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여섯번째 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동료들과 꽈리고추 수확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에 내가 교육을 부탁했던 ‘윤토마 하우스’의 여사장님이었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외부교육 일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짜면 될까요?
“몇몇 동료들이 농산물을 이용한 가공사업에 관심이 많아요. 농촌에서 가공사업을 하려면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지 알고 싶어요.”
2022년 4월부터 시작된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9월초였다. 우리가 심었던 농작물들의 정식부터 수확까지 경험해보고 난 후, 동료들은 평상시 관심있는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배우고 싶어했다. 농산물 가공부터 시작해서 횡성의 명품 중 하나인 한우 키우기, 전원주택 짓기 등등… 나의 동료들 중에서 신반장과 장미씨가 가공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장미씨가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윤토마 하우스’란 곳에서 교육을 받아보자고 제안하였다. 횡성군 둔내면으로 귀농한 부부가 ‘윤토마 하우스’란 이름으로 카페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들은 토마토 청, 들깨 강정 등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든 과일청이나 수제 강정이 유명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가 교육을 받고 있던 산채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다.
교육을 받기로 한 9월 중순 어느 날, 우리는 승용차 몇 대에 나눠 타고 윤토마하우스로 향했다. 둔내면에는 스키장, 골프장, 여름 물놀이 시설과 함께 비교적 큰 규모의 숙박시설을 갖춘 ‘웰리힐리’라는 휴양시설이 있다. 윤토마하우스는 그곳과 같은 동네에 있었다. 웰리힐리로 향하는 도로로부터 2~3백미터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쉽게 찾기는 어려웠다.
윤토마하우스는 1층은 카페, 2층은 민박용으로 쓰는 이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앞쪽에 5백평 정도 되어 보이는 밭에는, 고추, 토마토, 상추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카운터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벽면에 각종 음료들의 메뉴표가 붙어 있고, 탁자위에는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아로새겨진 네모난 천들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산뜻하였다. 꽃을 좋아하는 여사장님의 취향이 반영된 것 같았다. 주문하는 곳의 옆쪽에는 4인용 테이블이 10개 정도 놓여 있는 자그마한 방이 붙어 있었다. 손님들이 음료를 마시거나 교육이나 워크샵 등을 진행하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원하는 음료를 주문하고는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서로 바라보면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4각형 모양으로 책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예쁘게 포장된 종이박스 여러 개가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종이박스 안에는 비닐로 포장된 들깨 강정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강정 하나를 꺼내서 먹어 보았는데, 들깨 향이 나는 담백한 맛이었다.
“수제 들깨 강정이에요. 귀농한 직후에는 과일 청을 만들었는데, 잘 안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윤토마하우스의 여사장님이 강정을 맛보는 우리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강정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귀농이야기가 펼쳐졌다.
윤토마 하우스의 사장님 부부와 아들은 겨울이면 스키를 즐기는 마니아들이었다. 2016년 겨울에도 웰리힐리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고 있었다. 그때 스키장 주변의 마을이 이들 부부의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겨울이면 스키를 타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짓고, 카페를 열어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 당시 부부는 인천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뿐 아니라 부모들의 등쌀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기였단다. 그래서 어떤 준비나 계획도 없이 횡성군 둔내면으로 이사를 오기로 덜컥 결정해버렸다.
그들의 귀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인천의 학원과 집을 정리하고 모은 자금으로 집을 짓고 농사 지을 땅을 마련하였다.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서 주택 건축업자에게 의뢰를 하였다. 그런데 주택업자가 집을 짓다가 도망가 버렸다. 이미 지급했던 1억원에 가까운 돈을 날려 버렸다. 충분한 자금이 없었던 이들은 동네 마트에서 알바를 하거나 다른 농민들의 농사를 도와주는 등 온갖 궂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어느 정도 돈을 모은 뒤, 그들이 꿈꾸던 카페를 오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탓에 손님 얼굴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둔내의 주산물인 토마토를 가지고 잼도 만들어서 팔아보았지만, 이것 마저도 잘 팔리지 않았다. 귀농한 후 5년은 너무 힘든 기간이었다고 한다.
정착하기까지 고생한 탓에, 여기 저기서 실패담을 들려 달라는 강의가 많이 들어온단다. 성공담 못지않게 실패담으로부터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토마토 잼의 실패이후에, 깨강정을 만들어서 온라인 판매를 하였다. 잼에 비해서 강정은 비교적 판매가 잘 된다고 한다. 겨울이면 남편은 스키 강사로 변신한다. 처음 귀농할 때 꿈꿨던 일들을 하나씩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귀농 실패담을 들려주면서, 경험을 통해서 얻은 몇 가지 교훈을 이야기해주었다.
첫째, 귀농이나 귀촌한 후, 처음부터 너무 많은 일을 벌리지 말고 큰 성과도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기 전에는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둘째, 집을 지을 때, 벽과 창문 등의 두께를 가능하면 두껍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해발고도가 높은 둔내면의 겨울에는 춥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는 농촌에서는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공사업을 하기 위해서 허가절차를 밟을 때나, 집을 짓고 밭을 사기 위해 융자를 받을 때에 공무원 인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단다. 공무원과 일을 할 때, 농촌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고 한다. 이장을 비롯해서 마을의 리더들은 군청 등 관공서의 공무원들과 접촉할 일이 잦기 때문에,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 리더들의 추천을 받으면, 공적인 업무의 처리과정을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농촌은 작은 규모의 사회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들 부부가 귀농하면서 고생을 많이 해서 인지, 귀농 귀촌할 때에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고 싶어했다. 정작 우리가 원했던 가공사업에 필요한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가공사업을 하기 위해 허가를 받는 조건이나 과정, 가공에 필요한 기자재 등의 정보를 Q&A 시간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가공품의 유통업 허가를 받기 위해 식품위생업 교육을 사전에 받아야 한단다. 그리고 가공에 필요한 기계가 비싸기 때문에, 외주를 통해서 해결하라는 제언도 해주었다.
여사장님과 함께 교육에 참여하였던 남사장님의 이야기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농촌에서 토박이와 객지 놈간의 차별은, 귀농한지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일부러 라도 토박이들과 자주 접촉하는 것이 좋아요.”
처음 회사라는 조직에 발을 내디디면서 동료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 노력했던 것처럼, 농촌이라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도 그 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질적인 문화를 지닌 사회에 융화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귀농 귀촌의 제일 힘든 부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