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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강원도 성과 발표회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일곱번째 글

by 유진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침착하게 무대위로 올라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진행자에게 마이크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발표회장의 마이크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보다 앞 순서의 발표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심사위원들의 불만이 있었다. 이들은 발표장의 맨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의 기술자가 와서 마이크를 손봤지만,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마이크를 교체해주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상태가 훨씬 좋은 사회자의 마이크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바뀐 마이크를 들고 연단 아래로 내려가서 발표를 시작했다. 심사위원들뿐 아니라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발표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긴장된 마음을 억누르면서, 준비해온 발표 내용을 하나씩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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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는 전국적으로 119개 마을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9월달에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면서, 10월부터 각 도별로 프로그램의 성과 발표회가 진행되었다. 강원도 지역의 발표회는 10월 27일로 정해졌다. 도별 발표회를 통해서 뽑힌 5개 마을만이, 11월 중순에 세종시에서 진행되는 전국 발표회에 참가할 수 있다.

세종시에서 발표하게 될 5개 마을을 대상으로, 최우수상, 우수상, 장려상(3곳)을 주는 시상식도 하게 된다. 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선에 진출한 마을들의 사례는 이곳 저곳의 책자와 인터넷에 실리면서, 다음 해에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내가 속해 있던 횡성군 산채마을에서는 최우수상을 목표로 발표준비를 해왔다. 전년도에 장려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목표를 더 높게 잡은 것이다.


나는 9월초에 교육생들을 중심으로 발표자료 준비팀을 꾸렸다. 2022년 발표팀은 총 6명으로 구성하였다. 2021년에 성과발표회를 준비하였던 김대표님과 사무장, 발표 경험이 많은 장미씨, 그리고 발표 자료 작성을 잘하는 젊은 신반장 부부까지. 전년도에는 김대표님과 사무장이 발표준비를 했는데, 2022년에는 운영진이 아닌 교육생 중심으로 준비를 하기로 했다. 실제 교육을 체험한 사람들이 발표를 하는 것이,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교육생이 발표한 사례가 없었기에, 심사위원들에게 더 인상적으로 다가갈 것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보통은 교육을 진행한 마을의 사무장이나 대표들이 발표를 한다.)

내가 성과발표회 준비를 맡게 된 것은 회사에서 발표 경험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식 교육생이 아닌 청강생의 신분으로 6개월 과정을 밟아왔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만큼 드문 사례여서, 발표할 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준비팀이 발족한 날, 둔내면의 한 카페에서 첫번째 미팅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는 발표자료의 storyline을 만들 key words를 뽑아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오늘은 전체 story의 구조를 만들어 볼까 해요. 첫 미팅이니만큼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부정적인 feedback은 가급적 자제하고, 대신 살을 붙일 수 있는 아이디어나 key words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할께요.”

준비팀을 꾸려가는 내가 회의 진행을 맡았다.

“작년에 참가했던 마을들은 주로 어떤 내용들을 발표했나요? 특히 최우수상을 받은 팀은 어땠나요?”

장미씨가 발표회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이전의 발표회에 대한 것들을 물어봤다. 그러자 김대표님이 발표회장의 분위기와 심사기준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교육 프로그램이 얼마나 귀농이나 귀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는지, 같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끼리 화합이 잘 되었는지 등의 심사 기준이 있다고 한다. 발표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특히 장미씨와 신반장 부부가 많은 의견을 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3천평이나 되는 넓은 밭에서, 여러 가지 작물들을 파종부터 수확까지 진행해봤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10명의 교육생들이 원하는 것들이 다 달랐는데,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죠. 농산물 유통과 가공과정, 펜션운영, 전원주택 짓기 등등…”

“그동안 신반장 부부가 유튜브에 올리면서 찍어 놓았던 영상이나 동료들이 찍은 사진들이 풍부하니까, 이것으로 생생한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미씨와 신반장부부는 여러 가지 작물을 심은 것과 다양한 주제의 프로그램을 경험한 것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약 2시간 정도 진행된 회의에서 발표자료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첫 만남치고는 꽤 큰 성과였다. 그후로 여러 차례 만나면서 storyline을 구체화했다.

강원도 지역 발표회가 있기 직전에는, 우리끼리 산채마을의 카페에 모여서 리허설도 진행했다. 유럽 여행을 간 신반장 부부와 오대산 월정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교장선생님 부부를 제외하고, 교육에 참가했던 나머지 동료들이 모두 참석했다. 근 한달 여 동안 준비작업을 진행하면서, 발표자료 준비팀원들은 모두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발표자료를 잘 만들겠다는 부담을 갖기보다는, 커피를 마시거나 술 한잔을 곁들이면서 즐겁게 논의를 진행했다. 그만큼 팀원들의 집중도도 높았다.


원주시 인터불고 호텔의 2층 workshop room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오전에는 군데 군데 빈 자리가 많았는데, 본격적으로 발표를 하기 시작한 오후에는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날 발표할 강원도 8개 마을의 운영진들이 자리하였다. 다른 마을과 다르게, 우리 산채마을에서는 교육생들도 많이 참석하였다. 내가 발표하는 것을 응원하기 위해 둔내면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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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의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첫번째 발표 자료가 띄워져 있었다. 맨 뒤쪽에는 10여명의 심사위원들이 앉아서, 발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춘천에서 온 첫번째 발표자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무대로 걸어 나왔다.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들은 응원의 박수를 힘차게 보내줬다. 그렇게 ‘농촌에서 살아보기’ 강원지역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당 마을의 사무장들이 발표하였다. 20분이라는 제한시간 내에 각자의 마을과 프로그램을 소개하였다. 대부분의 사무장들은 발표자료를 만드는 것이나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그들은 너무 많이 긴장한 탓에, 자료를 그냥 읽어 나가는 형식으로 발표를 하였다. 발표자료도 주로 MS Word 형태였고, 몇몇 마을만이 사진을 첨부하는 수준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는 동영상을 여러 개 포함시킨 Power Point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좀 더 생동감 있는 형태로 꾸몄다. 동영상편집에 능숙한 신반장이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나는 각 페이지마다 이야기할 내용을 모두 외웠다. 덕분에 크게 실수한 것 없이, 심사위원, 그리고 방청석에 앉아있는 사람들과 eye contact을 하면서 발표를 할 수 있었다.


그날 8개팀의 발표는 당초 예정시간인 오후 4시가 훨씬 넘어서야 끝났다. 심사위원장의 총평이 끝난 후에, 발표한 마을에 대한 평가 점수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우리 마을이 100점 만점에 97점을 받은 것이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2위가 된 마을이 77점인 것과 비교해서도, 월등하게 높은 점수였다. 동료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6개월동안 진행된 프로그램 내용이 충실했다는 것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대표님을 포함한 운영진들, 그리고 교육생들이 모두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했다고 평가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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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발표회에서 1등을 하면 본선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선에 진출한 팀은 다음 해에도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더군다나 우리 산채마을은 전국 발표회에서 최우수상을 노려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을 ‘유종(有終)의 미(美)’라고 하는 가 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던 6개월여동안 대표님을 비롯한 운영진과 교육생들 간에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10명의 교육생들이 수십년 동안 살던 도시를 떠나서 강원도에서 처음 만났고, 제2의 삶을 같이 준비했다. 서로 갈등이 있었지만, 정도 많이 들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공감의 폭도 넓어졌다.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강원도 발표대회에서 1등까지 차지해서, 행복하게 끝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한 달뒤에 있을 세종시의 전국 발표대회만을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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