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기대 이하의 프리퀄
일 년 중 하루 12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된다. 물건을 훔쳐도 되고 사람을 때려도 되고 심지어 죽이는 것도 가능하다. 국가가 정한 제도(국정살육일, 國定殺戮日)이기 때문에 뭔 짓을 해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미국(영화)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극단적 상상력은 경제 불안, 인종 갈등, 문화 충돌로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의 현실에 기인한다. 워낙 거대하고 다양한 국가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없으니 국민에게 일시적 일탈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미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영화는 한 공동체의 무의식을 반영하는데 외딴 마을에서 연쇄 살인마에게 도륙당하는 얘기가 ― 대표적으로 '텍사스 전기톱 학살' 같은 공포 영화가 한국에 드문 걸 보면 하루만 맘껏 범죄 해도 되는 이 영화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게, 그들의 환경에서는 그런 무의식이 존재할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영화에서는 그 제도를 퍼지라고 부른다. 퍼지(purge)의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그 제도의 취지가 드러난다. '조직에서 사람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제거하다.' '나쁜 생각·감정을 몰아내다.' '제거(숙청).' 그러니까 사회에 도움 안 되는 약자를 국가가 제거할 명분이 없으니까 범죄를 허락해주어 약자끼리 싸우게 해 자멸시키겠다는 것이다. 한 인물은 이를 콜로세움에 비유한다. 퍼지 실험의 첫 장소로 지정된 뉴욕의 스태튼 섬은 원형 경기장이나 마찬가지다. 흑인-빈민으로 이루어진 그곳에서 약자들은 살육을 허용받는다. 근데 상대가 같은 약자라서 그 콜로세움의 최후는 비극일 수밖에 없다. 힘을 뭉쳐야 하는 처지들이 서로를 죽이니 타살은 곧 자살이다.
영화니까 일반적 예상으로, 무참한 범죄가 난무할 것 같지만 의외로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 살인은 상처 받은 마음이 전제돼야 하는데 일반인은 그 정도의 상처가 없을 거라는 드미트리의 말처럼 사람들은 방화나 절도를 할 뿐이지 누구를 작정하고 죽이지 않는다(미치광이 스켈레토는 예외.). 퍼지를 통해 약자들을 사회에서 손쉽게 몰아내려고 했던 NFFA의 참모는 실망하고 퍼지의 설계자 업데일 박사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본다. 주민 중 일부는 교회에 모여 하룻밤을 보내고 다른 일부는 파티를 벌이고 노는데 이는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우리 삶에 대한 비유다. 영화는 둘 중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한지 논하지 않는다. 성과 속의 대결이 주된 테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제를 품고 있는 이야기의 골격은 NFFA가 스태튼 섬에 용병을 침투시키고 주요 인물들이 그에 맞서 싸움으로써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원래 주민끼리만 싸우게 해야 하는데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으니까 NFFA에서 살인이 직업인 사람들을 몰래 투입한 것이다. NFFA와 용병. 그리고 그에 맞서는 주민들. 대립 구도가 그렇게 형성되고 그들이 상징하는 개념과 가치가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퍼지법(purge法)의 온당함에 대한 의문이다.
