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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03. 2022

<농촌 체험하기> transition period

-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에서 겪은 열 일곱번째 이야기

  새벽 3시쯤 일어나서, 나와 가족들은 모두 핸드폰에서 나오는 동영상에 집중했다. 첫째 아들인 민수의 대학교 졸업식이 중계되고 있었다. 내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한 탓에, 첫째와 둘째 아들이 모두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다녔다. 첫째인 민수가 오늘 미국에서 졸업식을 하는 날이다. 직접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한 감정을 안고, 가족들은 평상시와 다르게 민수의 졸업식 장면을 보기 위해서 일찍 일어났다. 이윽고 민수가 연단으로 올라오자, 대학 학장이 졸업장을 수여하고 졸업 가운 위에 후드를 걸쳐 주었다. 비록 멀리 한국에서 보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면서 민수의 졸업을 축하해주었다.


  민수는 졸업을 하고 미국에 있는 회사에 들어가기를 원했다. 한두달 전부터 수십 곳의 미국 회사에 원서를 넣고 인터뷰도 하고 있었다. 미국 회사의 채용 인터뷰는 보통 3~4단계까지 진행된다. 민수도 여러 기업들의 최종 인터뷰까지 갔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떨어지곤 했다. 미국 기업들이 외국인에게 비자를 sponsor해주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외국인의 미국 내 취업을 억제하기 위해서, 발급해주는 비자 숫자를 크게 제한해놓은 탓이다. 외국인 신분인 민수는 8월말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미국에서 꿈을 펼치고자 했던 민수에게는, 스트레스를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민수뿐 아니라 요즘 우리 가족들은 모두 transition period를 경험하고 있다. 둘째인 찬수는 군대를 제대하고 미국 대학교의 복학을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이용해서 군대간 것은 잘한 결정이었지만, 앞으로도 어려운 일정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찬수도 마찬가지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미국의 회사에 취업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형과 비슷하게, 외국인으로서 비자 sponsor를 해줄 수 있는 회사를 찾아야 한다. 

  나도 역시 제2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는 한옥학교에서 6개월동안 생활한 데 이어서, 지금은 횡성에서 ‘농촌에서 살아보기’ 6개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귀농을 염두에 둔 시간들이다. 횡성에 살 집과 밭을 마련하고, 농사 지을 작목들을 결정하고,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등등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내도 역시 요즘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의 직장 때문에 5년동안 살았던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삿짐을 옮겨놓은 다음에는 아내들의 할 일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삿짐을 제 자리에 정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서, 집안에서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외부 전문가에게 작업을 맡기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고... 거기에다가 남편이 강원도로 귀농을 한다고 날뛰고 있어서, 강원도 생활도 준비를 해야 한다. 

 

  가족들이 각자 다음 단계에 연착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transition period를 어떻게 슬기롭게 만들어 가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보다도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어차피 하느님께서는 우리 가족들이 각자 살아가는 길을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다음 단계로 진화해나갈 것인가?’가 가족들에게는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누구나 힘들 때는 가족들의 응원이 가장 큰 힘이 되듯이, 서로 힘들 때 더욱 깊은 애정과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 서로에게 보내준 응원의 박수가, 평생 가족들간 사랑의 깊은 샘물이 될 것이다. 

  천주교를 믿는 우리 가족들은 매일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는, 위로의 말과 함께 유머로 최소한 한 시간이상을 웃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가족들과 떨어져서 미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민수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가족들과 화상 통화를 하곤 한다. 아내와 찬수, 그리고 나는 민수와 유머를 주고 받으면서, 민수가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실컷 웃고 나면, 그동안 쌓여있던 불안과 걱정에서 잠시나마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서로 기도해주고 통화를 끊곤 한다.

   사람들간의 관계는 즐겁고 기쁠 때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닥쳤을 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상시 보다는 힘들었을 때 상대방을 어떻게 배려하고 도움을 주었는 지가, 서로의 관계 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간 애정이 더욱 깊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Transition period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쌓이게 되면, 신뢰가 깊어지고 좋은 추억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의 기도에 힘을 얻으면서, 민수는 번번히 떨어지는 것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인터뷰를 해나갔다. 그리고 7월 어느 날 드디어 최종 합격통보를 받았다. 민수가 원하는 경영 컨설팅 회사였다. 가족의 기도가 이뤄지면서, 민수는 자신이 원하던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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