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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16. 2022

<농촌 체험하기> 찐한 노동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열번째 이야기

  “아이구, 허리야. 반장, 우리 쉬었다 하자!”

  “언니, 나도 무릎이 아파서 더 이상 못하겠어.”

  여기 저기서 힘들다고 아우성이었다. 남자 동료들은 힘들어도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여자 동료들은 달랐다. 젊은 신반장도 힘들다는 듯이, 10분 휴식을 하자고 했다. 벌써 몇 차례나 쉬는 지 모른다. 밭주인이 이야기한 오늘 작업의 목표를 채우기 힘들 것 같았다. 동료들이 쉬고 있었지만, 바로  옆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던 밭주인은 아무 표정없이 쉬지 않고 계속 잡초를 뽑아 나갔다. 마치 이 정도의 일을 하면서, 힘들다고 하냐는 듯이.  

  나도 무릎과 허리가 뻐근해왔다. 쭈그리고 앉아서 일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일어나면, 무릎과 허리가 잘 펴지지 않았다. 겨우 일어서서 허리와 무릎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고서야, 밭 주변에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든 날이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은 주로 교육생들의 텃밭과 공동농장을 경작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다양한 작물도 경작하는 경험을 쌓기 위해서, 산채마을에 사는 다른 농부들의 밭에서 알바를 하기도 한다. 오늘이 내가 프로그램 들어와서 처음으로 진행한 알바 작업이었다. 산채마을 팀장님의 맏언니네가 천 평이 넘는 밭에서 곰취를 재배하고 있었다. 오전에 이 곰취 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4월 중순이 지나면서, 벌써 낮에는 더워서 일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7시에 모여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맏언니네 집은 태기산쪽으로 5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있었는데, 호리병 모양으로 입구가 좁은 형태의 지형이었다. 마을 도로에서는 비닐하우스 2~3동만 보였는데, 막상 맏언니 집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까 매우 넓은 밭들이 나타났다. 양상추가 심어진 비닐하우스도 여러 동이 있었고, 넓은 노지에서 곰취가 자라고 있었다. 곰취 밭과 비닐하우스를 합쳐서 족히 사오천 평은 되어 보였다.

  우리는 빨간 지붕으로 멋있게 지어놓은 집 앞 마당에 주차를 하였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맏언니 부부와  인사를 나누었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의 나이의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두 분다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20여년 전에 귀농을 하였단다. 

  집앞 마당에 빙 둘러서서, 오늘 작업해야 하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곰취를 제외한 모든 잡초를 뽑는 것인데, 특히 한삼이라고 불리는 것을 철저하게 뽑아달라고 했다. 이것은 번식력이 워낙 강해서, 한번 나면 곰취밭 전체를 덮어버린단다. 사실 한삼(또는 환삼)은 주로 약초로 쓰이는 데, 사포닌과 천연 스테로이드 성분이 있어서 통증완화에 좋고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곰취밭에서 나는 한삼은 잡초에 지나지 않았다.

  첫 번째 작업했던 비탈진 곰취 밭에서는 그다지 잡초가 많지 않았다. 동료들과 고랑 하나씩을 맡아서 진행하다 보니까, 금방 끝났다. 맏언니 말대로 한삼이 많이 발견되어서, 모조리 뽑아버렸다. 밭에 경사가 있어서, 그다지 허리나 무릎을 많이 굽히지 않고도 편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바로 근처의 다른 곰취 밭으로 옮겼을 때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개울물이 이 밭의 바로 옆으로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 곰취 밭에 잡초가 무척 많았다. 더군다나 첫 번째 밭과는 다르게 평지여서, 쭈그려 앉거나 엎드려서 작업을 해야 했다. 한참을 작업해야 겨우 한 장소의 잡초를 모두 제거할 수 있을 정도로, 잡초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까 무릎과 허리는 물론이고, 허벅지와 종아리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공동 작업 중에는 1시간지나면 10분정도씩 쉴 수 있도록, 신반장이 신호를 주게 되어 있었다. 첫 번째 밭에서는 한번도 쉬지 않고 작업을 마무리 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밭에서는 비슷한 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휴식을 할 때면 여기 저기서 여자동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해가 뜨면서 점차 더워지니까, 일하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10시까지 3시간 동안 작업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계속 작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두 번째 밭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완만한 경사의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천평이 넘어 보이는 곰취 밭이었다. 밭을 본 순간 동료들은 놀라서 발을 멈추었다. 너무 넓었다. 이 넓은 곰취밭 작업을 다하는 것은, 무리라고 모두들 생각한 듯하다. 그것을 알아차린 듯, 우리를 안내하던 맏언니는 약속했던 시간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밭에는 두 번째 밭보다 잡초가 적을 것이라고도 했다.

  동료들은 한 고랑씩 맡아서 들어갔다. 두 번째 밭보다 잡초가 적기는 했지만, 쪼그리고 앉거나 엎드려서 작업해야 하는 것은 매 한가지였다. 모두들 말이 없어졌다. 작업이 힘들다는 의미였다. 세 번째 밭에서는 절반도 다 못하고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우리는 10시까지 겨우 작업을 진행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산채마을로 돌아왔다. 

  찐한 노동을 한 곰취밭 잡초 제거작업의 후유증은, 다음날부터 나타났다. 모두들 허리와 무릎이 아프단다. 신반장 부부는 젊어서 인지, 상대적으로 회복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60대 부부들은 그 후유증이 여러 날 지속되었다. 이날 작업을 하면서 농사일이 힘든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허리와 무릎을 되도록 적게 쓰면서, 일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고민이 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농사의 연속성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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