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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4. 2022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대들보와 삶의 무게

  초심을 잃어가는 내 마음을 다잡아 보기 위해, 실습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되뇌인다. 아무 생각 없이 치목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사라질 것이고 기대해본다. 

  지난 주에 기둥을 가공한 데 이어서, 이번 주에는 대들보의 치목과 가공작업을 시작하였다. 기둥이 한옥집에서 세로로 세워지는 가장 중요한 골격이라면, 보는 기둥 위에 가로로 얹혀지는 가장 중요한 뼈대라고 할 수 있다. 기둥과 함께 천장의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는 도리와 직각으로 만나며, 대들보, 종보, 충량, 퇴보, 우미량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중 대들보는 가장 큰 보로서, 천장에 노출이 되게 자리잡는다. 

  우리는 맞배집의 대들보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대들보로 쓸 나무를 골라서 가공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우리가 짓는 자그마한 맞배집에는 모두 4개의 대들보가 필요했다. 대들보 원목의 지름은 10치가 넘는 것들이다. 어른 4명이 덤벼들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이다. 

  대들보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두꺼운 나무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었다. 하얀 속살이 나올 정도까지 벗길 필요는 없지만, 먹선이 보일 정도는 벗겨내야 한다. 원목이 워낙 크다 보니까, 나무 껍질의 두께도 서까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거기에다 추워서 나무가 얼다 보니까, 나무 껍질 벗기는 작업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실습실 바깥에서 작업을 하는 데도, 등에 땀이 배일 정도였다. 


  대들보를 만드는 작업은 3단계로 진행된다. 기둥에 끼워지는 부분과 도리가 얹혀질 자리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맞배집의 외부로 튀어 나오는 보의 양쪽 끝 머리 부분을 보기 좋게 가공해야 한다. 

  나무껍질을 벗긴 다음에 맞배집에 필요한 대들보의 길이인 420센티미터에 맞게 잘라내고, 가공에 들어갈 부분인 보의 앞 뒤쪽을 가공할 크기에 맞게 전동 톱으로 잘라냈다. 이때 나무로 만든 장척을 이용해서 길이를 재고, 가공할 부분을 표시하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다. 


그리고 가공할 부분에 밑그림을 그려서, 따낼 부분과 모양에 대한 기초 작업을 마무리한다. 


  나무에 그려진 밑그림에 따라, 제일 먼저 기둥에 끼워질 부분을 톱, 끌, 그리고 전기대패를 가지고 작업했다. 전기대패로 표면을 말끔하게 정리한 다음, 톱과 끌을 이용해서 파냈다. 끌 작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깎아내야할 부분에 여러 번 톱질을 했다. 이미 여러 번 끌을 가지고 가공작업을 해봐서 그런지, 모두들 빠른 속도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보 4개를 나란히 놓고 작업을 해서 그런지, 4명이 나란히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담았다. 


  내가 작업하는 나무마다 옹이가 많이 나와서, 모두들 나를 ‘옹이선생’이라고 부른다. 내가 우리 동료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탓에, 이 별명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ㅎㅎ 이번에 내가 가공하던 대들보에서도, 어김없이 가공하기 전에는 안보이던 옹이가 4개나 나타났다. 그만큼 작업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들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소재가 되어서 좋았다. 


  기둥에 끼워질 부분이 만들어지면, 도리가 들어갈 자리를 파내야 한다. 대들보와 직각으로 만나는 도리의 크기에 맞게, 얹혀질 자리를 따냈다. 


  그동안 선생님은 대들보의 머리부분에 조각해야 할 모양과 크기에 맞게, 두꺼운 종이박스를 오려냈다. 이것을 대고 그대로 나무에 그리면, 가공해야 할 밑그림이 만들어진다. 밑그림에 따라서 대들보 머리의 가공작업을 마무리하고 몸통을 깨끗하게 대패질까지 하였다. 하얀 속살이 드러난 잘 가공된 대들보를 보니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부자재 하나 하나의 가공과정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온 종일 두꺼운 원목의 나무껍질을 벗기고 가공까지 하다 보니까, 추운데도 땀도 많이 났다.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서 그런가? 평상시 술자리를 가급적 피하던 호권이가, 소주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날의 번개 술자리는 호권이의 바램이 발단이 되어서 만들어졌다. 요리사 출신인 종철이가 소주 안주로 닭도리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장평의 정육점에 가서 닭을 사고, 수퍼에서 닭도리탕에 들어갈 재료들을 구입했다. 소주도 여러 병 사왔다. 

  이렇게 시작된 술자리에는 일연, 종철, 호권, 유상, 그리고 나까지 5명이 참석했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노래에 맞춰 유상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30대라는 젊은 나이인 유상이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유상이가 노래를 부르자, 한두명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떼창하는 것이 재미있어지자, 나무 젓가락을 들고 상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면서, 우리 동료들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삶의 무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목반에 있는 10명의 동료들은 저마다 사연을 가지고 있다. 수십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서 은퇴를 한 사람도 있고,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전신마비까지 왔던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이날 만들었던 대들보보다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웠을 것이다. 

  우리 동료들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버겁게 느껴졌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변화를 꾀하고자 이곳에 왔을 것이다. 은퇴하거나 그동안 해온 일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해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목수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광석의 노래가 우리의 이런 상황에 잘 스며드는 것같았다. 더불어서 학생이라는 신분이 그동안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같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들의 술자리는 항상 즐겁다. 마치 그동안 짓눌려왔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해방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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