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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05. 2022

<마흔 세번째 이야기> 건축목공기능사 시험

  동료들의 시선이 전화를 받고 있는 종철이의 얼굴에 꽂혔다. 이날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보는 다른 동료들의 소식에 대해, 모두 궁금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종철이의 얼굴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실습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던 종철이가, 몇 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일연이 형님이 시험 중간에 시험장을 나와 버렸대요. 설계도를 잘못 그리는 바람에, 목재 하나의 가공을 완전히 망쳐 버렸대요.”

  나를 포함해서 동료 7명이 기능사 시험에 응시를 했다.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장은 전국에 산재해 있었는데, 우리들은 강릉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3월 23일은 강릉에서의 첫 번째 시험일이었다. 일연, 유상, 정환이가 시험장인 강릉종합고등학교로 새벽에 떠났었다. 시험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5시간 동안이었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일연에게서 좋지 않은 소식이 온 것이다. 다음 날 시험을 치게 되어 있는 동료들은 이 소식에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연이가 우리 동료들 중에서, 기능사 시험준비를 제일 잘 했기 때문이다.


  기능사 시험은 실기로만 치러지고, 시험시간에 만들어야 하는 작품은 미리 공개되어 있었다. 시험용 작품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실용적인 작품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것이었다. 여러 번의 연습이 필요했기 때문에, 우리는 3월초부터 시험을 대비한 연습시간을 가졌다.   


  작품이 어렵다 보니까, 현치도(現寸圖; 실제수치로 만들어진 설계도)도 매우 복잡하였다. 선생님이 현치도를 종이에 그려서 칠판에 걸어놓고, 그리는 법을 설명해주었다. 사선 등 다양한 모양을 그려 넣어야 했다.


  현치도가 완성되면, 이 위에 나무 부재들을 올려놓고 밑그림 그리는 작업을 했다. 시험에는 A부터 G까지 크기가 다른 7가지 크기의 목재들이 이용된다. 시험장에 준비된 각 부재들이 정확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전기 대패로 먼저 다듬어야 한다. 


  각 부재에 밑그림이 그려지면, 주로 손 톱과 끌을 이용해서 가공을 해나간다. 작은 목재를 가공하기 때문에, 목재 일부분이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톱질이나 끌질을 조심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험장에서는 목재를 필요한 수량만큼만 주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곧바로 탈락이었다. 

  현치도와 나무에 밑그림 그리는 작업은 반복 연습을 통해서 숙달시켜야 했다. 그 중에서도 톱질은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결국 누가 톱질을 정밀하게, 그리고 실수하지 않고 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했다. 직선보다 톱질이 어려운 사선방향으로 잘라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려웠다. 심지어 W자 모양으로 톱질을 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이렇게 톱질을 한 단면들이 서로 조립을 했을 때 딱 맞아야 한다. 만일 맞물리는 목재 사이가 일 센티미터 이상 떨어지게 되면, 탈락이기 때문이다.


 시험에 나오는 작품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하루 만에 완성하지 못했다. 현치도를 그리는 작업부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W자 모양으로 만들어야 하는 C부재는 밑그림에 따라 톱질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작년에 시험에 떨어져서, 우리랑 같이 준비를 하였던 유림이란 친구는 오후 2시 정도면 작품을 완성하고 퇴근하곤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유림이란 친구가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가공하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일연이나 종철이, 호권이와 같이 목재 가공수완이 탁월한 친구들은 금방 숙달되었다. 한두번 해보더니, 5시간도 안되어서 작품을 마무리하였다. 시험 시간이 다섯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더 이상 연습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일찍 시험용 작품에 숙달된 친구들은 그 뒤부터 쉬엄 쉬엄 연습을 했다. 다른 동료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반면 나를 포함한 다른 동료들은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을 뿐 아니라, 정밀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조립을 했을 때, 맞물리는 부재들간의 간격이 많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시험용 작품을 한 개씩 반복해서 만들기로 했다. 일 머리가 있는 친구들만큼 따라가기 위해서는 노력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8시 20분 첫 교시가 시작되면, 현치도부터 그려나갔다. 그렇게 몇번 반복하니까,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시험용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틀이 소요되었던 작업이었다. 


  드디어 건축목공기능사 시험 보는 날이 밝아왔다. 같이 시험을 보는 종철, 정수, 그리고 호권이 모두, 내 차를 이용해서 강릉 시험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내 집에서 아침식사를 같이 하고 떠나기로 해서,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모두 내 집에 모였다. 종철이가 시금치를 넣어 끓인 다슬기 국을 가져와서,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시험을 앞두고 모두 긴장한 탓일까? 마치 전쟁에 나가기 전에 승리하기 위한 결의를 다지는 의식 같은 느낌이 드는 아침식사였다. 

  아침 영동고속도로에서 내다 보이는 날씨는 무척 상쾌하고 맑았다. 대관령을 넘어설 때는 지난 주말에 내린 눈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산 정상 부근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이렇게 한 시간쯤 달려서, 강릉종합고등학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농업고등학교와 공업고등학교의 기능이 모두 있어서 그런지, 고등학교 치고는 학교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웬만한 대학교 크기만 했다. 그만큼 건물도 많았고, 전공별로 실습실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전공도 항공기술, 목공기술, 전기기술, 컴퓨터 등 다양한 기술들을 가르치는 과정들이 있었다.  

