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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01. 2022

<한옥 대목반> 한옥 목수의 조건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다섯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없지만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내려가본다. 


  일현이와 나는 끙끙거리면서 무거운 원목을 들어올려 보았다. 실내실습장 문 앞에 놓여진 나무를, 실습장 안의 작업대로 운반해야 했다. 그렇지만 원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름이 족히 40센티미터 가까이 되어 보였다. 옆에 있던 동료 두 명이 더 달라붙어서, 겨우 옮길 수 있었다. 


  한옥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해보는 치목 작업이었다. 입학한 후 1주일동안 각종 도구들의 관리법과 사용법들을 소개받았다. 이제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원목을 자르고 깎는 작업을 해야 할 차례이다. 도구들을 직접 사용해본다는 사실이 우리들을 흥분시켰다. 본격적인 치목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두 명씩 조를 만들었다. 한 조가 한 개의 작업대를 사용해서 치목을 진행할 예정이다. 

  나는 김일현이라는 친구와 같은 조가 되었다. 그는 그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은퇴를 하고, 제 2의 삶으로 한옥 목수를 꿈꾸며 한옥학교에 입학한 친구이다. 나보다 두 살밖에 어리지 않고 성격도 원만해서,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처음에는 해병대 출신이고 말도 괄괄하게 해서 호탕한 스타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곁에서 지켜 보니까, 매우 꼼꼼하고 부지런한 스타일이었다. 수년 동안 집에서 나무를 가지고, 이것 저것 집안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왔단다. 그래서 그런지 각종 도구나 기계 장비를 잘 다뤘다.


  첫 번째 치목 작업은 우리가 짓게 될 사모정의 직사각형 귀틀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로 세로의 두께가 각각 7치(21센티미터)와 5치(15센티미터)인 직사각형 부재를 만들어야 했다. 귀틀은 사모정이나 한옥의 마루판을 끼우기 위한 틀로서, 보통 4개의 귀틀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배치한다. 

  일현이가 홈 대패로 우리 작업대에 올라간 원목의 옹이부분을 제일 먼저 깎아냈다. 옹이부분은 튀어나와 있어서 잘라내야 한다. 그런 다음 원목의 양쪽 끝 면에 균형 추와 먹선을 이용해서, 직사각형 모양의 밑그림을 그렸다. 

  내가 원목 한쪽 끝 면의 중심부분에서 균형 추를 늘어뜨리면, 일현이가 균형 추에 달린 선을 따라 수직선을 그렸다. 그리고 이 수직선과 직각이 되는 수평선을 그려 주었다. 이때 수직선과 수평선의 길이는 각각 7치와 5치가 되면 된다. 

  “에이, 눈이 잘 안보이니까, 정확하게 재기 어렵네.” 

  투덜대던 일현이는 쓰던 안경을 벗은 후, 원목 끝 면에 바짝 다가가서 길이를 재곤 했다. 벌써 노안이 와서 눈이 많이 나쁜 것 같았다. (이후에는 먹선이나 자를 이용해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주로 내가 맡았다.) 그렇지만 눈이 잘 안 보인다고 작업을 대충하지 않고, 몇 번씩 반복해서 재보고 나서야 나무 표면에 표시를 하였다. 이렇게 원목의 양쪽 끝 면에 각각 직사각형이 그려지면, 두 면의 대칭되는 꼭지점들끼리 연결될 수 있도록 먹선을 때렸다. 그렇게 원목 위에 잘라내야 할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첫 치목 작업이어서, 이 단계까지 진행하는 데도 3시간이 훌쩍 지났다. 3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면서 나는 쉬고 싶었지만, 부지런한 일현이는 좀처럼 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한 사람이 일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쉬기로 했다. 

  이제 둥그런 원목을 밑그림에 그려진 대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깎아내야 한다. 그만큼 많은 부분을 깎아내야 했다. 이럴 때 쓰는 대패가 홈 대패이다. 홈 대패는 날이 좁은 반면 두껍고 강하기 때문에, 한번에 목재를 많이 깎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목재를 짧은 시간 내에 깎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자칫 원하는 부분보다 많이 깎아내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능숙한 목수들은 주로 홈 대패를 사용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홈 대패를 들고 나섰다. 한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홈 대패이기 때문에, 자주 사용해서 익숙하게 만들고 싶었다. 한참을 작업해서 직사각형 모양에 가깝게 원목을 깎아냈다. 하지만 너무 많이 깎아지는 것이 두려워서, 여전히 깎아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만큼 다음 단계인 전기 대패를 이용한 마무리 작업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기대패를 전기 코드에 연결시키고는, 내가 깎아놓은 사각형 모양을 완벽하게 다듬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깎아내고 다듬자, 직사각형 모양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 갔다. 곱자를 이용해서 기준 면이 수평이 되는 지 체크해보고, 기준 면과 다른 면이 직각으로 만들어 졌는지도 체크해보면서 깎아 나갔다. 하지만 기준 면과 다른 면 사이에 직각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선생님이 균형 추를 들고 왔다. 

  “기준 면과 다른 면을 직각으로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럴 때는 원목 위에 직사각형을 그렸던 과정을 다시 한번 해보면 되요. 그러면 어떤 면에서 수평이 잡혀있지 않은 지를 알 수 있거든요.”

  균형 추로 우리가 치목해 놓은 직사각형 부재의 양 끝 면에 다시 한번 수직선과 수평선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양 끝면의 사각형에서 대칭이 되는 점들을 이어서, 먹선을 그렸다. 그러자 부재에서 반듯하지 않은 부분이 드러났다. 어떤 면은 덜 깎여 있었지만, 또 다른 면은 너무 많이 깎여 있기도 했다. 

  그렇게 원목 위에 그려진 먹선을 따라, 선생님이 직접 전기 대패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전기 대패의 날을 조정해가면서, 네 면이 서로 직각이 되는 직사각형을 완성하였다. 이날 귀틀 하나 만드는 데, 하루가 소요되었다.  


  귀틀 만드는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있을 무렵에, 웬 젊은 여자가 과자를 사 들고 나타났다.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니까,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여러분, 이 분은 여러분의 1년 선배이고 지금 거의 유일한 여자 현역 목수이에요. 서로 인사하세요.”

  선생님이 우리들에게 젊은 여자분을 소개시켜 주었다. 김유정이라는 이 선배는 아직 20대 후반의 젊은 친구였다. 미대를 나왔지만, 한옥 목수가 되고 싶어서 작년에 한옥학교에 입학했단다. 여자가 하기에는 힘든 일이지만, 무척 재미있단다. 

  “귀틀을 잘 만드셨네요. 시간이 많이 들어가죠?”

  우리가 만든 귀틀을 살펴보더니, 이렇게 칭찬해주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한옥을 짓기 위한 첫 번째 작업 과정도 바로 치목이란다. 보통 제재소의 작업장에서 10여일이상 치목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때 정확하게 자르고 가공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조립을 할 때 추가적으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단다. 그래서 치목작업을 정교하고 꼼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었다.  


  김유정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현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면서 왜 일현이가 그렇게 꼼꼼하게 작업을 했는 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김유정 선배가 여성으로서 힘든 일이지만 열정을 가지고 한옥 목수 일에 덤벼들었듯이, 일현이도 이 일에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지도 짐작이 갔다. 한옥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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