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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8. 2022

<한옥 대목반> 한옥학교에 입학하다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첫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 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 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써 내려가 본다.  


  실습실 한 켠에 기둥, 장혀, 도리, 서까래 등 한옥 부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지난 3주간 우리 대목반 학생들이 다듬은 것들이다. 3주 전만해도 한옥부재들 이름이 낯설었다. 아니 원목을 치목할 때 사용되는 전기 대패, 전동 톱, 홈 대패 등 각종 장비들 조차도 처음 접했던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원목으로 한옥부재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문득 3주전 평창 한옥학교에 지원했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2020년 말 현업에서 손을 떼면서, 인생 2막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고민을 수개월 동안 해왔다. 어떤 가치를 만들면서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좋은가?

  뻔한 질문이어서 해답도 쉽게 찾아질 줄 알았다.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나갈 아이디어를 십 수개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 지에 대한 결심이 쉽게 서지 않았다. 전혀 해보지 않은 영역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도 되는 젊은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적어도 몇 십 년의 남은 삶을 채워나갈 콘텐츠이기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 보았다. 앞으로 내 삶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나 습득해야 할 기술이 무엇일까? 어차피 배워야 할 것이라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No regret move' 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귀촌(귀농?)할 때 필요한 것들이라고 결론지었다. 사실 아내와 나는 오래 전부터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살고 싶었다. 그 중 가장 선호하는 곳이 강원도였다. 높은 산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산이나 바다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를 하면서, 산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반하기도 하였다. 한라산을 비롯한 여러 오름들도 걸어 올랐다. 크고 높은 산은 듬직하게 우리를 품어주어서 그런가? 우리는 산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나무가 내뿜는 신선한 공기가 좋았고,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햇살의 따뜻함을 즐겼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리 산 주위를 헤매고 다녀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바다도 풍부한 감성을 만들어주었다. 바닷가 찻집에서 따뜻한 커피의 향을 느끼면서 바라보는 바다는 너무 좋다. 백사장의 모래를 밟으면서 걷는 느낌도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고요하다가도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추워진다. 특히 겨울바다는 바람이 거세다. 제주도 근처의 섬에 가는 배에 올라타서도, 바다는 호락호락하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 바다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편안함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바닷가보다는 산 주변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강원도로 귀촌을 하려면, 단순하게 집이나 땅을 사면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강원도로 이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기로 했다. 그 첫번째 작업이 평창 한옥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면서, 전원주택의 a, b, c를 알아가고 싶었다. (한 대학교 친구가 춘천에 있는 본인 소유의 야산에 펜션을 지어서 판매하는 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도 약간(?)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강원도에서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운 좋게도 평창 한옥학교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평창 한옥학교는 한옥 대목반, 소목반, 목조 주택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클래스에서 일년동안 입학시킬 수 있는 학생수는 총 30명이란다. 모두 6개월 과정이므로, 각 과목별로 4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서 클래스가 운영된다. 이중 4월 과정에서는 각 클래스마다 20명씩 총 60명의 학생을 선발했다. 반면 10월 과정에서는 10명씩 총 30명밖에 뽑지 않는다. 올해 10월 과정에서는 학교 사정으로 목조 주택반이 개설되지 않아서, 학생수가 총 20명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경쟁률이 다른 때보다 높았는데도, 선발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옥 대목반 과정을 함께할 동료들과 처음 만난 날은 2021년 10월 20일이었다. 아직 가을이어서 날씨가 무척 청명하였다. 특히나 이곳 평창 한옥학교가 해발 650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을 둘러싼 높은 산들과 하늘이 매우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장소였다.

  처음 등교하는 길,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은 황홀하였다. 높은 산을 타고 떠오르는 아침 태양은, 하늘과 땅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자그마한 농촌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멀리 인천에서 온 나를 따뜻하게 환영하는 듯한 아침이었다.

  학교는 각 클래스마다 실습실이 있고, 이외에도 기숙사와 행정실 및 강의실 건물이 있었다. 이렇게 학교는 총 5개의 건물로 구성되었다. 10월 20일 아침 9시, 강의실에서 우리 대목반 동료들을 처음 만날 수 있었다. 총 10명으로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좋은 인원 수였다. 쉽게 친해질 수도 있고, 실습하기에도 적당한 숫자였다. 한옥학교 교장선생님과 행정실장님이 차례로 들어와서 학교 소개도 하고, 학교 생활의 규칙 같은 것도 공유해주셨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우리 동료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총 10명의 대목반 학생들은 30대가 3명, 40대가 4명, 그리고 50대가 3명으로 구성되었다. 지난 기수만 해도 50대가 중간 나이 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팀 구성원들이 훨씬 젊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대목반의 수업 분위기와 취업의 용이성을 감안해서 이렇게 뽑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 동안 쌓아온 경력도 매우 다양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반도체 클린룸 제작자, 사진작가, 해외 주재원, 대기업 직원, 대형 크레인 기사, 연극인 등등... 서로 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슷한 사람들보다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였을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옥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한옥 건축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4~5명에 불과하다는 점에 놀랐다. 그만큼 한옥학교 지원 목적도 다양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앞으로 재미있는 일상이 펼쳐질 것 같아서, 약간 흥분되기도 하였다.

  우리 한옥 대목반을 담당하는 교수님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교수님은 한옥 건축분야에서 25년이상 된 베테랑이고, 오대산 월정사의 몇몇 사찰 건물과 명상센터 건물들을 지은 분이라고 한다. 다른 교수님들이 우리 교수님을 ‘상남자’라고 소개했듯이, 첫눈에도 화끈한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다운 강한 인상을 주는 얼굴이었고, 목수 경력이 많아서 그런지 말도 걸걸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평창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한옥학교에서의 선생님들, 동료들과의 첫 만남은, 앞으로 이곳 생활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기에 충분하였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작된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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