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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12. 2022

<한옥 대목반> 일 근육

- 대목과정의 첫번째 퇴고 버전: 여덟번째 이야기

그동안 한옥학교 생활에 대해 써왔던 글들을퇴고를 위해 다시 다듬어서 연재 형태로 올려본다몇번의 퇴고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완성된 글이 나올    없지만그때까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를 바라면서  내려가본다.


  한옥학교에 입학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부터, 체조와 함께 아침 수업을 시작하였다. 몸을 많이 쓰는 작업의 특성도 있고,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하자는 의도도 있었다. 마침 대목반 동료 중에 권투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냈고, 지금도 꾸준히 무술을 연마하고 있는 ‘이용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운동을 너무 좋아해서 태권도, 합기도, 주짓수 등 안 해본 운동이 없단다. 우리는 그를 ‘체육부장’이라고 불렀다.

  아침 체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용기는, 스스로 대목반에 적합한 동작들을 만들어왔다. 실내 실습장이 시멘트 바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서 할 수 있는 자세들이었다. 한옥을 지을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근육인 어깨와 다리, 그리고 허리를 강화시키는 동작들이 많았다. 

  아침 체조 시간만 되면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김종석이라는 동료가 있었다. 그는 1교시 수업 시작종이 울리면, 아침 체조를 하자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동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체육부장이 만들어온 동작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는 동료들을 보고 농담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아침에 몸을 충분히 풀어주고 난 후에 치목(治木) 작업을 하더라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근육이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육개월 교육과정이 시작되고 한달 두달 지나면서, 한두 군데씩 근육통에 시달리지 않는 동료가 없었다. 나도 늘 오른 손목과 어깨통증에 시달렸다. 자주 오른 손목과 어깨를 풀어주었다. 작업을 많이 한 날에는, 근육통을 완화시키는 약을 발라주어야만 했다.

  체조를 열심히 하는 김종석이란 친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어느 날 오른 손목과 팔꿈치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나도 비슷한 부위에 통증을 느끼던 차여서, 서로 왜 같은 부위에 통증이 심하게 오는 걸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치목 작업에서 오른손을 쓰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어요, 형님. 저는 기본적으로 오른손잡이인데다가, 치목하는 데 쓰는 기계들이 오른손잡이용 밖에는 없으니까요.”

  종석이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왼손잡이라서, 오른손잡이용 기계를 쓰는 것이 더 힘들어. 오른손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인지, 때로는 통증이 심해서 힘을 쓸 수가 없을 정도야.”

  사실 나는 전기 대패, 홈 대패, 전동 톱 등 주로 사용하는 기계 장비들을 배울 때, 선생님에게 ‘왜 오른손잡이용만 있는 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기계 장비들은 주로 일본회사에서 만들어졌는데,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는 옛날부터 왼손잡이가 많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왼손잡이도 오른손잡이와 같이 오른손을 쓰도록, 사회적으로 강요 받는 분위기도 일조를 했을 것이다.


  한옥의 치목 과정에서는 오른 손목과 어깨 등을 많이 사용하지만, 기둥과 같은 무거운 나무를 옮길 때에는 허리와 코어 근육이 중요하다. 요즘은 옛날과 다르게 대부분 지게차나 크레인 등 기계를 이용해서, 무거운 원목을 운반한다. 하지만 여전히 좁은 공간에서 가공할 부재를 옮기거나 조립할 때는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지게차로 기둥을 만들기 위한 원목을 날라서, 실내 실습장 앞에 내려 놓았다. 나와 동료들은 지름 30센티미터가 넘는 원목을 각자의 작업대 위로 날라야 했다. 나는 일현이와 같은 조였기 때문에, 원목을 감은 두꺼운 줄을 둘러매고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워낙 큰 원목이어서 그런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료 두 명이 더 달라붙어서야 겨우 원목을 작업대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작업대에 올려놓은 원목을 둥그런 기둥모양으로 치목하기 위해서는, 원목의 양 끝면에 치목해야 할 둥근 모양의 원과 이 원을 감싸는 팔각형을 그려야 한다. 이렇게 그려진 양 끝면의 팔각형을 먹선으로 연결하면, 팔각형 모양으로 원목을 깎아낼 수 있는 밑그림이 그려진다. 팔각형 모양으로 깎아낸 다음에는, 십육각형 모양으로 다듬으면서 점차 원 모양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밑그림에 맞춰 원목을 돌려가면서, 홈 대패와 전기 대패로 깎아낸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원목을 들어서 돌려줘야 한다. 두 명이 한 조로 하나의 기둥을 치목하였기 때문에, 나는 일현이와 같이 힘을 써야 했다. 그런데 내가 힘을 쓰는 것에 비해서, 일현은 별로 힘을 쓰지 않는 것 같은데 쉽게 원목을 돌리곤 했다. 힘을 쓰기에 적합한 자세로, 꼭 써야 할 근육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다. 소위 말하는 ‘일 근육’이 좋은 친구였다.

  일현이는 취미로 수년 동안 목재를 가공해서, 다양한 가구나 물품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목재를 들고 나를 때, 허리와 코어 근육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지를 잘 아는 것 같았다. 나보다 체격도 작고 체중도 덜 나가는 친구지만, 일을 할 때는 나보다 요령껏 힘을 잘 썼다. 


  사람들은 누구나 뛰어난 역량과 함께 그렇지 않은 부분도 가지고 있다. 뒤떨어진 영역을 개발해서 남보다 잘하게 만드는 것은,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은 역량을 키우는 것에 비해서 장벽이 낮은 것 같다. 아무리 근육 량이 적은 부위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운동을 해주면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일 근육도 마찬가지다. 왼손잡이인 나는 오른손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한옥학교 육개월 과정이 끝나갈 즈음에는 오른손잡이 못지 않게 기계 장비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일 근육을 활용하는 데에는 일현이가 더 나았지만. 

  한옥 대목과정은 새로운 영역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면서도, 집을 짓는데 필요한 근육들을 키울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전혀 무경험의 세계로 남아있었던 나의 한 부분을 채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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