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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19. 2022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삶의 기둥, 그리고 한옥의 기둥

  매년 10월쯤 받았던 건강검진을, 금년에는 12월 중순에야 진행할 수 있었다.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한옥학교의 수업 일정 때문이었다. 새벽에 일찍 인천 집을 나서서, 매해 건강검진을 받는 강남 서울대학병원으로 향하였다. 

  같이 가던 아내가 퀭한 얼굴을 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내시경을 받기 위해서 설사를 하느라, 밤을 지샌 탓이다. 거기에다가 높아진 혈압과 두통으로 검진 결과가 좋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을 했다. 나는 아내가 보기보다 건강 체질이니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다독여주었다. 그래도 아내는 듣는 둥 마는 둥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의 건강검진 예약자중 2번째로 도착해서, 일찍부터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큼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10시도 되기 전에 끝마쳤다. 아내는 수면 대장내시경과 머리 MRI 검사가 있어서 그런지, 나보다 1시간 이상 늦게 끝났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학교 수업시간 때문에, 먼저 평창으로 향했다. 대신 아내에게는 택시를 불러 주었다. 한참 뒤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아내가 전화를 했다. 대장 내시경까지 받아서 그런지, 전화 속 아내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젊었을 때 그렇게 활기차던 아내가 이제 늙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아팠다.  


  따뜻한 날씨 덕에 우리 대목반은 야외에서 맞배집의 기둥세우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우리가 만든 8개의 기둥과 보아지를, 지게차를 이용해서 야외 실습장으로 운반하였다. 8개의 기둥 중에서 가장 길이가 짧은 기둥을 골라서, 세우는 작업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기둥들을 가장 짧은 기둥의 길이에 맞춰서 잘라낸 후에 세우는 작업을 한다. 

  가장 짧은 기둥을, 안쪽의 한 주춧돌 위에 세웠다. 기둥이 무척 무겁기 때문에, 여럿이 달라 붙어야 겨우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주춧돌이 자연석이기 때문에 표면이 고르지 못해서, 기둥을 세운 뒤에도 계속 잡고 있지 않으면 넘어져 버린다. 그래서 비계 2층에 2명이 올라가서, 세워진 기둥을 잡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계층에 따라 주춧돌이 달랐다고 한다. 일반 평민들이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썼던 반면, 양반이나 귀족들은 반반하게 다듬어진 주춧돌을 쓸 수 있었다. 대목반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였던 자연석을 활용해서 실습을 진행하였다. 

  주춧돌에 그어진 십반선과 기둥의 둥근 표면에 그려진 4개의 중심선을 맞추어 가면서, 기둥을 세웠다. 그리고 기둥이 잘 서 있을 수 있도록, 고임목(구사비 또는 쿠사비)을 기둥 밑면의 4~5군데에 찔러 넣었다. 기둥을 조금씩 움직여서 주춧돌의 십반선과 맞출 때는, 커다란 나무 망치를 이용했다. 

  고임목으로 어느 정도 수평을 잡으면, 그 다음에는 기둥의 수직을 맞춰 나갔다. 기둥 표면의 서로 다른 중심선에 맞추어서, 균형추 2개를 꼭대기로부터 늘어뜨렸다. 그리고 균형추가 연결된 나일론 줄이 기둥의 표면에 그려진 중심선과 일치하도록, 기둥의 위치를 다시 한번 조정하였다.


  기둥의 수평과 수직이 잡히고 나면, ‘그랭이질’을 해야 한다. ‘그랭이질’은 자연석과 기둥이 맞닿는 부분이 잘 맞물릴 수 있도록 가공하는 기법이다. ‘그랭이’는 얇은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으로, 집게의 한쪽 다리에 먹을 찍어서 선을 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랭이를 사용하여 자연석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그대로 기둥에 옮겨 그리는 일을 ‘그랭이질’ 또는 ‘그래질’이라고 한다. 선생님은 대나무를 대신해서, 볼펜을 콤파스에 끼워서 사용하였다. 


