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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살아보기 퇴고글>교육이 끝나고 3년

- '농촌에서 살아보기'과정에 대한 오십번째 글

by 유진

2022년 4월에 시작한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은 그 해 9월말로 끝이 났다. 그러나 이 과정에참여했던 동료들은 1개월을 더 산채마을에 머무르기로 했다. 우리가 심어 놓은 농작물의 수확이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횡성군 둔내면에서는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기 직전인 10월 초중순경에 수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자, 고구마, 청양고추 등을 수확하고 나니까, 10월도 훌쩍 지나갔다.

우리 곁을 제일 먼저 떠나간 사람은 교장선생님 부부였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이들은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로 들어갔다. 그곳에 당분간 머물면서 템플 스테이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살펴주는 알바를 한단다. 다른 동료들과의 갈등이 제일 심했던 부부여서 인지, 그들은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어느 날 작별인사도 없이 짐을 꾸려서 나간 것이다. 몇몇 동료들도 그들이 나간 자리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한번 생긴 감정의 골이 쉽게 풀어지지 않는 가보다.

다음에 짐을 싼 사람들은 최선생님 부부였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 몸담고 있는 동안, 집을 얻으려고 횡성군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과정이 끝나기 직전에 횡성읍의 한 동네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4, 50가구가 사는 제법 큰 동네였다. 횡성읍의 중심가에서 차로 15분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곳이었다. 30평정도 크기에 방 두개가 있는 아담한 단독주택이었고, 백평정도 되는 자그마한 밭도 있었다. 텃밭을 가꾸면서 자신들이 먹을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들의 희망을 이룰 수 있는 곳이었다.

최선생님 형수님이 마을 사람들 사이로 스며드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사간지 얼마 안되어서 마을 부녀회에 들어갔다. 음식 솜씨가 좋은 형수님은 마을 회관에 오시는 노인분들에게 점심식사를 준비해주는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최선생님은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농사짓는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중 교장선생님과의 갈등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최선생님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에 힘을 기울인 듯 보였다.

전장군님 부부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 들어오기 전에, 횡성읍 변두리에 집 지을 땅을 구입한 상태였다. 나즈막한 야산을 개발해서 택지로 만든 곳이었다. 전장군님 주택지는 전체 택지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전망이 확 트여 있는 땅이었다. 그들은 다른 집에서 1년 정도 살면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으로부터 밭 7백평 정도를 임대해서, 감자, 고추,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을 심었다. 전장군님이 혼자 일을 하다시피 하면서, 귀농 첫해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한사람이 농사짓기에는 너무 큰 땅이었다. 결국 귀농 2년차에는 3백평정도로 규모를 줄였다.

귀농 2년차에 접어들면서 전장군님 부부는 농사보다는 이런 저런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즐겨했다. 서예, 영어 회화, 민화 그리기, 특용작물 재배 등등… 겨울이면 해외 여행도 가면서, 여생을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에게 적합한 제2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장 젊은 신반장 부부는 산채마을에서 보유하고 있는 민박집 네 채 중에서 두 채를 운영하기로 했다. 마침 산채마을에서 이 두 채에 대한 리모델링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좀더 고급스럽게 단장해서, 가격을 인상할 예정이었다. 신반장 부부는 리모델링과 운영계획을 만들어서, 김대표님에게 사업 제안을 하였다. 자신들이 펜션을 고급스럽게 꾸미고 운영해보겠다는 내용이었다. 김대표님은 신반장 부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대표님이나 가족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카페도 하고 있어서, 펜션을 운영할 여유가 없었다.

펜션의 리모델링이 진행되는 동안, 신반장 부부는 이웃 마을인 자포곡리에 집을 얻었다. 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크기의 이층짜리 전원 주택이었다. 자포곡리 집에 입주할 무렵, 펜션도 새롭게 오픈하였다. 산채마을 근처의 자연환경이 수려하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았다. 신반장 부부의 펜션 임대사업도 순탄하게 출발하였다.

이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났을까? 김대표님 가족은 펜션을 직접 운영하고자 했다. 코로나이후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족들의 수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반장과 이별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처음부터 계약기간이 있었던 관계가 아니었다. 갑자기 이별통보를 받게 된 신반장은 비즈니스 관계뿐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단절해버렸다. 김대표님 가족과 서로 얼굴도 보지 않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펜션 사업의 수입이 없어진 상태에서 시작한 농산물 가공을 통한 온라인 유통사업도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았다.

시골마을에서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진다. 김대표님과 관계 단절은 신반장 부부에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도 서먹하게 만들었다. 결국 신반장 부부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한다.

혼자서 교육에 참여했던 장미씨는 원래 살던 경기도 일산으로 돌아갔다. 농업은 여자 혼자 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육체적인 노동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공과 카페 운영 등에 관심이 많았지만, 횡성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했다. 동료들과 분기에 한번씩 만날 때 횡성을 방문하곤 한다.

나는 산채마을이 있는 횡성군 둔내면에 자리를 잡았다. 산채마을 근처에서 천여평이 되는 밭을 사서 하우스도 지었다. 이백평의 하우스에 토마토 재배를 하고, 5, 6백평의 노지밭에는 고추를 키우고 있다. 아직 초보 농부여서 수익이 많지는 않다.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토마토와 고추의 재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겨울마다 횡성군 기술센터를 포함해서 여기 저기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농림수산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강좌를 통해서도 꾸준히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

농사에만 매몰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half-day farmer’를 목표로 하였다. 2025년에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후배 기수의 한 친구와 같이 농사를 지면서, 좀 더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로 오전에만 농장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지낸다. 매일 매일의 삶을 담은 글을 쓰고, 수년동안 근근히 연습해오던 색소폰도 온라인 학교에 들어가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내가 원하는 제2의 삶의 모습에 점차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과정에 참여했던 10명의 동료들은, 제2의 삶을 만들어 보려고 횡성에 모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모두 각자의 색깔에 맞는 삶의 과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평상시에 지녔던 제2의 삶에 대한 꿈, 각자의 성향, 가족이나 경제적인 환경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들의 앞날에 행복한 삶이 펼쳐 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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