  우리가 시험 볼 목공실습실은 주차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우리는 각종 도구가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시험장 문 앞에서 얼마간 기다렸다.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8시쯤 되었을까? 감독관들이 도착해서 시험장 문을 열어주었다. 시험장은 책상이 15개 정도만 놓여 있는 작은 규모였다. 제일 먼저 도착한 우리들은 안쪽부터 자리를 잡았다. 나도 제일 안쪽 책상에 내 공구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책상 하단부에 공구들을 놓을 자리가 있어서, 그곳에 끌, 망치, 곱자, 대자와 스피드 스퀘어, 드릴, 3인치 대패, 손 대패 등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았다. 


  8시 50분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오후 1시 50분까지 5시간동안을 쉬지도 않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시험 시간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에 신분증 검사를 했는데, 호권이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호권이는 별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마침 인터넷을 통해서 얼마 전에 따놓은 전기기사 자격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호권이의 해프닝으로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시험시간이 다가왔다.  

  시험이 시작되자 마자, 나는 작전대로 모든 목재를 가지고 전기대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목재를 작품에 필요한 크기에 맞게 자르기 위해서이다. 어제 시험친 동료로부터 전기대패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시험 전에 내가 제일 먼저 가서 깎기로 작전을 짰었다. 

  목재를 적합한 크기로 깎은 다음에, 나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MDF 판자에 현치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학교에서 연습을 했던 흰 종이 위에서는 대자가 미끄러지지 않았는데, MDF는 자꾸 미끄러져서 몇 번이고 대자의 위치를 수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나는 현치도를 마치고, A부재부터 D부재 위에 현치도 그림대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는 톱질에 들어갔다. 

  이때까지 시험을 치르는 9명중에서 누구도 톱질에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내가 빨리 가공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어제 일연이 실수한 것을 염두에 두고, 각 부재들을 가공하기 전에 몇 번이나 검증작업을 진행하면서 천천히 가공하였다. 톱질도 오차가 최소화될 수 있게 천천히, 그리고 이리 저리 돌려가면서 잘라 나갔다. 

  그렇게 가장 어려운 ‘W’자 모양의 톱질이 필요한 C부재 2개를 모두 성공적으로 가공하고, 손 대패와 끌로 약간의 정리작업까지 마무리했다. 그리고 E, F부재에 밑그림을 그리고 톱질을 했다. E부재 가공을 마무리하고 F부재의 가공작업에 들어갈 때쯤, 종철이와 호권이가 다 끝냈다고 작품을 제출하고는 주변 청소를 했다. 나보다 가공작업을 늦게 시작했는데, 먼저 끝낼 만큼 손재주가 좋은 친구들이었다. 시간은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서두르지 않고 F부재를 마무리하고, 못질을 하면서 조립작업을 시작했다. 

  여기 저기 못질을 하면서 조립을 해나가는 데, 2군데서 못이 삐끗했다. 못이 목재를 약간 바깥쪽으로 밀어내면서, 일부 목재에 금이 간 것이다. 이날 톱질을 정성스럽게 하면서 목재들끼리 서로 오차가 거의 없이 잘 만들어졌는데, 못질 때문에 일부 목재에 금이 가고 틈이 벌어져서 기분이 많이 언짢아졌다. 마지막 C부재를 못질할 때는 못이 잘못 들어가면서 빼기도 어렵거니와 깊이 박을수록 목재가 깨질 것 같았다. 그래서 지나가던 감독관에게 계속 못질을 해야 하는 지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감독관은 그냥 놓아두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시험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결과물을 제출할 수 있었다. 

  나는 도구들을 가방에 정리해 넣고, 주변 청소를 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 본 목공기능사 시험을 마쳤다. 마지막 못질을 잘못하는 바람에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준비과정을 열심히 했고, 오늘 시험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다지 후회는 없었다. 시험을 끝냈다는 홀가분함이 오히려 더 컸다. 주차장에서 기다리던 종철이와 호권이도 역시 가공 중에 큰 실수를 했다고 이야기했다. 홈의 위치를 잘못 파서 홈을 현치도보다 1센티이상 크게 팠다는 종철이, A부재의 홈을 잘못 파서 뒤집어서 다시 팠다는 호권이, A부재의 좌우를 바꿔서 가공하는 바람에 다시 했다는 정수. 마침 작년에 떨어졌던 유림이는 큰 실수 없이 본 것 같았다. 유림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다. 이제 결과만 기다릴 뿐.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7명의 동료 중에서 일연이와 호권이만 탈락하였다. 두 사람 모두 연습과정에서 잘했던 그룹에 들어갔던 친구들이다. 손재주도 좋아서 한옥 목수 일도 곧잘 했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해서 일 머리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은 모두 합격했다. 아이러니한 생각이 들었다. 시험 성적과 실력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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