이 쌓여있지만, 보통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톱밥이 쌓이곤 한다. 그렇게 동료들 것까지 합하면, 하루에도 엄청난 양이 나온다. 2~3일동안 만들어내는 톱밥을 마대자루에 쓸어 담으면, 어른 두명이 들기 어려워서 지게차로 옮겨야 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아마도 100kg이 넘을 것이다. 

이렇게 큰 마대자루가 5개 채워지면, 근처에서 소나 돼지 등 가축을 키우는 농부가 와서 실어간다. 그들에게는 이 톱밥이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축사를 깨끗하게 치운 다음에 톱밥을 깔아주면, 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치목 작업을 해나가는 동안 용현 사진작가가 우리 동료들의 개인 사진을 촬영해주었다. 용현이는 어제부터 감기 약을 먹고 있어서, 치목 일은 쉬엄쉬엄 하고 있었다. 쉬는 동안 용현이는 동료들 각자 좋아하는 기계 장비를 가져 오게 해서, 사진을 찍었다. 원형의 조그만 전기 난로의 불빛을 이용해서 음영을 만들어서, 흑백사진으로 만들었다. 역시 전문가의 손은 다른 것 같다. 

  용현이의 작품을 보면, 인물사진을 좋아하는 사진작가답게 표정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무엇보다도 빛의 음영을 잘 이용해서 흑백사진 찍는 것을 즐겨 한다. 개인 사진에 이어서 쉬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무엇인가를 검색하고 있는 동료들의 사진도 한 컷. 한 동료의 인터넷 검색 내용이 궁금해서, 2중 3중으로 에워싸고 그 작은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10명밖에 안되는 동료들중에는 요리사, 배우, 사진작가 등 진짜 예술가들도 있지만, 모두들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하고자 하는 인생의 예술가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그들이 뿜어내는 서로 다른 향기에 취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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