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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2. 2022

<농촌 체험하기> 트랙터와 여자 농사꾼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열 한번째 이야기

  “여보, 운전 잘 하네~~, 파이팅!”

  신반장이 잔뜩 긴장된 얼굴로 트랙터를 운전하고 있는 아내 송이씨를 위해서, 박수를 치면서 응원을 했다. 타기 전에는 겁먹은 얼굴로 운전석에 올라갔던 송이씨지만, 남편의 응원에 힘입어 과감하게 트랙터를 몰았다. 밭을 거의 한 바퀴 돌 무렵에는 운전석에서 엄지를 치켜 올리면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들이 공동농장으로 사용할 옥수수 밭에 트랙터 두 대가 서 있었다. 대표님과 사무장이 운전하고 온 트랙터들이다. 오늘은 축분 비료를 뿌리고 고랑을 만드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며칠 뒤로 옥수수 모종을 정식하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다. 이 작업을 하기 전에 트랙터 사용법을 먼저 배우기로 했다. 천평이나 되는 넓은 밭인데다가 경사가 없는 평지여서, 초보자가 트랙터를 배우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서, 대표님과 사무장으로부터 트랙터 사용법을 배웠다. 나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사무장이 운전하고 온 작지만 최신형인 트랙터 사용법을 교육받았다. 마력수가 작아서 다양한 작업을 하기는 힘들지만, 로터리치고 비료 주는 등 웬만한 기능은 다 할 수 있는 트랙터였다. 

  일반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작 장치가 있어서, 처음 운전할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특히 운전이 서툰 여자 동료들은 운전은커녕 조작하는 것 조차도 힘들어했다. 이 트랙터는 주기어/보조기어/포크레인과 로터리 기계 장비 등을 제 위치에 놓고, 엑셀레이터를 밟아야만 겨우 움직였다. 그나마 사무장이 차분하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간신히 운전 조작까지 할 수 있었다. 

  남자 동료들은 작동법을 비교적 빨리 익혔지만, 여자 동료들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한참 동안 설명을 들은 송이씨가 조작장치들을 하나씩 제자리에 옮겨 놓자, 육중한 트랙터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거운 트랙터를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에서 인지, 송이씨는 움직이는 트랙터 운전석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느리게 움직이는 트랙터를 따라가면서, 신반장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송이씨뿐 아니라 다른 여자 동료들도 남자 동료들보다 훨씬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렇게 트랙터 사용법 교육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서 인지, 며칠 뒤에 있었던 관리기 조작법을 교육할 때에도 여자 동료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트랙터가 어른이라면, 관리기는 어린 아이라고 할 만큼 작았다. 그래서 쉽게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관리기는 농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계이다. 이랑도 만들고 비닐 멀칭도 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다. 관리기도 작동법이 복잡하기는, 트랙터와 마찬가지였다. 시동 거는 법부터 시작해서, 좌우 클러치 작동법, 운전대 상하 좌우 움직이는 법, 전진 및 후진 기어 넣는 법, 엑셀 밟는 법 등등... 교육하는 중에 이 마을에서 관리기를 제일 잘 다룬다는 전문가가 찬조 출연까지 했다. 전문가답게 자유 자재로 관리기를 회전시키기도 하는 등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보여주었다. 교육을 받던 우리들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트랙터는 자동차와 같이, 운전석에 앉아서 모든 부분을 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반면 관리기는 걸어가면서 운전해야 한다. 결국 사람의 힘이 결합되어야만이, 관리기 운전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 지면의 굴곡이나 작업의 성격에 따라서 운전대를 상하 좌우로 움직여줘야 하고, 밭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돌아오기 위해 180도 회전할 때는 한쪽 부분을 힘으로 들다시피 해야 한다. 여자동료들이 사용하기에는 위험해 보이는 장면까지 연출될 수 있었다.

  트랙터는 크기가 크고 무게가 많이 나가서 그런지, 지면이 울퉁불퉁해도 운전석에서 그다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운전을 하면 편안함과 함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쉽게 운전할 수 있는 기계였다. 그런데 관리기는 작아서 그런지, 지면의 굴곡에 따라서 흔들림이 심했다. 흔들리는 관리기의 작업 방향을 제대로 잡아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몸의 힘으로 조절을 해주어야만 했다. 관리기가 작지만,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트랙터 사용법을 배우는 데 적극적이었던 여자동료들은, 남자동료들이 관리기로 멀칭작업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밭 한 켠에서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마음속에서는 이것은 남자들이 할 일이라는 구획이 정해지고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경제활동에서는 남녀의 차이가 별로 없다. 요즘에는 오히려 남자보다 여자들이 회사나 직장에서 일을 더 잘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서비스업종에서는 남자들의 힘이 여자들의 섬세함과 감성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촌이나 어촌 등 시골생활에서는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 제법 많다.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일상 생활에서 여자들이 할 일과 남자들이 할 일로 나눠지게 된다. 그래서 농업이나 어업, 사냥 등이 주요 경제 활동이었던 옛날부터, 남녀간의 작업영역이 크게 달랐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이것이 남녀 차별의 시작점이 되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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