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Feb 24. 2022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열정과 냉기 사이에서

  우리 38기 한옥 대목반 수업이 시작된 지, 어느 덧 3개월차에 접어든 12월 하순이다. 연말이라 많은(?) 동료들이 휴가를 가서, 수업시간에 썰렁해졌다. (우리 반 학생수가 10명밖에 안되기 때문에, 2~3명만 빠져도 빈자리가 커 보인다.) 날씨마저 영하 20도로 떨어지면서, 평창의 추위가 우리 실습실을 장악하였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나와 동료들은 수업 시작종이 울려도 난로 앞에서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추위가 우리의 행동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즈음에 왠지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잘 안될 정도로, 우리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10월 20일 입학했을 때 가졌던 초심을 잃어 버린 것일까? 아니면 연말이라서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들떠있는가? 하느님이 우리가 초심을 잊고 있음을 알아채고, 영하의 날씨로 우리에게 경고를 주고 있는 듯하다. 


  매주 월요일에는 Sketch-up 수업이 하루 종일 이뤄진다. Sketch-up은 건축을 할 때 많이 사용하는 설계 프로그램이다. 한옥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설계도를 그린다. 특히 한옥 목수 중에서 팀장 격인 소위 ‘오야지’가 되려면, 이 프로그램에 능숙해야 한다. 오야지는 팀이 지어야 할 한옥집을 Sketch-up으로 먼저 그려보고, 이것을 팀원들과 공유한다. 그러면 어떤 사이즈로 치목을 할 것인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가공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 한옥 대목 작업을 할 때, Sketch-up이 소통의 가장 중요한 tool이 되는 것이다. 


  3D로 구현이 가능한 Sketch-up 프로그램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어렵다. 많은 단축키의 기능을 웬만큼 사용할 수 있어야, 이것을 잘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기둥, 보, 서까래 등 한옥의 부자재들이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설치되는 지 알아야, 그 원리에 맞게 설계도를 그려 나갈 수 있다. 

  선생님의 진도를 잘 따라가면, 재미있는 수업이 될 것이다. 우리 동료들 중에서는 동진, 호권 등 몇몇 젊은 친구들은 진도를 잘 따라간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료들한테는 이 프로그램이 쉽게 문을 열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전 기수들도 이 과정이 중간 정도만 진행된 상황에서, 출석률이 이미 50%도 안되었다고 한다. 

  Sketch-up시간이 매주 월요일에 온종일 진행된다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서 없어졌던 ‘월요병’이 도졌다. 1, 2교시만 지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Sketch-up을 잘하는 목수이지, 전문적으로 교수법을 배운 적이 없는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요하거나 복잡한 부분을 가르칠 때는 천천히 진행하지 않고, 오히려 더 빨리 지나간다. 그래서 따라가지 못하는 대다수의 동료들은, 쉬는 시간에 서로 물어보면서 다음 수업을 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선생님까지 이해하기 어렵게 가르치니까, 쉬는 시간만 되면 동료들은 교실 밖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이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수업시간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도 빠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니 Sketch-up이 내 마음에서 한옥수업에 대한 열정을 빼앗아가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연말이고 추운데, Sketch-up시간에 머리까지 지끈거리니까, 모든 것이 싫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한옥학교에 들어온 이상, 한옥집 짓는 것을 배우겠다는 애초 목표는 이뤄야 하지 않겠는가? ‘6개월 과정에서 이제 막 전환점을 돈 상황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그러면서 왜 열정이 때로는 무기력하게 무너져 내리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12월의 차가운 평창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옥 대목수업에 대한 열정을 다시 살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삶의 기둥, 그리고 한옥의 기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