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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Feb 27. 2022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새우 장과 대들보 올리기

  한옥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처음으로 긴 휴가시간을 보냈다. 2021년 12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동해안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연말연시면 동해안이 평상시보다 더 북적거린다. 지난 일 년 동안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해 첫 날 일출을 보면서 신년의 소망을 빌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차와 인파가 몰렸다. 눈 쌓인 해수욕장을 걷고, 주변 커피숍에서 파도 치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차도 마셨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찾아서 유명한 식당에도 가고, 회를 사기 위해서 주문진 항, 묵호 항, 대포 항에도 들렀다. 묵호 항에서 대게를 사서 집에서 삶아 먹었다. 밤 풍경이 아름다운 대포 항에서는 맛있는 생선찜을 먹고 나서, 대포 항 옆에 있는 튀김골목을 구경했다. 수십 개의 튀김 집에서 켜놓은 전등불이 대포 항을 밝히고 있었다. 이곳은 새우튀김으로 유명한 곳이라, 우리는 어느 튀김 집에서 새우튀김, 오징어튀김을 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먹은 튀김의 바삭한 맛은 잊기 어려울 것이다. 


  긴 연휴 뒤에 찾아온 한옥학교의 첫날은 무척 힘들었다. 가족과 함께 지냈던 연휴가 너무 행복했기 때문일까? 이제는 또 다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등교를 하면서 느낀 감정을, 글로 적어 보았다. 


겨울이면 시골은 동면에 들어간다.

논도, 밭도, 그리고 시골 농부도.

아침 학교 가는 길에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어느 시골집 굴뚝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탄난로의 흰 연기와 이웃집 흰둥이들뿐.


시골의 동면 속에서 새 희망을 찾고 있는 나만이,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마치 높은 산의 정기를 기초 삼아 희망의 씨앗을 만들려는 듯이.


해발 700미터 고지를 숨을 헐떡이며 오르면서 되뇌인다. 

너, 지금 제 길을 가고 있는 거지?


  이날 12월 마지막 주에 만들어 놓은 대들보를, 맞배집의 기둥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맞배집을 짓고 있는 야외 실습장으로 이동해서, 눈쌓인 실습장 바닥을 먼저 쓸어냈다.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해서이다.


  지게차로 대들보를 운반해와서, 대들보가 위치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렸다. 우리는 비계의 2층에서 기다리다가 대들보가 올라오면, 이것을 기둥의 보 들어갈 자리에 끼워 넣었다. 총 4개의 보가 올라갔다. 보가 들어갈 자리가 빡빡하게 가공되어 있기 때문에, 큰 나무망치로 보를 때려서 끼워나갔다. 


  이렇게 하나 둘씩 끼워갔는데, 세번째 보가 말썽을 부렸다. 기둥도 끼워 들어갈 자리의 중간부분이 나와 있었고, 보 머리의 가공한 부분도 중간에 배가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기둥과 보 머리가 맞닿는 부분을 끌로 깎아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겨우 보와 기둥이 맞아 들어갔다. 이 보와 기둥은 내가 깎았던 것이어서 미안했다.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빨리 끼워지기만을 바랬다. 


  이날 나는 내가 이쪽 영역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하게 치목하는 것은 반복작업을 통해서 숙달이 가능하지만, 부재들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 가공하는 것은 힘들었다. 정확하게 깎아내야 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무엇보다도 끌 작업을 하고 나면 팔목과 팔꿈치가 너무 아팠다. (나중에 알았는데, 대목작업을 잘하는 친구들도 팔목과 팔꿈치에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내 4개의 보가 다 끼워진 것은 석양이 건너편 산 정상에 걸터 앉아있을 때였다.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대들보와 기둥이 추위에 떠는 것을 안쓰러워 하듯, 오랫동안 태양 빛을 비춰 주고 있었다. 


  연말 가족들과 주문진 항에 방문했을 때, 100마리가 넘게 들어있는 러시아산 냉동 새우 한 박스를 사왔다. 요리사 출신인 종철이가 새우 장을 담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먹어본 일이 없는 나는, 강원도에서 유명한 새우 장을 꼭 먹어보고 싶었다. 

  이틀 전에 일연, 정수, 종철이가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새우 장을 만들었다. 100마리가 넘는 새우의 껍질을 일일이 벗겨내야 했다. 그래도 여러 명이 같이 하니까, 1시간도 안되어서 다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때 담가놓은 새우 장을 먹는 날이었다. 가능하면 많은 동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우리 대목반 10명을 모두 초대했는데, 그중 8명이 내 집에 모였다. 

  새우 장이 완전히 익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맛이 기가 막혔다. 지난 연휴때 주문진 항에서 사온 새우가 크고 실하기도 하였지만, 종철이가 가져온 간장이 일미였다. 이날 같이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뺀, 거의 70마리에 가까운 새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새우 장은 하얀 밥에 먹어야 제 맛이라는 종철이의 말에 따라 햇반 10개를 사왔었다. 이 햇반뿐 아니라, 내 밥솥에 있던 잡곡밥까지 금방 밑을 보였다. 


  동진이가 두 그릇을 후딱 먹어 치운 것을 보니까, 무척 맛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기숙사에 있는 동진, 정환, 용현, 유상 등이 와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내 마음이 즐거웠다. 기숙사에서 밥을 해먹기 어려워서, 밥을 잘 안 먹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은 밥을 안 먹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 안 하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새우 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면서 들었던 음악들이, 분위기를 더욱 돋워주었다. 우리 집에 있는 소형 스피커에 내 핸드폰의 유튜브를 연결해서, 동료들이 희망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스피커에 내 핸드폰만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잠시 DJ가 되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연말 연시에 각자 지낸 이야기도 하고 음악에 얽힌 추억도 이야기 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이렇게 새우 장에 얽힌 우리의 추억이 또 하나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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