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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r 16. 2022

<서른 네번째 이야기> 겨울의 외로움과 동자주 올리기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동료들은 난로 앞에서 1미터 이상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1교시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려도, 모두들 난로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에 진행하던 맨손 체조도 간략하게 몸만 풀고 말았다. 

  추위로 모든 것이 얼어붙었던 1월에도, 오후가 되면 잠시나마 햇빛이 사방을 따뜻하게 해주곤 했다. 그런 어느 날, 선생님이 야외 실습장에서 동자주를 올릴 준비를 하자고 하신다. 우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귀마개를 하는 등 단단히 추위에 대비를 하고, 맞배집을 짓고 있는 야외 실습장으로 나갔다. 

 동자주는 대들보의 중앙에 올라가기 때문에, 중앙점을 잡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줄자로 첫번째와 네번째 보의 중앙점을 잡은 다음, 그곳에 피스를 박고 실을 연결하였다. 그렇게 모든 대들보의 중앙을 잇는 선이 만들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대들보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중앙 2개의 대들보 밑에 비계(B.T. 비계)를 추가로 설치하였다. 


  안전한 작업 공간이 만들어진 후, 각 대들보의 중간에 동자주가 올라앉을 두 개의 홈을 팠다. 우선 전동 톱으로 길이 부분을 잘라내고, 끌로 홈을 파냈다. 추위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공중에 설치되어 있는 대들보의 위나 옆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자세 잡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두 보 1개에 2~3명씩 달라붙어서 열심히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홈 파는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참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다. 날씨가 추워서 야외작업을 하기 싫었을 테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을 진행했고, 선생님이 작업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하나라도 더 배우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너무 추워서, 동자주가 들어갈 홈을 파내는 작업까지 마무리하고 실내 작업실로 돌아왔다.


  며칠 뒤 야외에서 수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해진 오후, 우리는 다시 야외 맞배집 실습장으로 나갔다. 며칠 전에 따놓은 동자주 자리에, 동자주를 올리러 간 것이다. 야외로 나가기 전에 대들보의 홈에 들어갈 동자주의 끼울 부분을 톱과 끌로 따냈다. 동자주 4개중 2개만 가공을 했다. 나머지 2개는 보의 두께에 따라서 동자주 길이를 조정하면서, 현장에서 가공할 계획이다.  


  야외 실습장에 가서 대들보의 홈에 동자주의 끼울 부분을 맞춰보았는데, 잘 맞지 않았다. 현장에서 전동 톱과 끌을 이용해서, 대들보의 구멍이나 동자주의 끼울 부분을 가공하면서 맞춰 나갔다. 동자주를 세우고 나면, 동자주와 대들보를 대못으로 단단히 묶어놓았다. 

  겨울의 따뜻한 오후 햇볕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해가 지기 전에는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어와서, 곧 어둠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고해준다. 이곳 날씨에 익숙한 선생님은, 그래서 더욱 서두른다. 하지만 우리 동료들은 추위에 행동조차 느려져 갔다. 성격이 급하신 선생님은 전동 톱으로 동자주 가공작업을 직접 진행하였다. 동료들이 끌로 파내는 작업을 하게 되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전동 톱을 이용해서 부자재를 만드는 작업은 숙련도가 필요하다.) 그렇게 동분서주한 선생님 덕분에 작업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실내 실습장에서 미리 가공하였던 2개의 동자주를 보에 고정시키고 난 후에, 나머지 동자주 2개를 가공하였다. 가공 작업을 하다 보니까, 다시 추워져서 모두 실내 실습장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날씨가 허용하는 날에만 야외 실습이 가능하다 보니까, 동자주를 올리는 작업은 여러 날에 걸쳐서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 동료들과 동자주 올리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추운 겨울철에 접어들면서 찾아온 허전함을 잠시 잊어 버릴 수 있었다.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진 날씨 때문인가? 문득 문득 허전하고 외로운 감정이 내 마음의 한 켠에 자리잡으려 한다. 어쩌면 날씨보다는 내 인생의 나침반을 찾지 못한 탓이리라. 특히 추운 날 아침이면, 학교 가는 길에 외로움이 찬바람과 함께 스며들곤 한다. 


새벽의 어슴푸레한 어둠이 학교가는 길에 동행한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길 안내를 해주겠다고 따라 나선다.

집 앞을 나서면 반갑다고 인사해주던 새들이 어디론가 가고 없다. 

몇 발자국 지나 들리던 개울물 소리도 이제 하얀 얼음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꼬리를 흔들며 짖어주던 이웃집 흰둥이도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항상 학교가는 길에 마주쳤던 이웃집 아주머니의 그림자도 발견하기 어렵다. 

동장군에 쫓겨서 모두들 숨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여명이 걷힌 학교에 들어선다. 

내가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있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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