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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농촌에서 살아보기' 마무리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다섯번째 글

by 유진

닭장 안에는 닭이 4마리만 남아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얼마 지난 후인 5월부터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횡성 장터에서 32마리의 어린 닭들을 사왔다. 닭 부장이었던 최선생님이 정성 들여 키워서, 우리들에게 달걀을 나누어 주고 닭을 잡아 종종 회식까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닭들이었다.

이제는 남은 4마리의 닭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과정이 마무리되는 2022년 9월 어느 날 닭장 철거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 닭을 방생하기로 결정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우리들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기에, 더 이상 키울 사람이 없었다. 닭장을 철거하기 전에 닭들을 닭장밖으로 몰아냈지만, 그들은 좀처럼 닭장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들이 닭장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침내 한마리씩 사라졌다. 닭장 바로 옆에 있는 낮은 야산으로 간 것 같았다.

내가 드릴로 닭장의 기둥들을 고정시키고 있던 나사 못들을 뽑아내면, 다른 사람들은 닭장의 지붕을 덮고 있던 그물을 벗겨냈다. 지난 4월 닭장을 만들 때는 반나절 이상이 걸렸는데, 분해는 1시간 정도만에 끝냈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부수는 작업이 쉬운 법이니까. 해체작업의 허탈함보다는, 땀 흘리며 닭장을 만들고 닭을 키우면서 만들어진 동료들과의 추억이 더 진하게 남았다.

횡성 26주차 금요일_닭장 해체하는 동료들_20221014_1665714502673.jpg

남자 동료들이 닭장을 철거하는 사이에, 여자 동료들은 텃밭을 정리하였다. 전장군님 형수님과 장미씨는 아직 수확을 하지 못한 텃밭의 땅콩을 캐냈다. 닭장 철거작업을 마무리한 남자 동료들이 텃밭 정리작업을 거들었다. 텃밭에 심어져 있던 상추, 고추, 오이, 호박나무들을 뽑아내고, 멀칭 비닐을 벗겨냈다.

하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동료들은 지난 6개월동안 텃밭에 다양한 농작물들을 채워 나갔다. 그동안 우리들에게 상추, 고추, 오이 등 풍성한 식단을 만들어주었던 땅에게 휴식을 줄 차례였다. 그래야만 다음 해에 들어오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후배 교육생들에게 풍성한 식탁을 만들어줄 수 있는 튼실한 토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횡성 26주차 금요일_텃밭 멀칭비닐 벗기는 나_20221014_1665714503104.jpg


텃밭 정리작업을 마무리하고 며칠 뒤, 이번에는 꽈리고추 밭 정리작업을 했다. 당초에는 마지막 수확을 하고 나서, 고추 밭을 정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면서, 고추들이 모두 얼어버렸다. 마지막 수확은 단념해야 했다.

횡성 27주차 수요일_얼어버린 꽈리고추_20221019_090507.jpg

우리는 먼저 꽈리고추를 지탱해줬던 지지대를 제거해다. 그리고 난 후에 꽈리고추 나무를 뽑아 나갔다. 원래 예초기로 나무를 베어내려고 했는데, 나무가 잘 뽑혀져서 그냥 손으로 뽑았다. 그만큼 땅이 부드러웠다. 벗겨낸 멀칭 비닐과 뽑은 지지대를 트럭에 옮겨 실었다.

꽈리고추는 우리들에게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준 작물이었다. 그만큼 투자한 시간도 제일 많았다. 힘들어도 다 자란 고추를 수확하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한때 4kg 한 박스에 6만원이 넘는 경매가격으로, 우리들을 기쁘게 했다. 우리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꽈리고추와의 헤어짐이 아쉬운 듯, 동료들은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횡성 27주차 수요일_꽈리고추 밭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_20221019_1666161469948.jpg


원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산엔 울긋불긋 단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들이 다가온 겨울철을 준비하는 동안, 나무들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잎들을 떼어 내기 전에, 노랗고 빨간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매년 풍성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휴식의 계절로 들어가는 일을 반복해서 그런지, 나무들은 무심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횡성 27주차 목요일_가을 단풍이 찾아온 삽교리_20221020_1666223669786.jpg

집에서 쉬고 있으려니까, 카톡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닭장 해체작업을 하면서 방생했던 닭 4마리가, 다시 닭장이 있던 장소로 돌아와서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닭장이 있을 때는 틈만 나면 근처 산으로 도망갔던 닭들이었다. 그런데 닭장을 철거하고 나니까 오히려 그 자리에 돌아와 앉아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닭들도 귀소본능이 있는 모양이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동료들도 횡성으로 돌아올까? 그들도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던 지난 6개월의 추억을 그리워할까?

횡성 26주차 금요일_닭장으로 되돌아온 닭들_20221014_16657356688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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