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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14. 2022

<마흔 네번째 이야기> 이별 여행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마지막으로, 한옥학교 대목과정도 거의 끝나갔다. 우리 38기 동료들은 기능사 시험이 끝나는 날, 가까운 묵호 항으로 이별여행을 가기로 했다. 묵호 항에서 회를 먹고, 주위에 종철이 장인이 가끔 지내시는 아파트에서 1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묵호 외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횟감을 고르기 시작했다. 외항은 회 파는 가게가 많지 않았다. 가자미, 광어 등의 가격을 물어보고, 우리는 내항 쪽으로 향했다. 내항에는 회를 파는 가게가 많아서 그런지, 가자미, 광어, 숭어 등의 가격도 쌌고, 고등어, 성대 등의 물고기도 덤으로 끼워 주었다. 그렇게 우리가 충분히 먹을 만큼 물고기를 사서, 근처에 회로 썰어주고 탕도 해주는 식당으로 갔다. 바닷가가 보이는 자리에 자리잡은 우리는, 회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모두들 시험을 보면서 긴장했던 마음을 풀어헤치고 싶었을 것이다. 

  바닷가 옆에서 회를 먹으니까, 기분이 상쾌해졌다. 술도 쑥쑥 잘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누군가가 불쑥 용섭이 이야기를 꺼냈다.

  “이 자리에 용섭이가 없으니까 섭섭하네. 같이 학교를 졸업하면 좋았을 텐데.”

  본격적으로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3월초, 용섭이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서 모두들 술렁거렸다. 우리는 용섭이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대해서 그 이유를 물어봤다. 

  “더 있어봤자 내가 할 것이 별로 없어서 그만두는 거야.” 

  용섭이는 목수의 길을 가지 않기로 결정한 뒤에, 지원했던 건축목공기능사 시험을 취소했다. 더군다나 학교 진도도 다 끝났기 때문에, 더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음 날 짐을 챙겨서 떠난다고 해서, 우리는 번개 이별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냥 보내기에는 우리가 너무 아쉬웠다. 급 제안을 했는데, 10명 모두 참석했다. 마침 내가 사온 보드카와 소주로 모두들 이별의 섭섭함을 달랬다. 이렇게 우리들의 이별 여행은 시작되었다. 


  묵호 항으로 이별여행을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지막 등교 일이 되었다. 천천히 등교하면서, 지난 6개월동안 정들었던 마을 풍경을 하나씩 마음에 담았다. 이웃집 흰둥이들이 더 이상은 짖어대지 않고, 등교하는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너희들을 더 이상 못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별을 슬퍼해서 인가? 하늘은 회색 구름을 덮고 있고, 건너편 산 정상에는 흰구름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으로 이별의 슬픔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울적한 내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만드는 아침 등교 길이었다.


  이날은 38기 동기들의 마지막 회식 날이기도 했다. 우리들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일연, 정수가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넓은 마당이 있는 이 집에는,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었다. 종철이와 호권이가 대화면 하나로 마트에 가서 상추, 고추 등 각종 채소와 양념들을 사오는 동안, 우리는 숯에 불을 붙였다. 한참을 시도한 끝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마침 이곳에 와있던 일연이 와이프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같이 고기를 먹자고 초대를 한 것이다. 그리고 펜션 사장님도 나와서 인사를 했다.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다고 들었는데, 역시 체격이 매우 단단해 보였다.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이 없는 지 물어서, 고기 먹으러 오시라고 했다.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동료들은 평상시 회식과 다르게 별다른 말이 없었다.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숯불과 휴대용 가스레인지 부스터 2군데서 고기가 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J&B Blue와 호권이가 가져온 꼬냑으로 먼저 입을 적셨다. J&B Blue는 역시 맛이 부드러웠다. 750미리리터의 큰 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 안가서 바닥이 났다. 

  고기와 술이 들어가면서 회식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 즈음에 선생님도 학교 일을 마무리 하고 합류했다. 서로의 밝은 앞 날을 기원하면서,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어댔다. 조금이라도 동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이리라. 

  회식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일연이가 며칠 전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 우리가 휴식공간으로 사용했던 사모정이 무너졌잖아. 그때 기분이 참 묘했어. 마치 지난 6개월동안 잘 지냈으니까,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고 정자가 말하는 것 같더라고.”   

  정자가 무너져 내린 날 아침에 그 광경을 제일 먼저 본 사람은 일연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실내 실습장에서 수업준비를 하던 일연이는 “꽝”하는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어 나갔단다. 빨간색 카니발 한대가 정자의 기둥 하나를 들이 받은 모습을 목격했다. 정자의 기둥 하나가 제자리에서 이탈했고, 그 바람에 정자는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비탈진 언덕 길에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굴러 내려와서, 정자를 받은 것이다. 지난 6개월동안 우리의 휴식공간으로 애용하던 곳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 탓에, 학교에 도착한 동료들도 모두 허탈해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 사건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용현이가 끌질을 하다가 끌 날에 손가락을 베어서, 급하게 병원에서 3바늘을 꿰매야만 했다. 손가락의 신경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용현이는 내일까지 휴가라면서 옷을 갈아입고 서울 집으로 가버렸다. 무언가에 화가 많이 나있는 얼굴을 한 채로.  

  때때로 좋지 않은 사건들은 한꺼번에 다가온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학교 생활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해서, 나와 동료들은 찝찝해했다. 다들 6개월동안 즐겁게 지냈던 동료들이기에, 끝맺음도 아름답게 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회식도 끝나갔다. 나는 취해서 어떻게 집에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까 정환이 차로 이동했고, 몇몇이 내 집에서 맥주 한잔을 더했다고 한다. 나는 꾸벅꾸벅 조는 바람에 들어가 잠을 잤단다. 


  내가 한옥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날씨가 졸업할 때와 비슷하게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웠고, 동료들과 많이 이야기도 하면서 행복한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4월 6일은 이러한 스토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졸업식 날이었다. 


  나는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 중이어서, 졸업식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종철이한테 전화가 와서 내 집으로 작별인사를 하러 온다고 했다. 나는 종철이를 포함해서 몇 명만 오는 줄 알았는데, 동료들 전체가 내 집에 왔다. 모두들 짐을 싸서 집으로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 

  갑작스럽게 모두들 찾아주니까, 고맙고 기분이 좋았다. 종철이가 나에게 수료장과 우등상장, 그리고 상품을 주었다. 내가 회장 역할을 해서 우등상을 준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등상장은 처음 타본 것 같다. ㅎㅎ 과정을 잘해서 줬다기 보다는 동료들을 잘 리드했다는 이유(?)로 준 것이기는 했지만.                           일연은 파주로, 종철은 원주로, 호권은 세종으로 일하러 간단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당분간 쉰다고 한다. 용현이는 경기도 광주에서 대목 일을 할 지 여부를 고민 중이고. 간단하게 서로의 앞날을 빌어주면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6개월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친구들이어서, 헤어짐이 아쉬웠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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