갱스터 하나가 이렇게 말한다. "나도 퍼지에 뛰어들고 싶어. 마구 부수면서 즐기고 싶다고. 내 생애 처음으로 법을 따르는 시민이 될 기회잖아."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I could be a law-abiding citizen.") 이 재치 있는 농담은 실정법의 아이러니함을 담고 있다. 본래의 형법 하에서 갱스터는 범죄자다. 근데 퍼지법이 시행되자 범죄가 적법 행위가 되고 범법자가 준법자가 된다. 퍼지가 진행 중인 동안은 범죄를 저질러도 되니까 갱스터가 우스꽝스럽게도 법을 지키는 시민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그래서 법학은 학문으로서 무가치하다는 말도 있다. ("입법자가 세 단어만 바꾸면 도서관의 모든 책은 휴지가 되고 만다.") 실정법에 권력자의 주관적 의지가 개입하고 그로 인해 자연법과 거리가 생기게 되고 또 법학은 수학과 과학처럼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인은 자연법에서 명백히 불법지만 실정법(퍼지법)에서 합법일 수 있다. 이 아이러니함에 대한 시사는 퍼지법이 온당치 않다는 쪽으로 전개되고 그것을 시행하는 NFFA와 용병을 부정적 개념으로 분류시킨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에 맞서는 주요 인물과 주민들은 긍정적 개념으로 분류되는데 영화는 이 둘의 차이를 진부하지만 명백하게 인종을 통해서 보여준다. 백인은 나쁜 놈이고 흑인은 착한 놈이다. NFFA의 참모는 얼굴이 새하얀 백인이고, 드미트리가 아파트(파크힐 타워)에서 상대한 용병들도 백인이다(영화는 용병 대장이 가면을 벗는 장면과 용병 대원이 드미트리에게 목 졸려 죽고 가면이 벗겨지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용병 중에는 KKK의 복장을 입은 자들이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긍정적 개념을 담당하는 흑인은 스태튼 섬의 주민 중 대다수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겠다. 20세기 초에는 백인이 선이고 흑인이 악인 영화가 꽤 있었는데(흑백 영화는 고유의 밝음과 어둠으로 이를 즐겨 표현했다.) 현재 21세기에는 마치 복수라도 하듯이 흑인이 선이고 백인이 악인 영화가 많다. 흑백 상관없이 인종으로 선악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그놈의 '정치적 올바름'이 흑인은 절대 악이 될 수 없고 백인은 악이 돼도 괜찮다는 주의를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 <더 라스트 퍼지>의 주제 의식에는 좀 지겹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둘의 대사와 하나의 문구가 긍정과 부정의 개념을 더 확실하게 한다. 나이야의 말부터 들어보자. "우리 모두 인생에서 치유할지 해칠지 선택해야 해." ("We all have to make choices in life to heal or to hurt.") 첫 장면에서 스켈레토가 퍼지를 신청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증오를 표출하는 거야. 날 괴롭히는 이 모든 걸 몰아내려고." ("Release this deep fucking hate I have for everyone, everything. Just to fucking purge all this shit that eats me up.") 주민들이 피신한 교회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간판에 세워져 있다. 'PRAY NOT PURGE GALATIANS 5:16' 이 성경 구절을 원문으로 소개하면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So I say, walk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flesh.)'이다.
충분한 단서가 제공됐으니 단어와 개념을 하나씩 분류해보자. 나이야는 치유(heal)와 해침(hurt)을 언급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으니 이는 명백히 대립되는 개념이다. 나이야는 '치유'의 인생을, 드미트리는 '해침'의 인생을 살았다("And you chose the latter."). 스켈레토는 증오를 표출하는 걸 몰아냄(purge)으로 표현했다. 영화의 전반적 사건인 퍼지법은 그 표현에서 따온 명칭인데 '퍼지'가 부정적 감정(hate)을 몰아내는 것이므로, 그리고 남을 해치는 범죄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므로 '몰아냄'과 관련한 것은 부정적 개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의 갈라디아서 구절은 성령(spirit)과 욕망(desire)을 구별하고 전자의 개념이 좋은 것이라 말한다. '성령'은 '치유'와 의미가 통하고 '욕망'은 '몰아냄'과 '해침'을 통해 그 뜻이 실현된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나타나는 긍정과 부정의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긍정적 개념: 자연법(살인을 비롯한 범죄는 본래부터 나쁜 것)-신법(神法)-교회-성령-치유-나이야-화합(연대)-드미트리와 이사야(그들은 초반에 갱스터 쪽이었다가 나이야의 영향으로 개심의 과정을 겪는다. 그리고 인생의 길이 달랐던 나이야와 드미트리가 나중에 힘을 합치는 모습은 '몰아냄'의 반대 개념인 '화합'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흑인
