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cm이 넘는 큰 키에 살짝 배가 나온 커다란 덩치. 조그만 두상에 콕콕 박힌 파란 눈과 탁한 금발의, 살짝 아기 돼지를 연상케 하는 선하고 귀여운 인상을 가진 남자.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밑으로 드러난 팔뚝과 다리를 뒤덮은 털이 햇빛 아래 금색으로 반짝반짝 빛나서 정말 우리가 같은 인간이 맞나, 사실 얘는 강아지인데 잠깐 사람으로 변신한 게 아닐까 기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남자는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대학원 공부를 하러 대한민국으로.
요즈음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나보다 네 살이나 어려서 젊다, 아기같다는 느낌이 가끔 든다. 개인적으로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는 다르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여기는데, 그럼에도 이 사람의 생기 있는 얼굴을 보고 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느끼며 옆에 앉아 있노라면 이십 대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예전에 사귀었던 네 살 연상의 상대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까? 아무튼 젊으니 편의상 젊은이라고 부르겠다.
처음 커피를 마시러 갔을 때부터 이 젊은이는 말이 많았다. 지도에서 자기 고향을 보여주고, 고향 이름의 발음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어떻게 해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그 전에는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떻게 살았는지 등등. 긴장해서 그러나 싶었는데 왠걸,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에서도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 쏟아냈다. 부모님 이야기, 열 살 어린 여동생 이야기, 외할아버지가 굉장한 공산주의자에 엄격하셨다는 이야기, 친할아버지는 반대로 아주 자유로우셨다는 이야기... 그와 더불어 우크라이나가 굉장히 가부장적인 나라인데 한국에 와서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성별에 따라 고정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관습을 깨부수고 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한국의 모습이 멋있다고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의 한국은 남녀갈등이 최고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데, 서쪽에서 온 이 젊은이는 이렇게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구나. 그렇다면 대체 우크라이나는 얼마나 과거에 머물고 있는거야?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에 거의 집착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느꼈다. 여자는 나이가 적든 많든 긴 머리에 긴 속눈썹, 색칠한 손톱을 유지해야 하고 남자는 바깥에서 적절히 주먹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동물적으로 다가왔다. 여성스러워야 여자임을, 남성스러워야 남자임을 인정받는 것이다. 젊은이는 자기도 한국에 오기 전에는 여자가 요리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단다. 자기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모든 동네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자신의 생각이 바뀌어 여자든 남자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자가 해야 할 일, 남자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젊은이가 자기가 다녔던 공학(engineering)대학교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긴 담장을 따라 과 별로 벽화를 그려놓은 것이 있었다. 벽화에 과 이름도 함께 적혀있었는데, 어떤 과는 이름이 D.Y.M(편의상 우크라이나어 대신 영어로 대신한다)였는데, 'Department of 과 이름' 을 줄인 그 단어를 이 학교 학생들은 Department of Young Moms라고 부른다고 했다. 과 내 여학생들 대다수가 임산부여서. 젊은이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슬펐다. 꽤 괜찮은 학교라는데도 이 모양이구나. 여학생들을 임신시킨 남학생들은 평범한 학교 생활을 하는 데 반해 임신한 여학생들은 무거운 몸으로 힘들게 졸업을 하고 혹은 중간에 자퇴를 하겠지. 유럽의 국가들은 다 여권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내 편견임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 번 만남을 거듭하며 나는 젊은이에게서 '가부장적'으로 여겨지는 점들을 자연스레 보았다. 젊은이에게는 차가 있는데 나를 조수석에 태워줄 때마다 항상 문을 열어준다. 내가 차체에 머리부터 집어넣으려하면 내 머리가 차 모서리에 닿지 않게 손으로 모서리를 막아준다. 내가 큰 가방을 들고 있으면 무겁든 가볍든 항상 빼앗아 든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고 나서 내가 돈을 내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군다. 밥을 먹어도, 커피를 마셔도 본인이 다 내려고 한다. 영화관에 가도 티켓과 팝콘 모두 본인이 다 사려고 한다. 식당 카운터 앞에서 사람들이 카드를 들고 실랑이하는 흔한 광경의 일부처럼, 우리도 삼성페이를 켜고 싸운다. 그러나 젊은이가 내 허벅지만한 팔뚝으로 나를 제지하고 거대한 등짝으로 나를 막아서면 항상 내가 진다. 아이러니인 것은 나는 어엿한 사회인이고 젊은이는 아직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는 것이다.
