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진 May 28. 2022

<농촌 체험하기>첫 회식과 노인회장님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다섯번째 이야기

   수돗가에 둘러 앉은 여자 동료들은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손으로는 언니네 텃밭에서 캐온 야채와 가시오가피 나무를 씻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시끌벅적한 여자 동료들에 비해서, 옆에서 두 군데 화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남자 동료들은 조용히 작업에 집중했다.

 

 


 씻어낸 가시오가피 나무를 큰 솥에 넣고 끓였다. 저녁 회식을 위해서 닭 열다섯 마리를 삶아야 했다. 동료들은 어느 누가 역할을 나누지 않았는데도, 서로 제 할 일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막힘 없이 준비를 해나갔다. 이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워져서, 손발이 잘 맞는 것이리라. 솥에 넣은 가시오가피 나무의 물이 어느 정도 배어 나오자, 닭을 집어넣고 1시간 30분가까이 또 끓였다. 


  6시가 가까워지자, 저녁 회식을 같이 할 손님들이 한 명씩 도착했다. 산채마을 이장님, 노인회장님, 그리고 ‘농촌에서 살아보기’ 1기 선배님 등. 산채마을 김대표님이 귀농한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이장도 여러 해 맡으면서 귀농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작년 산채마을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1기 선배님뿐 아니라, 현직 이장님도 정착단계에서 김대표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오늘은 '농촌에서 살아보기' 2기 프로그램을 위한 회식이기도 하지만, 김대표님과 친한 분들이어서 그런지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계신 분들이 다 참석하였다. 

  오늘 회식에는 우리 교육 동기들을 포함해서 열다섯명 정도 참석했다. 서로 인사하고 소개하는 짧은 시간이 지나자, 우리 자리에 잘 익은 백숙이 올라왔다. 톱풀, 원추리풀 등 야채, 그리고 배추김치 등 반찬들도 옆에 함께 놓였다. 


  회식을 시작하고 얼마 안되어서, 마을 어른들이 모이면 흔히 있는 건배사 시간이 있었다. 이장님, 노인회장님, 그리고 우리 2기 교육생을 대표해서 교장선생님이 차례로 짤막하게 인사를 했다. 이중 노인회장님의 인사말이 인상적이었다. 머리가 온통 하얗게 변하신 노인 모습을 하고 계셔서, 의례적인 인사말만 하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산채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두 번째로 진행되고 있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여러분들의 귀농이나 귀촌에 많은 도움이 되죠. 산채마을뿐 아니라 농촌에서도 새로운 인력을 수혈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유익한 프로그램이에요. 6개월동안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농업 인이 되기를 바랄게요.”

  필요한 주제를 조리 있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놀랬다. 일반적인 농촌의 노인회장님과는 많이 달랐다. 


  이곳 횡성군 둔내면 산채마을 주변에는 100여 채의 집이 있다고 한다. 그중 30%정도는 별장으로 사용하는 집이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살고 있단다. 주민 상당수는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들이란다. 내가 평창 한옥학교에 있을 때 살던 평창군 용평면의 동네도 마을 사람중 60%이상이 귀농/귀촌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강원도가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수도권에서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농촌마을에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비중이 높은 것 같다. 

  마을 사람중 대다수가 귀농/귀촌한 사람들이다 보니까, 흔히 농촌하면 떠오르는 것하고는 다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밭일을 하기 어려울 정도의 노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고, 대부분 일을 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활기 있는 마을 풍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군다나 농업용 기계를 활용한 대규모의 농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산채마을의 김대표님도 2만평 가까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한다. 

  강원도는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이 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자란 전라도의 농촌 마을하고 다르게, 집들이 곳곳에 분산되어 있는 모습이다. 전라도는 집들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고, 논밭이 마을 주변을 감싸고 있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강원도의 분산된 형태의 마을 구조는 귀농/귀촌한 사람들의 특성하고도 어느 정도 잘 어우러지는 것 같다. 일정 정도 개인적인 생활 공간을 가지고 싶어하는 도시민들의 특징을, 귀농/귀촌인들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 용평면의 마을이나 산채마을도 그러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강원도 농촌마을의 특징이 농촌 구성원들의 행동에도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한다. 시골의 노인회장님은 그저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직책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능력 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 구성원들이 대부분 도시생활을 경험하였고 아직 농사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 직책을 맡긴 것 같다. 


 1시간이 넘게 끓인 덕분에 백숙은 맛있게 익어 있었다. 잘 익은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먹는 맛은 일미였다.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나는 노인회장님, 이장님, 그리고 대표님들이 앉아있는 자리로 이동해서, 술 한잔씩을 따라 드리면서 반갑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같이 있던 이찬슬 사무장, 젊은 신반장 부부와 같이 농산물의 마케팅, 유통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산채마을에서의 첫 번째 회식은, 깊어가는 밤하늘에서 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마무리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한옥 대목반>사각형 귀틀 vs. 원형 도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