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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pr 01. 2022

<서른 여섯번째 이야기>아름다운 선, 앙곡과 안허리곡

  평고대를 추녀의 양쪽에 걸어준 다음, 앙곡과 안허리곡이 나올 수 있도록 노끈으로 묶어서 잡아 당겼다. 평고대로 쓴 나무가 많이 굽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앙곡과 안허리곡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노끈을 좀 더 힘차게 죄었다. 그 순간 우지끈하는 작은 소리가 났다. 나무가 자신의 유연성에 한계가 왔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결국 우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 선에서 맞배집의 앙곡과 안허리곡을 만들기로 했다. 


  앙곡은 한옥을 지상에서 올려다 보았을 때, 처마의 가운데 부분보다 귀퉁이의 처마 끝이 올라가도록 처리한 선이다. 그리고 안허리곡은 한옥을 지붕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 귀퉁이 처마 끝부분보다 가운데 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간 선이다. 아래 사진은 부석사 무량수전인데, 안허리곡과 앙곡이 잘 나타난다. 맞배집 처마의 네 면에 돌아가면서 만들어진 안허리곡과 앙곡으로 인해서, 처마의 선이 물결치듯이 아름답게 둘러치고 있다. 한옥이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이라고 생각한다.  


   처마의 선을 만들어주는 부재는 평고대이고, 이 평고대의 곡선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추녀이다. 추녀는 사모정 지붕의 네 모서리에 45도 방향으로 걸리는 부재이다. 추녀는 처마보다 보통 1~1.5자 정도 더 긴데다가, 서까래 바깥쪽으로 뻗어나온 부분이 하늘방향으로 약간 휘어지게 가공을 한다. 평고대가 앙곡과 안허리곡을 잘 만들 수 있도록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추녀의 바깥으로 나온 끝부분에 아름다운 무늬를 가공해서, 한옥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이 무늬를 가공하는 첫 단계는 가공할 무늬를 두꺼운 종이에 그려서 오려낸 다음, 나무에 올려놓고 그대로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다. 


   밑그림을 따라서 전동 톱으로 가공할 부위를 잘라낸 뒤, 가운데 부분이 오뚝하게 솟아나도록 코를 만들어주는 작업을 대충한다. 그리고 난 뒤 끌을 이용해서 무늬 면을 고르게 깎아주면서, 코를 세워주는 작업을 진행한다.


  추녀 가공을 마무리 한 뒤, 우리는 평고대를 만들었다. 평고대는 추녀와 추녀를 연결하는 가늘고 긴 곡선부재이다. 서까래를 올릴 때 중요한 기준선으로 작용해서, 처마곡을 만들게 된다.


  평고대 작업은 비교적 간단했다. 원형 톱으로 치목한 부재를 2.5치만큼 잘라냈다. 구부러진 부분에서 원형 톱이 잘 들어가지 않아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잘라 나갔다. 그렇게 앞 뒤를 원형 톱으로 잘라주면, 나무가 2.5치 넓이로 잘라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 원형 톱이 들어간 자리를 전기 대패로 다듬어 주면 끝이다. 


  이제 평고대를 사모정에 걸어야 할 차례이다. 사모정에서 한 면의 중심점을 잡아서, 서까래를 하나 걸었다. 이 서까래가 평고대를 받치는 역할을 해준다. 사모정의 한 면에는 보통 두개의 평고대를 이어서 걸어준다. 하나의 평고대가 사모정의 한 면을 커버해줄 정도로 길지 않기 때문이다. 평고대가 걸리면, 그 위에 서까래를 조립하는 것이 다음 차례이다. 


  평고대 거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용섭이가 다가와서 ‘오늘 홍어회와 막걸리를 사갈 테니까, 내 집에 가도 되냐’고 물었다. 용섭이가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심 어제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오늘은 쉬고 싶었지만. 그래서 일연, 종철이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했다. 나 혼자 용섭을 당해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ㅎㅎ

  용섭이가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대화면의 하나로마트에 가서 홍어회와 막걸리를 사왔다. 그렇게 6~7명의 동료들이 내 집에서, 홍어회와 막걸리를 먹었다. 그리고 같이 사온 수육용 냉동 돼지고기를, 종철이가 수육으로 만들었다. 냉동 홍어회와 돼지고기였지만 맛있었다. 

  용섭이가 발목을 다쳐서 기브스를 한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여전히 일부 뼈들이 붙지 않아서 기브스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당초 예상했던 4~5주보다 2주이상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용섭이는 국가대표 복싱 상비군출신일 정도로 운동을 좋아한다. 더군다나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런 용섭이었기에, 다리를 기브스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큰 대접에 막걸리를 붓더니, 그것을 한번에 다 마시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잔을 연달아 들이키더니, 이곳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이 너무 좋고, 이렇게 같이 모여서 술 한잔씩 하는 분위기가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불그레해진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마치 사랑고백을 하듯이 수줍게 이야기하였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우리들도 덩달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강릉에 놀러 갔던 용현이가 콩비지를 가져다 주었다. PCR검사를 받았던 용현이, 정환이, 그리고 유상이가 하루 쉬면서, 강릉 순두부마을에 놀러 갔다 온 것이다. 우리는 콩비지를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홍어에 콩비지까지 상위에 올라오니까, 동료들은 맛있는 밥을 찾았다. 배불리 먹고 마시는 사이에 먹을 것이 떨어져 갔다. 그러자 밤 9시쯤 일부 동료들이 돌아가고, 몇몇 동료들만 남아서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갔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하고 즐거운 시간을 지내는 것이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인 것 같다. 한옥에서 아름다운 앙곡과 안허리곡이 있듯이, 인생에서는 행복한 선(스토리)이 있는 것이다. 이런 행복한 선들로 인생이 아름답게 꾸며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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