그게 미안해서 때때로 집에서 만날 때면 내가 요리와 뒷정리를 전담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마저도 이따금 가부장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부엌에 서서 일을 하고 있으면 젊은이는 우리 집 고양이들이랑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서도 그릇을 개수대에 갖다놓고 식탁을 닦는 기본적인 행위조차 어쩌다 한 번씩이다. 손님으로 우리 집에 놀러오는 내 친구들조차 그 정도는 알아서 하는데! 해달라고 부탁하면 재깍 해주기는 하는데 마치 로봇처럼 지시한 사항만 겨우 해낸다. 기본적인 정리, 정돈이 몸에 배어있지 않으니 먹을 때도 조심성이 없다. 치우는 것이 지긋지긋한 나같은 사람은 애초에 먹을 때 흘리지 않으려 접시 가까이서 조심스레 먹는다. 하지만 젊은이는? 이야기를 하며 손을 휘두르며 아주 맛있게 열심히 먹는다. 내가 아침식사로 가볍게 뚝딱 구워주는 토스트나 간식으로 내놓는 쿠키, 타르트 따위를 먹고 나면 아주 폭풍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부스러기가 식탁과 바닥에 흩어져 있다. 토스트에 바르는 잼을 항상 내가 냉장고에서 꺼내주는데 단 한 번도 이 잼을 냉장고에 도로 넣는 꼴을 본 적이 없다. 다 먹고 뚜껑이나 닫으면 다행이다. 나는 아침을 먹지도 않는데 젊은이가 있는 아침에는 바쁘다. 야옹거리며 밥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고양이들에게 아침 식사로 캔을 따주고, 어쨌든 손님인 젊은이를 위해 토스트를 구우며 동시에 커피를 내리며 '아이스? 핫?'을 외친다. 마치 두바이의 부잣집에 고용된 바리스타처럼. 젊은이가 먹는 동안 옆에 앉아 함께 떠들다가 다 먹으면 또다시 나 혼자 치울 차례.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할머니가 생각하는 일등 신붓감마냥 남자가 쉬는 동안 부엌에서 날아다니고 있지 않았을 거다. 때로는 사소한 일 하나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그러나 나보다, 내 친동생보다도 어리니 애같은 생각에, 그리고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부엌일을 참 좋아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무언가를 해주던 생각에 그냥 열심히 해주게 된다. 받은만큼 베풀 줄 알게 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어쨌든 나는 부엌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나는 젊은이를 좋아하니까. 잘 해주고 싶으니까.
전에 젊은이가 생활하는 대학원 기숙사 방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청소를 어찌나 오래 안 한건지, 아니 청소라는 것을 한 적이 있기나 했는지 책상이 너무 더러워서 옆에 보조책상을 펴놓고 그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마시다 만 큰 페트 물병이 세 개, 뭘 먹은건지 모르겠지만 빈 유리병과 책, 충전기, 필기구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쌓여있는 물건들 밑으로 바퀴벌레가 지나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물병을 냉장고에 넣지 않는거야? 왜 물을 다 마시든지 버리든지 하지 않는거지? 유리병은 왜 버리지도 않고 세척하지도 않고 그냥 저렇게 둔거야? 온갖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물론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뻔하다. 바빠서, 라고 하겠지. 입사하고 나서 책상을 닦아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나는 아닐거라고 자신한다. 자기 자신이 하루 중 가장 편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를 저렇게 방치할 수가 있다니. 가족과 함께 살 때는 치우고 정리하는 일이 엄마의 몫이었음이 분명하다.
젊은이가 말로는 열심히 남녀평등을 외치고 다니지만 저러고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오랜 세월을 저렇게 살아온 젊은이를 내가 바꿀 수는 없는데다 연인 사이에 서로의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 헤어짐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잔소리할 생각은 없다. '돌봄'이라는 것이 오랜 세월 여성의 일로 치부되어 왔지만 더이상은 아니다.(여전히 돌봄과 관련한 직종의 성비는 여성이 절대적으로 높기는 하지만) 자기 주변을 깨끗하게 돌보는 일, 자기 몸뚱이를 돌보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젊은이가 마냥 애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이보다도 이렇게 주변의 손길을 필요로 해 보이게 다니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스러움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돌볼 줄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남자는 애 아니면 개다, 라는 농담도 남자들이 주로 돌봄이라는 것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이처럼 주위 환경을 깔끔히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싶다. 젊은이가 남녀평등에 대한 관심이 없다가 생긴 것처럼, 언젠가는 자신을 돌보는 법도 배우게 되었으면 좋겠다. 젊은이는 젊으니까, 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