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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29. 2022

<한옥 대목반> 생김새와 쓰임새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두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 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 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써 내려가본다. 


  지난 주에 주문해놓은 손 대패와 끌, 그리고 손 톱이 벌써 도착했다. 이것들은 개인 용구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제공하지 않고, 학생들이 각자 준비해야 했다. 평상시에 목공 취미를 가지고 있던 몇몇 동료들은 집에서 쓰던 것을 가져왔다. 주문했던 도구들은 모두 분해된 채로 도착했다. 끌은 끌 날과 나무 몸통으로, 손 톱도 톱 날과 뿔로 된 몸통으로, 그리고 손 대패는 대패 날과 나무 몸통으로. 우리는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대로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끌은 망치로 몸통의 머리부분을 때려가면서 사용하는 것이라서, 굳이 처음부터 끌 날과 몸통부분을 꽉 죄일 필요는 없었다.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꽉 물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끼워 넣었다. 톱 날은 몸통에 끼움쇠가 설치되어 있어서, 쉽게 끼울 수 있었다. 다만 손 대패는 바로 조립하지 않고, 나무 몸통을 오일에 하루 정도 담가놓았다. 몸통이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사용하다 보면 뒤틀리거나 갈라지기도 한단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다.

  개인 도구들을 조립한 다음에는, 도구들의 칼날 부분을 숫돌에 가는 방법을 배웠다. 어려서 한글을 배울 때 자음과 모음을 먼저 배우듯이, 우리도 가장 기본적인 관리법을 배워 나갔다. 손 톱날은 무뎌지면, 칼날 부분을 교체하면 된다. 하지만 손 대패와 끌은 숫돌에 칼날을 잘 갈아서 사용해야 한다.

손 대패와 끌의 칼날부분을 숫돌에 가는 방법은 비슷하다. 손 대패의 칼날은 주 날과 보조 날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 날만 숫돌에 갈아주면 된다. 보조 날은 주 날이 나무를 잘 깎아 나갈 수 있도록, 주 날을 나무 몸체에 고정시켜주는 역할만을 하기 때문이다. 주 날은 다시 나무를 잘라낼 칼날부분과 몸체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대패 날을 잘 갈아주려면, 칼날부분이 숫돌에 밀접하게 맞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양손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서 칼날의 뒷부분을 지긋이 눌러주면, 칼날이 균일하게 갈아진다. 하지만 주 날의 특정 부분만 갈아지게 되면, 나무가 잘 깎이지 않는다. 


  대목반 실습실은 최대 20명정도의 학생이 동시에 실습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눈짐작으로는 거의 100평가까이 되어 보인다. 실습실에는 추위를 달래줄, 제법 큰 목탄난로와 기름난로가 1개씩 설치되어 있었다. 목탄난로는 실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목탄난로로부터 두꺼운 연통이 ‘ㄱ’자 모양으로 외부로 뻗어 있었다. 

  우리는 실습실에 있던 길다란 책상 2개를 목탄난로 옆에 갖다 놓았다. 이 책상 위에서 주로 대패 날을 비롯한 각종 칼날가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난로의 따뜻한 기운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숫돌을 책상 위에 놓고, 두 줄로 마주보고 서서 대패 날을 갈았다.

  대패 날, 끌 날 등 칼날 가는 법을 배운 날부터, 매일 아침 첫 시간은 목탄난로 옆에 놓인 책상에 모여서 칼날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목수는 자고로 그날 현장에서 사용할 대패 날이나 끌 날 등 각종 칼날을 미리 잘 갈아놓는 것이 기본이다.’라는 선생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가 숫돌에 칼 날 가는 아침 첫 시간의 분위기에서, 옛날 시골 우물가나 냇가에서 마을 여인네들이 둘러앉아 빨래를 하던 모습이 연상된다. 마을 여인네들은 빨래를 하면서 이런 저런 애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한바탕 빨래 장터를 연다. 그러면서 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었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우리도 아침시간에 칼 날을 갈면서, 어제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고 받거나 지난 날 재미있었던 경험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는 용기를 주는 덕담도 건네곤 했다. 


  하지만 첫 날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조용한 분위기에 모두들 대패 날을 가는 것에 집중했다. 대패 날이 숫돌을 오고 갈 때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만 여기 저기서 들려왔다. 선생님은 동료들이 대패 날 가는 자세를 교정해주거나,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선생님이 동료들이 갈아놓은 대패 날을 살펴보다가, 김종석의 대패 날을 보고 칭찬해주었다. 균일하게 칼날이 잘 갈아진 것이다. 그러자 종석이는 칭찬을 받는 것이 쑥스러운지,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가 요리하는 칼잡이여서, 칼날을 수도 없이 갈아 봤거든요. 대패 날도 비슷해서 잘 갈 수 있었어요.”

  종석이는 20여년 동안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해왔다. 그는 요리뿐 아니라 이런 저런 손재주가 좋았다. 이날은 종석이의 데뷔 날에 불과했다. 수업이 진행된 6개월 내내, 치목부터 목재 가공까지 전 과정에 걸쳐서 가장 우수한 학생중 하나로 꼽혔다. 

  반면 내가 갈아놓은 대패 날은 이곳 저곳 깔끔하지 않게 갈아졌다. 어려서부터 집에서 전기 기구를 손보거나 기구를 이용해서 뭔가를 고치는 것은 나보다 남동생이 항상 잘 했다. 결국 내 남동생은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전기자동차의 전기 전자 장비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목수일을 잘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 평창한옥학교 한옥 대목반에서는 내가 평생 해보지 않은 일을 경험해보는 데 만족할 생각이다. 기대가 높지 않아서 인지, 내가 대패 날도 제대로 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책도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칭찬도 기대하지 않았다. 

  

  대패 날을 가는 숫돌도 400방, 1천방, 6천방을 주로 이용하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표면이 부드러운 것이다. 처음에는 400방을 이용해서 칼날을 갈아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칼날이 날카롭게 만들어지면, 1천방과 6천방 숫돌에서 갈아준다. 

  칼날이 제대로 갈아지면, 주 날을 먼저 몸통에 끼우고 난 후에 보조 날을 삽입한다. 망치로 주 날과 보조 날을 번갈아 치면서, 적당한 깊이까지 끼워준다. 너무 깊게 끼워 넣으면 나무를 깊게 잘라내게 되기 때문에, 손 대패가 잘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 날이 보조 날보다 1밀리미터정도 더 깊이 박히게 하면 좋다. 두 날사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잘린 나무조각이 두 날사이에 끼게 되어서 나무가 잘 깎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구들마다 그 생김새에 맞게 관리해야 하듯이, 도구들마다 그 쓰임새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나무를 잘라낼 때는 손 톱을, 홈을 파거나 곡선부위를 다듬을 때는 끌을, 그리고 목재 표면을 부드럽게 다듬을 때는 손 대패를 사용한다. 

  어쩌면 사람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도 그 생김새에 맞게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쓰임새에 맞게 역할을 한다. 그래야 사람간의 관계도 원만하고, 사람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이치일 것이다. 

  이날 배운 기본 도구들의 생김새에 따른 관리방법과 쓰임새에 따른 사용방법은, 목재작업 경험이 거의 없었던 우리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재미있었다. 이때 배운 것들은 이후에도 계속 활용해야 하는 중요한 기초 기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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