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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0. 2022

<서른 두번째 이야기> 매생이 굴전과 동자주(童子柱)

  이곳 평창의 겨울은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춥다. 체감온도가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보통이다. 조금 춥다 싶으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진다. 바람까지 불어대면, 밖에 나가기가 싫어질 정도이다. 마을들이 보통 해발 600~700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1월 둘째 주에 그런 동장군이 찾아왔다. 우리는 외부 맞배집 작업은 엄두도 못 내고, 실내 실습장에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맞배집의 기둥과 보, 주심도리, 주심장혀, 그리고 서까래 등은 이미 완성하였고, 일부는 조립까지 마무리했다. 이제는 보위에 올라갈 동자주(童子柱)와 동자주 위에 올라갈 종장혀, 종도리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동자주는 말 그대로 작은 기둥인데, 보통 대들보 위에 올라가서 종장혀와 종도리를 떠받치는 역할을 한다. 종장혀와 종도리 위에 서까래가 있으니까, 결국 동자주는 서까래와 지붕의 무게까지도 떠안아야 된다. 그래서 동자주의 원 둘레는 상당히 크지만, 동자주를 떠받치고 있는 대들보의 크기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대들보와 만나는 부분은 대들보에 깎아놓은 구멍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가공해야 하고, 반대쪽은 종장혀와 종도리가 올라앉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동자주의 길이는 서까래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진다. 이 기울기를 ‘물매’라고도 하는 데, 만일 4치 물매를 준다고 하면, 대들보 길이의 절반 크기가 1자일때 동자주의 길이는 4치가 된다. 우리도 4치 물매를 주었는데, 대들보의 크기에 맞춰서 2.8자 길이로 만들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내연습장 문을 박차고 나와서 외부에서 원목의 치목 작업을 진행하였다. 전동 톱을 이용해서, 필요한 크기로 원목을 자르는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동 톱을 사용하면 톱밥 먼지가 많이 날릴 뿐 아니라,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여전히 전동 톱질이 서툴렀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 대로 전동 톱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전동 톱으로 나무를 깔끔하게 잘라낼 때는, 내 기분도 좋아진다.     

  길이 10자짜리 원목을 3등분하고, 각각의 원목을 정사각형으로 톱질하였다. 지름 1자짜리의 원목을 사방 7치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깎아냈다. 나와 일연이 같은 조가 되어서 작업을 했다. 일연이는 워낙 깔끔하고 빠르게 일을 잘 하기 때문에, 나도 한층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원목을 정사각형 모양으로 다듬은 뒤, 동자주 위에 올라갈 종장혀와 종도리가 들어 앉을 자리를 깎아냈다. 선생님이 종도리 크기에 맞게 두꺼운 종이를 잘라내서, 이것을 동자주 위에 올려놓고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손 톱과 끌을 이용해서 가공을 진행하였다. 종장혀와 종도리가 동자주와 직각방향으로 양쪽에서 맞물리므로, 양면에 같은 모양의 가공을 해야 한다. 일연과 나는 각각 한 부분씩을 맡아서 작업을 진행했다. 


  일연이 워낙 일을 잘한 덕에, 우리 조가 다른 조보다 빨리 동자주를 완성하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우리에게 종도리의 숭어 턱 깎는 작업을 맡겼다. 숭어 턱은 종도리와 동자주가 만나는 자리에 턱을 만들어서, 도리가 돌아가지 않게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숭어 턱도 치수대로 밑그림을 그린 뒤 따내는 작업을 진행했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아서 금방 마무리 되었다. 


  숭어 턱을 만들고 나니까 그날의 수업시간이 모두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날 저녁에 내가 지난 주말에 산 매생이와 굴로 전을 부쳐서, 술 한잔 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일연, 종철, 유상, 호권이와 함께 내 집으로 왔다. 종철이가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섞어서, 매생이 굴전을 부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일연이 옆에서 청양고추를 잘게 잘라서, 전을 부치는 재료에 넣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30분이 채 안되어서 첫번째 매생이 굴전이 완성되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매생이 굴전을 먹어보았는데,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맛있었다. 몇 주전에 먹었던 파래전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었다. 굴을 포함해서 생선류를 거의 안먹는 유상이 조차도, 맛있다고 하면서 잘 먹을 정도였다.

  “매생이는 파래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고, 그래서 비싼 거야. 거기에다가 매생이와 함께 싱싱한 굴이 들어갔고, 부침가루에다가 튀김가루까지 섞었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지.”

  종철이의 겸양의 말이다. 종철이가 요리를 잘 해서 맛있는 것인데. 이렇게 매생이 굴전을 먹으면서, 우리는 소주파와 와인파로 나뉘어졌다. 나는 빨리 취하는 소주대신에 와인을 마셨는데, 유상이와 호권이가 같이 마셨다. 반면 일연과 종철이는 곧 죽어도 소주였다. 

  매생이 전과 함께 한잔씩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유상이가 어릴 때 어렵게 자란 이야기, 자기가 연극을 하면서 겪었던 힘들었던 이야기 등등… 유상이는 아직 유명 연극인이 아니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듯했다. 

  호권이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남들처럼 여행을 가거나 자식들에게 다정다감한 아버지를 매우 그리워했단다. 그래서 사춘기에 아버지에게 반항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단다. 

  아직 젊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해서 많이 응원해주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어차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인생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이것은 특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유상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교육을 받는 기간에는 스트레스가 적기 때문에, 사람들간의 소통이 즐겁기 마련이다. 우리 한옥학교 38기도 역시 서로간의 만남이 즐겁다. 하지만 보통의 교육 동기들보다 유난히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30대, 40대, 50대가 골고루 섞여있고, 서로 과거에 경험했던 전문분야가 너무 다르다는 것이 즐거운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다. 특히 10명이라는 적당한 숫자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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