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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9. 2022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왕지 맞춤과 한옥의 과학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보다 훨씬 낮다. 실내 실습실조차도 너무 춥고, 오직 난로 앞의 좁은 공간만 따뜻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난로 앞에 모여서 흩어질 줄을 몰랐다. 보통 아침 체조가 끝난 뒤 첫 교시에는, 대패 날이나 전기 대패 날, 홈 대패 날, 끌 날 등을 가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날이 추워진 뒤로는, 칼 날을 가는 사람이 없어졌다. 너무 추워서 움직이기 싫은 것이다. 

  날이 추우니까 밖에 지어나가던 맞배집의 진도도 멈춰서 버렸다. 대신 실내 실습실 한 켠에 사모정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추운 날에는 사모정에 들어갈 부자재들을 가공했는데, 이 날은 짧은 종 도리와 장 도리, 그리고 종 장혀를 가공하였다. 

  이전에 원목을 이미 치목해놓았기 때문에, 가공만 하면 되었다. 사모정의 도리는 네 면에 한 개씩 총 4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도리끼리는 왕지 맞춤(또는 왕찌 맞춤)으로 결속시키게 된다. 왕지 맞춤은 두 부재가 수직으로 교차하여 결합하는 맞춤 방식으로, 부재가 원형인 경우에는 연결부의 모양이 곡면이라 조금 복잡하다.


  종 도리와 종 장혀는 사모정 지붕 꼭대기 부재인 찰주에 매달리게 된다. 아래 사진에서 지붕 꼭대기에 둥근 모양의 찰주가 있고, 그 밑에 종 장혀와 종 도리가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들의 무게를 네 방향으로 뻗어있는 추녀가 떠받치고 있다. 대신 종 도리와 종 장혀는 서까래를 얹는 기준점 역할을 하게 된다. 

  추녀와 서까래는 종 장혀와 종 도리의 무게를 감당해주고, 종 장혀와 종 도리는 서까래가 제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서까래의 무게도 일정부분 감당한다. 이렇게 추녀와 서까래, 그리고 종 장혀와 종 도리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모정의 지붕을 단단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이렇게 부재들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한옥을 단단하게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한옥의 과학적인 면인 것 같다.

  종 장혀와 종 도리, 그리고 주 장혀와 장 도리는 왕지 맞춤으로 사모정의 네 방향으로 단단하게 서로 결속되어 있다. 한옥 부자재들의 결속은 못이 아니라 나무들의 가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안전한 결속을 위해서 못도 추가로 박아 넣기는 한다.) 서로 결속되는 모양에 따라 다양한 가공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옥을 짓는 것이 어렵다. 대신 가공되는 모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구현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모정에는 4개의 면에 종 도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4개만 가공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4개 조로 나누어서, 종 도리의 왕지 맞춤을 하나씩 가공하였다. 종 도리 부재의 길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작업대(우마) 2개만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덕분에 서로 가까이에서 작업하면서, 가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진행할 수 있었다. 유머가 추위를 막아주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작업하는 중간 중간에 한 바탕 웃으면, 몸의 피로를 잊을 뿐 아니라 몸에서 열이 나면서 덜 추웠다. 그렇게 우리는 너나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하면서, 종 도리의 왕지 맞춤을 완성해나갔다.     

  왕지 맞춤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무 표면에 맞춤 모양을 그려 넣어야 한다. 그래서 종이 박스에 왕지 맞춤의 치수와 모양에 맞게 그린 다음, 이것을 나무 위에 덧대어서 그림을 그렸다.


  그런 다음 손톱을 이용해서 반원형의 맞물리는 면을 따냈다. 맞물리는 면이 비스듬한 사선으로 경사진 반원 모양이기 때문에, 톱질을 잘 해야 했다. 먼저 톱질해서 들어갈 면을 여러 번에 걸쳐서 톱으로 가이드 선을 만든 다음에, 본격적으로 톱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라내지 말아야 할 곳에 톱이 들어가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렇게 반원형의 맞물리는 면을 잘라낸 다음에는, 따낸 부분들이 배가 나오지 않게 안쪽을 끌로 더 다듬어줘야 한다. 


  그리고 난 뒤, 4개의 종 도리중 마루에서 쳐다 보았을 때 보이는 곳이 보기 좋은 부분을 마루로 향하게 하고, 밑에서 받치는 도리와 위에서 덮어지는 도리로 만들었다. 종 도리는 사모정의 지붕 꼭대기에 달려있어서 사모정 마루에서 잘 보이기 때문에, 보이는 부분의 부재의 피부가 예쁜 것이 좋다. 받을 도리와 덮을 도리가 정해지면, 왕지 맞춤의 마지막 가공단계인 옆면을 따냈다. 옆면은 원형이 아니라 직선형태이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받을 도리와 덮을 도리가 서로 잘 맞물리는 지 체크하면서, 필요한 부분을 추가로 따내는 작업을 하였다. 종 도리와 똑 같은 왕지 맞춤으로 장 도리도 작업을 마무리했다.


  종 도리와 장 도리의 왕지 맞춤 가공을 마무리한 뒤에, 종 장혀의 왕지 맞춤 작업을 진행하였다. 종 장혀는 위에 종 도리를 얹어야 하기 때문에, 종 도리와 같은 둥근 모양을 홈대패의 둥근 모양의 칼날을 이용해서 깎아냈다. 그리고 4개의 종 장혀끼리 서로 끼워질 수 있도록, 왕지 맞춤 가공을 하였다. 종 장혀는 원형이 아닌 사각형 모양이기 때문에, 왕지 맞춤 가공이 비교적 쉬웠다. 직사각형 부재의 절반을 따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리 가공에 이어서, 사모정용 장혀도 모두 완성하였다.  


  종 장혀가 완성되면, 그 위에 왕지맞춤으로 결합된 종 도리를 얹어서 서로 잘 맞는 지 체크해보면서 필요한 부분은 약간씩 다듬어주면 된다.


  전날 추위에 떨면서 동자주를 올리고 난 후, 몇몇 동료들과 근처 매기 매운탕 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었다. ‘산밑에’라는 식당이었는데, 집에서 걸어서 10분가량 소요되었다. 도로를 따라 걸아가는 것이 좀 춥기는 했지만, 술을 마실 것이기 때문에 차를 가져갈 수 없었다. 언젠가 아내를 데리고 이 식당에 온 적이 있었는데, 아내가 맛있게 잘 먹었던 식당이다. 더군다나 이곳 사장님의 성격이 활달하여서,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맛있게 먹었다. 

  사실 전날 매기 매운탕에 소주 한잔을 했기 때문에, 그 다음 날 사모정의 도리와 장혀 작업은 쉬엄 쉬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종 도리와 장 도리, 종 장혀로 이어지는 작업량이 오히려 다른 날보다 많았다.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전날 마신 소주의 숙취는 어느 새 사라져 버렸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는 활동량이 작기 때문인지, 전날 마신 술의 숙취가 오후까지도 남아있곤 했다. 하지만 한옥 짓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숙취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평생 사무실에서 근무해온 나로서는, 이 또한 한옥을 배우는 과정에서 얻은 건강에 대한 지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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