부정적 개념: 실정법(국가는 살인도 합법화할 수 있다)-권력-통제실(NFFA의 참모와 수하들이 스태튼 섬 주민들의 퍼지 상황을 지켜본다. 우월적 위치.)-욕망(퍼지의 실질적 의도는 약자에 대한 증오다.)-해침-NFFA-숙청(차별)-용병들(퍼지의 효과가 없자 NFFA에서 계획적 살인을 일으킨다.)-백인
두 개념의 충돌이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고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로 결말이 장식된다. 정치적 올바름의 뻔한 결과답게 긍정적 개념의 흑인이 부정적 개념의 백인을 이긴다. 그러니까 스태튼 섬 주민들이 NFFA의 퍼지를 극복해 낸다. 재밌는 점은 퍼지의 활발한 참여와 유의미한 결과를 꾀하려고 NFFA가 거리에 신종 무기를 풀었는데 드미트리가 그중의 폭탄을 이용해 마지막 용병을 해치운다는 것이다. NFFA가 그 폭탄을 풀지 않았다면 드미트리는 그들을 절대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본인들이 제공한 무기로 자기들이 당했으니 이건 영화가 퍼지(몰아냄)를 반대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과 같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증오는 결국 미국 전체의 자멸로 이어질 것이다. 영화는 퍼지가 끝난 아침에 드미트리를 위시한 주민들이 아파트 밖으로 나와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미국의 앞날을 걱정하듯 조기로 게양된 성조기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업데일 박사는 퍼지의 설계자고 백인 중 주요 인물이지만 부정적 개념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태튼 섬에 용병이 개입한 것을 확인하고 무참한 학살을 막기 위해 NFFA의 참모에게 항의한다. 그런데 좀 생각해보면 그녀가 정의의 사도여서, 백인이지만 긍정적 인물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지 객관적 연구를 중시하는 학자였기에 용병 개입을 반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달한다.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퍼지에 정치적 목적은 없고 오직 심리 연구가 전부라고 말한다. 예상과 달리 퍼지의 초반 참여가 저조했을 때도 그녀는 희생자의 적음에 안도하는 게 아니라 왜 실제 데이터가 예상을 빗나갔는지에 집중한다. 도덕과 정치에 거리를 두고 연구만 하는, 그런 중립적인 모습은 이 영화의 평면적 인물 설정에 나름 신선한 환기를 일으킨다. 그러나 꼭 언급할 만큼 비중이 있는 건 아니다.
이사야가 방에서 교복을 입을 때 거울로 벽에 붙은 포스터가 슬쩍 보인다. 진짜 짧은 순간에 지나가서 한 번 시청으로는 알아채지 못할 확률이 높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의 연출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그만큼 영화에 특기할 만한 게 없다는 뜻) 2018년작 <할로윈>의 포스터가 등장한 이유는, 단순히 제작사가 같기 때문이다. <더 퍼스트 퍼지>와 <할로윈>의 여러 제작 회사 중 블럼하우스 프로덕션이 두 영화에 참여했다. 그래서 슬쩍 포스터를 보여줌으로써 일종의 홍보를 한 것이다. 근데 우연하게도, 홍보 목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마이클 마이어스의 얼굴 사진은 거울 속에서 그와 겹쳐진 이사야와 몇 개의 연관성을 가진다. 영화에서 두 인물을 가까이 두는 것은(그것도 거울 속에서) 둘의 유사성(혹은 관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어떤 비슷함을 가졌을까? 일단 누나와 대립한다는 게 닮았다. 마이클 마이어스는 어렸을 때 누나를 살해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됐다. 이사야는 갱단 밑에서 마약 판매 일을 해 누나와 다툼한다. 마이클 마이어스의 가면이 퍼지 참가자의 가면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리고 그 가면이 얼굴 하얀 백인과 닮아서 흑인인 이사야를 등 뒤에서 노리고 있다는 것도 영화 내용과 관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