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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2. 2022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기둥 가공과 ‘일 머리’

  한옥집을 짓기 위한 가공작업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기둥 가공인 것 같다. 주춧돌 위에 세워진 기둥 윗부분에 보아지와 보, 장혀와 도리(때로는 창방도 포함)가 모두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제대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는, 기둥에 각각의 자리를 형태와 크기에 맞게 가공해줘야 한다. 집의 무게를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서로 잘 맞물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래서 기둥이 제 역할을 해야, 집이 제대로 서는 것 같다. 

  기둥의 가공작업은 보 – 보아지 – 장혀 – 도리의 순으로 4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로 보의 자리를 먼저 만든 다음에, 2단계로 보아지가 들어갈 자리를 가공한다. 보와 보아지는 같은 방향으로 들어가지만, 보아지가 보의 밑부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기둥의 양끝면에 십반선을 그렸다. 가공할 기둥 끝부분 중에서 표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곳을 천장을 향해서 돌려놓은 다음, 십반선을 그린다. 지상에서 보를 올려다 봤을 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대체적으로 원목을 기둥 모양으로 둥글게 깎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십반선과 비슷한 위치이다. 그리고 나무 옷과 선생님이 나무 판자에 치수에 맞게 잘라놓은 모형을 이용해서, 기둥에 밑그림을 그렸다.

 


  보 자리의 밑그림에 따라, 톱과 끌을 가지고 파내는 작업을 한다. 먼저 가운데와 양 끝 부분을 톱으로 잘라낸다. 나무결 방향으로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켤 톱을 이용해야 수월하게 잘라낼 수 있다.* 

(* 톱은 켤 톱과 자름 톱으로 나뉜다. 켤 톱은 목재를 나뭇결(섬유) 방향으로 자를 때 쓰고, 자름 톱은 나뭇결 방향과 직각으로 잘라낼 때 사용된다.) 

  그리고 넓은 밀 끌로 마무리 작업을 한다. 특히 가운데 배부분이 불룩 솟아 나와서, 보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배 부분은 좀 더 깊이 파준다. 내가 작업한 나무에는 밖에서 보이지 않던 옹이가 4개나 들어 있었다. 옹이 덕분에 이것을 끌로 파내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다음은 보아지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보아지는 기둥 하나에만 걸쳐 있어서, 빠지지 않게 턱을 만들어야 한다. 보보다는 두께가 얇기 때문에, 보 자리의 가운데 부분보다 넓지 않게 톱질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톱질한 곳의 가운데 배 부분이 불룩 나오지 않도록, 밀 끌로 다듬어 준다. 


  보와 보아지 자리를 가공한 다음, 장혀와 도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 추가로 밑그림을 그렸다. 보가 들어갈 자리에 직각방향으로 장혀가 들어간다. 기둥의 양쪽에서 장혀와 도리가 걸쳐지기 때문에, 장혀가 들어와서 밀리지 않도록 턱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도리 자리는 도리의 둥근 모양에 맞춰서, 둥글게 깎아준다. 둥근 도리 모양을 깎아줄 때는 둥글게 만들어야 하는 면에 가깝게 톱으로 일부 잘라낸 다음, 원형 끌로 일일이 깎아내야 한다.  


  나는 이런 작업이 서툰 것도 있지만, 중간에 또다시 옹이가 몇 개 더 나오면서 이것을 잘라내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알려준 치수대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치명적인 실패의 원인은 톱질을 잘못해서, 잘라내지 말아야 할 곳을 톱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내가 가공한 모양이 매끈하게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하게 장혀와 도리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었다. 물론 너무 거칠게 가공해놓은 것을 보고, 선생님에게 한 소리 듣고 말았지만.   


  나와 비교해서 일연은 아주 깔끔하면서도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것을 보면서 ‘일 머리’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일연은 목수 일을 전혀 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뭇결이나 나무의 상태에 따라 톱이나 끌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또한 어떤 순서에 맞춰서 잘라내야, 빠르게 가공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았다. 일하는 요령이 있어서, 소위 말하는 ‘일 머리’가 비상해 보였다. 일연은 이전부터 목재 가공을 좋아했단다. 그래서 집에서 수년동안 시간날 때마다 목재 가공작업을 취미로 했다고 한다. 그런 것을 보면 '일 머리'는 타고난 것이라고 보다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같다.   


  반면 나는 힘으로만 밀어 붙이려고 하니까 잘 안되었다. 요령도 부족했다. 우리 한옥 대목반의 9명 동료들도 서로 일 잘하는 수준이 달랐다. 누구는 자질은 좋은 것 같은데, 성실하지 않아서 실력이 빨리 늘지 않았다. 그런 반면 어떤 동료는 부족한 자질을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메꿔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하느님은 특정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도록 해주셨다. 부족한 능력을 채워나갈 수 있는 보완적인 능력을 주는 섬세함도 보여 주셨다. 이런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면서, ‘나에게도 하느님이 뜻하신 바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느님이 뜻하시는 제2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하는 고민에 빠져들기도 했다.


  며칠 전에 총무에게 시장을 봐오라고 돈을 쥐어 주었다. 기둥을 가공한 날 저녁에 우리 집에서 김치 고추장전과 파래 굴전을 부쳐 먹으면서,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초 매주 같이 술을 마시는 일연, 정수, 종철, 호권과 같이 마실 것으로 생각했다. 오겠다고 하는 다른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영화 보러 간 용현과 정환을 제외하고 8명이 내 집에 왔다.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서, 다들 전과 막걸리를 먹고 싶어서였다. 다리 부상으로 기브스까지 한 용섭이도 막걸리 몇 잔을 마시고 싶어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 파티는 총무가 사온 막걸리 큰 통 6병을 다 마시고, 코스트코에서 사온 와인 1병 반을 더 마셨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총무가 부친 전도 무척 맛있었다. 

  치악산과 오대산 옥수수 막걸리는 서로 맛이 달랐지만, 특유의 맛을 잘 빚어 내었다. 치악산 막걸리는 다른 막걸리보다 1도 높은 7도이다. 전체적으로 무겁지 않아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었다. 탄산끼도 살짝 있어서 목넘김이 청량하고 시원했다. 단맛도 그다지 강하지 않고 무난했다. 반면 오대산 옥수수 막걸리는 노란 색을 띄고 있으며, 구수하고 달았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장점이 다르듯이, 막걸리도 그 태생에 따라서 맛이 천차 만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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