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마흔 아홉번째 글
강원도 지역 발표회에서 1등을 하면서, 세종시 전국대회에 올라가게 되었다. 강원도 지역 발표일로부터 불과 3주후에 세종시 본선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발표시간이 5분에 불과해서, 기존 20분짜리 발표 자료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신반장과 함께 원고 줄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자료를 여러 차례 수정한 뒤, 전국대회를 주관하는 농정원(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 최종본을 제출하였다.
우리의 목표는 최우수상이었다. 목표가 큰 만큼 발표를 맡은 나의 부담도 컸다. 전국에서 지역 예선을 통해 뽑혀온 5개 팀이 경합을 벌이도록 되어 있었다. 119개 마을에서 선발된 팀이니만큼, 프로그램 내용도 충실할 것이고 자료를 작성하는 수준도 높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세종시 본선 당일인 2022년 11월 22일에 거의 대부분의 동료들이 응원차 세종시까지 왔다. 동료들은 대부분 횡성에서 출발해서, 당일 아침 일찍 3대의 차량으로 같이 이동하였다. 다만 일산에 있던 장미씨는 ktx를 이용해서 왔다. 동료들은 다같이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 있을 발표를 기다리는 나에게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발표회장은 농정원 건물 1층이었다. 1층에는 여러 개의 회의실과 조그마한 편의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날의 발표회장인 대회의실로 들어가 보니, 150명 전후의 참가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와 동료들은 한 켠에 있는 널찍한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날 발표회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5개 마을뿐 아니라, 40세미만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 8개팀도 함께 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발표회의 본선에 진출한 5개 마을 중에서, 강원도는 내가 속해있던 횡성군 산채마을뿐 아니라 양구군의 약수마을까지 2개팀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5개팀중에서 2개팀이나 본선에 진출해서 인지, 양구군청과 횡성군청뿐 아니라 강원도청의 담당 공무원들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먼저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5개팀이 발표하고, 뒤이어 청년들의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 8개팀이 나섰다. 5분 내외의 짧은 시간마다 팀이 바뀌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더군다나 농정원측의 진행이 미숙하여, 차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실패하였다. 일부 팀들의 발표 자료가 빔 프로젝터에 연결된 PC에 준비되어 있지 않기도 했다. 사회를 맡았던 농정원 담당자도 진행을 처음 맡아보는지 실수를 많이 했다.
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5개팀중에서 제일 늦은 순서로 발표하였다. 5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준비했던 동영상도 최소한의 분량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5분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땡! 땡! 땡!”
제한시간 5분이 끝난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발표를 다 마무리하지 못한 나는, 2~3분의 시간을 더 써야만 했다.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탓에 불만족스러운 발표가 되었다. 우리 프로그램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냥 목차만 소개하고 나온 느낌이었다. 감동도 없고 내용 전달도 충분하게 하지 못했다.
모든 팀들의 순서가 끝난 뒤, 30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복도나 건물 밖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불만족스러운 기분을 추스르고 싶었다. 발표장을 빠져나온 나는, 건물 한 귀퉁이로 가서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마침 비가 내리고 있어서 기분이 더 가라앉았다. 마음 속의 불만을 뿜어 내기라고 하듯이, 빗 속으로 담배연기를 연신 내뱄었다.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빔 프로젝터가 제대로 작동되는 지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을 고치기 위해서 30분이 넘게 소비하면서도, 발표는 5분밖에 못하게 하니까 화가 나네요.”
“왜 ‘프로젝트 참여형 프로그램’을 발표할 때는 10분이 넘게 시간을 주면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 발표 시간은 5분이라는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죠?”
옆에 서있던 몇몇 참가자들이 큰 소리로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시멘트 바닥에 부딪치는 빗소리와 함께 묻혀 버렸다.
이윽고 최종결과를 알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참석자들이 모두 착석하기를 기다린 후, 사회자의 발표와 함께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대한 시상식은 장려상부터 우수상, 최우수상 순으로 호명되었다. 장려상이 3팀, 우수상이 1팀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남은 팀이 자연스럽게 최우수상을 받게 된다. 나와 동료들은 장려상과 우수상 팀이 호명될 때마다, 제발 산채마을 이름이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마침내 최우수상 수상자로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이 결정되었다. 나와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었다. 옆에 앉아있던 다른 마을의 참가자들도 축하를 해주었다.
김대표님이 연단으로 나가서 농림부장관상을 수상하고 난 후, 동료들 모두 연단으로 나가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최우수상의 부상으로 상금 1백만원도 같이 받았다. 목표했던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나와 동료들은 불만족스러웠던 발표 당시의 감정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발표회가 끝나고 나와 동료들은, 미리 예약해 놓은 일식집에서 방어회를 배불리 먹었다. 이전에 나와 같은 직장에 다녔던 후배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우리 일행들을 위해서, 신선한 대방어를 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동료들은 최우수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것을 자축하면서, 흥겹게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얼큰하게 취한 뒤에는, 근처 노래방에서 노래도 실컷 불렀다.
세종시 근처에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펜션에서 그날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아침 인근 식당에서 맛있는 콩나물 국밥까지 배불리 먹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이제 6개월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동안 매일같이 봐왔던 동료들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모두들 섭섭해했다. 장미씨는 일산으로, 최선생님과 전장군님 부부는 집이 있는 횡성읍으로, 나머지 동료들은 둔내면으로 가야했다.
그 마음이 통했는지, 콩나물 국밥집에서 계모임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2달에 한번씩 만나기로 하고, 장미씨를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우리들의 즐거운 추억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동료들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