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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14. 2022

<한옥 대목반>먹칼, 먹통 그리고 먹실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여섯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없지만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내려가본다. 


  김선생님은 실습실 한 켠에서 사십 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대나무를 여러 개 꺼내왔다. 대나무의 넓이는 2~3센티미터 정도로 얇은 것들이었다. 학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는, 어떻게 먹칼을 만드는 지 시범을 보여 주었다. 대나무의 한쪽 끝 부분을 커터 칼을 이용해서, 1~2밀리미터 내외로 얇게 잘라냈다. 마치 작은 붓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대나무의 다른 쪽 끝부분은 연필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냈다.

  빗자루 모양의 끝 부분은 선을 긋는 데 사용하고, 연필 모양의 뾰족한 부분은 나무 위에 글씨를 쓰는 데 유용하다는 설명이었다. 먹칼로 먹물을 찍어서, 선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게 된다. 건축현장에서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매우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 먹칼이란다.


  먹칼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은, 한옥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한옥집을 처음 지어보는 나에게는 한옥학교의 모든 도구들이 새로웠다. 그중 ‘먹칼’이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나뿐 아니라 먹칼을 처음 본 동료들의 반응도 신선했다.                                                                                                          나무를 설계도에 따라 자르고 가공하려면, 나무에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런데 나무에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필이나 볼펜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 특히 나무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나무로 만든 먹칼은 매우 유용하다. 


  선생님의 시범을 본 뒤, 동료들은 실습실에 놓인 책상의 한 켠씩을 차지하고 먹칼 만들기에 돌입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연필이나 만년필 등 필기구가 중요하듯이, 원목을 치목하는 동료들에게는 먹칼이 앞으로 육 개월 동안 사용할 중요한 필기구가 될 것이다. 한옥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만드는 것이어서 그런지, 모두들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나도 커터 칼을 들고 대나무의 한쪽 끝을 빗자루 모양으로 잘라나갔다. 그런데 대나무를 칼로 균일하게 자르려고 했지만 의도한대로 잘 되지 않았다. 어떤 것은 두껍게, 어떤 것은 너무 얇게 잘라졌다. 자연스러운 갈라짐을 인위적인 의도로 거스르지 못한 때문이리라. 

  다들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종석이가 작업을 마무리하고 선생님에게 자신의 먹칼을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에 마무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석이는 비교적 균일하게 빗자루 모양을 만들었다. 그는 육 개월 과정 중에서 선생님에게서 첫 번째로 칭찬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종석이는 강원도의 유명 호텔에서 20여년 가까이 요리사로 일해왔다고 한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해온 것이 지겨워져서, 업종을 바꿔보고자 한옥학교에 도전하였단다. 손님에게 내놓는 요리는 기본적으로 맛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완벽하게 보여야 한다. 요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칼도 잘 다뤄야 한다. 먹칼을 만드는 것에서 종석이의 이런 깔끔한 성향이 잘 드러났고, 칼을 잘 다루는 능력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이제 요리를 그만둔 종석이에게는, 먹칼이 요리할 때의 칼인 셈이다.   


   나는 첫 번째 먹칼 만들기에 실패하였다. 빗자루 부분이 균일하지 않게 잘라진 것이다. 다른 대나무를 들고 다시 시작했다. 두 번째도 첫 번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기가 생긴 나는 또 다른 대나무를 들고 세 번째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커터 칼로 대나무의 끝부분에서 잘라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잘라야 할 중간부분에서 끝 쪽으로 잘라나갔다. 그제서야 좀 더 비슷한 굵기로 대나무를 잘라낼 수 있었다. 그렇게 세 번째 만에야 겨우 마음에 드는 먹칼을 만들 수 있었다. 

  한번에 좋은 먹칼을 만들어낸 종석이가 부러웠지만, ‘일 머리가 없는 나는 꾸준한 노력밖에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펜과 PC 이외에는 사용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간단한 먹칼조차도 쉽지 않은 제작과정이었다. 그때부터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내가 가장 늦게 뒤쫓아가는 학생이 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김선생님은 또 다른 도구를 소개하였다. 먹통과 먹실이었다. 이것은 나무를 잘라내거나 가공하는 기준선을 그리는 데 사용되는 도구였다. 먹통의 몸통부분은 먹을 머금은 스폰지가 있는 부분과 먹실을 손쉽게 감을 수 있는 둥근 모양의 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먹실의 끝 부분에 고정 바늘이 달려 있어서, 목재에 찔러서 먹실을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먹통은 고대 중국에서 전해져 온 목공 도구인데, 동아시아에서 옛날부터 사용되어온 것이란다. 옛날에는 지역에 따라 크기나 구조가 다르고, 재질도 다양해서 대나무나 동물의 뿔로 만든 것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 주류이지만. 


  우리는 먹칼을 만들고, 실습용 나무에 먹통과 먹실을 이용해서 먹선을 그려보았다. 먹물을 너무 많이 묻혀서 나무에 그려진 먹선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손가락에 먹물이 잔뜩 묻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이런 도구들을 처음 보는 신기함과 함께 인간의 지혜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무라는 재료를 다루는 데 적합한 도구인 먹칼, 먹통, 그리고 먹실을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었던 인류이다. 그렇기에 나무를 이용해서 좋은 집을 짓고,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리라. 한편 연필이나 볼펜과 같은 현대문명의 이기는 사무실과 같은 환경에는 적합하지만, 자연 그대로인 원목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는 표현이 있듯이, 문명의 이기는 해당 문명의 품 안에서만 유용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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