  그랭이로 그려진 모양대로 전동 톱을 이용해서 잘라나갔다. 그랭이질을 잘못하면 기둥을 못쓰게 되기 때문에, 보통 숙련된 사람이 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해봤다. 제일 처음에 선생님이 시범을 보였는데, 전동 톱을 자유 자재로 다루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곡선으로 잘라내는 것뿐 아니라 기둥 밑동의 중앙부분을 좀 더 깊이 파주어야 한다. 선생님은 파내고 부드럽게 다듬는 모든 작업을 전동 톱으로 진행하였다. 이윽고 잘라낸 밑부분의 모습이 주춧돌의 표면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그랭이질과 톱질로 기둥 밑동을 완성한 다음에, 기둥과 기둥 사이에 쌓아 올리는 벽돌과 닿는 부분을 평평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춧돌 위에 얹혀지는 기둥의 밑동에, 외부로 향하는 숨구멍을 만들어 주었다. 7푼 끌로 2푼 정도 깊이의 구멍을 만들어준다. 이것은 기둥 안쪽이 썩는 것을 방지해주는 동시에, 기둥 속으로 기어든 벌레가 나가도록 유도하는 구멍이기도 하단다. 

  

  가공을 모두 마무리 한 다음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기 전에, 주춧돌 중앙부에 소금을 한 움큼 올려 놓았다. 기둥이 썩지 않게 하면서,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기둥의 뿌리가 이 소금을 빨아들여서, 기둥을 더 튼튼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단다. 


  여럿이서 기둥을 다시 세워서 제 자리를 잡았을 때, 다른 어떤 것의 도움도 받지 않고 기둥이 주춧돌 위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춧돌 표면의 생김새대로, 기둥의 그랭이질 한 부분이 잘 맞물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끈으로 기둥을 고정해놓았다. 기둥이 자리를 잡은 후, 기둥 꼭대기의 보아지 자리에 보아지를 꽂아 놓았다. 


  아내는 전화에서 대장에 있는 1센티 크기의 용종을 떼어냈고, 머리 MRI를 찍었던 기사가 좋지 않은 얼굴을 한 채 결과를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불안하다고 했다. 나는 크게 아픈 곳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대체적인 이야기를 해줄 건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안해주었다. 

  한옥집의 기둥이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으려면, 튼튼한 원목을 가지고 보와 장혀, 도리가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기둥에서 해충이 기어나갈 수 있는 홈을 파주고, 소금을 밑동에 뿌려준다.    사람도 역시 건강이 인생의 기둥역할을 한다. 건강하려면 신체의 각 장기가 제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하고 예방주사도 맞아야 한다. 건강한 사람만이 사회적 인간으로서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다. 한옥집의 기둥이 곧 삶의 기둥인 건강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번째 기둥 세우는 작업을 마무리 한 다음, 우리는 간단히 제사를 지냈다. 비닐을 펴놓고, 막걸리와 과자들을 기둥 앞에 진열해놓았다. 막걸리 한잔을 따라 놓고 기둥 윗면에 매달아놓은 줄에 돈을 찔러 넣은 다음, 기둥에 2번 절을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실습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선생님이 제일 먼저 절을 한 뒤, 나와 총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차례로 모두 절을 했다. 

  앞으로 만들어질 한옥집을 지키는 신에게 기원한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키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목수들 사이에서 집을 지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단다. 마치 우리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각자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간단히 제사를 지낸 다음, 다른 기둥을 세우는 작업을 했다. 이때도 첫번째와 비슷한 순서에 의해서 진행하였다. 다만 기둥의 높이를 처음 세운 기둥과 같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레벨기를 이용해서 첫번째 기둥과의 높이 차이를 기둥에 표시했다. 그리고 그 차이만큼 콤파스를 넓혔다. 넓혀진 콤파스로 그랭이질을 하게 되면, 기둥의 잘라내야할 크기까지 감안해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깥쪽이 아닌 내측 기둥 4개는 나중에 결합시킬 상방과 하방이 들어올 홈을 팠다. 한쪽은 1치, 다른 쪽은 2치 정도의 넓이로 구멍을 파냈다. 그래야 상하방을 결합할 때 용이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전동 톱으로 구멍을 파낼 경계선을 잘라주고, 우리가 끌을 이용해서 구멍을 파냈다.

  

  여러 개의 기둥이 세워지면서, 장혀를 기둥 사이에 꽂아놓기 시작했다. 장혀가 꽂히니까 기둥이 좀 더 단단하게 결속이 되었다. 기둥에 장혀를 꽂은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한 모습 같았다. 사람들이 어깨동무를 하듯이 서로의 눈 높이를 맞추고 친해지는 것이, 삶의 스토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다같이 힘을 합해서 8개의 기둥을 모두 세우고 나니까, 서로의 얼굴에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동료들간의 간극이 그만큼 줄어들면서, 우리들의 스토리가 또 하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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