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이 특히 멋진 작품
이런 액션 영화에도 주제 의식이 있을까? 상업적 흥미에 치중한 영화는, 그래서 보고 나면 난처할 때가 많다.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심도 있는 분석을 하고 싶어도 작품 자체가 얕기 때문에 지적 풀이가 불가능하다. 고작 늘어놓을 수 있는 말이란 재미의 여부를 따지는 것과 주인공이 이래서 이렇게 됐고 저래서 저렇게 됐다는 줄거리 설명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리뷰를 좋아하지 않기에 영화에서 뭐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열심히 들여다보는데 다행히 <그레이 맨>에 '구조'란 게 있었다. 역시, 웬만한 영화 중에 그냥 만든 것은 없다. 재미가 1차 목적이어도 창작자의 의도와 메시지가 다 숨어 있는 것이다.
감독 둘(루소 형제)이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를 만든 적 있어서 <그레이 맨>에도 비슷한 주제 의식이 깔려 있다. 개인과 집단 사이의 문제. 인간의 자유는 항상 집단의 구속에 제한당하는데 그 부조리함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식스 하나 잡겠다고 경찰과 특수 부대가 난장을 벌인 프라하와, 어벤져스와 울트론의 대결로 쑥대밭이 된 소코비아는 같은 공간적 성격을 지녔다. 식스 같은 수감자를 출소시키는 조건으로 CIA의 암살 요원이 되게 하는 시에라 프로젝트와, 어벤져스의 활동을 제약해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 하는 소코비아 협정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자유와 구속의 문제이고 <그레이 맨>은 전자가 후자와 충돌하는 실존적 투쟁을 보여준다. 영화에 시시포스 얘기가 나오기에 '실존적'이란 표현은 지나친 게 아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던 사르트르. 그래서 그의 인간은 자유와 선택이 전제된 실존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 나간다. 정해진 본질 따위 없기에 자유와 선택이 곧 본질이 되는 것이다. 그와 달리 카뮈는 부조리한 현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사르트르의 인간이 아무리 자유롭게 선택한다 해도 카뮈의 철학 속에선 현실의 부조리함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산 위로 바위를 계속 밀어 올리는 게 현실이므로 인간은 애초에 자유도 없고 선택도 없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것만이, 그러므로 유일한 실존이다. 식스의 삶은 사르트르의 선택보다 카뮈의 저항에 가까우므로, 카뮈가 시시포스에 대한 책을 썼듯이 팔에 시시포스의 문신을 하고 있다. 감옥에서 한 그 문신에 대해 식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 남자 이름이야."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사람."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식스는 곧 시시포스다. Six의 S, Sisyphus의 S.
신을 속인 벌로 시시포스가 받은 부조리한 본질은 저승에서 바위를 산정까지 올리는 것이었다. 힘들겠지만 바위야 밀고 올라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이쪽에서 정상에 도착하면 바위가 저쪽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 저쪽에서 밀고 올라와야 한다. 그러니까 시시포스가 처한 본질은 끝이 없는 것이다. 고통이 영원히 반복된다. 이승이 아니라 저승이라서 탈출할 방법도 없다(자살이 불가능하다는 뜻).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식스는 태어났을 때부터 시시포스와 상황이 비슷했다. 강하게 커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의 존재는 신과 같으므로 그 그늘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부모의 교육이 자식이 맞이하는 첫 세계인데 식스는 인생 처음부터,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밀어야 하는, 그런 부조리한 고통을 받은 것이다.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형벌을 받은 것이므로 카뮈의 해석에 따르면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바위를 미는 것이, 즉 그렇게 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게 신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벌을 내렸는데 학생이 힘들어하지 않고 그 벌을 가벼이 버틴다면 학생이 이긴 것이 된다. 저항은 카뮈에게, 그래서 반항이다. 사르트르가 선택하는 인간이라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다. 식스는 시시포스보다 상황이 나았으므로 ― 저승이 아니라 이승에 살았고, 적대자가 신이 아니라 인간(아버지)이었으므로 ― 다른 식의 반항을 했다. 자신에게 부조리한 본질 그 자체였던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인 것이다. 시시포스(식스)는 신(아버지)을 살해함으로써 형벌(학대)에서 벗어난 것이다.
구속이 사라지면 자유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식스는 두 번째 구속을 당한다. 저승이 아니라 이승에서 죄(살해)를 저질렀기에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간 것이다. 앞서 시시포스의 문신을 감옥에서 했다고 언급했는데, 가석방까지 최소 30년 이상 수감 생활 해야 하는 식스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학대에서 벗어났어도 감옥에 들어가 자유를 잃었으니 자신의 인생이 영원한 벌을 받은 시시포스와 같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쪽에서 밀어 올린 바위가 아버지의 학대였다면 저쪽에서 밀어야 하는 바위는 감옥살이었던 것.
그 바위를 멈추게 해준 것은 식스가 구세주(fairy godmother)라고 표현한 피츠로이다. 죄수 중 유능한 사람을 뽑아 CIA의 암살 요원으로 쓰는 시에라 프로젝트가 그 명칭(sierra: 산맥)에서 시시포스가 형벌 받았던 산을 떠올리게 하지만, 식스를 감옥에서 꺼내주었고 어느 정도의 권리(회색 지대의 킬러이지만 죄수 신분보다 자유가 있음)를 보장하므로 그 프로젝트를 제안한 피츠로이는 식스에게 '구속'이 아닌 '자유'의 인물이다. 굳이 'godmother'라는 단어를 쓴 것과 "나한테도 가족 같은 분이야(Closest thing to family I got too.)."라고 한 것을 보면 피츠로이는 식스의 사회적('생물학적'의 반대 의미) 부모이고 그의 조카 클레어는 식스의 사회적 딸이라고 할 수 있다("그럼 우리도 가족이겠네요." ("Maybe that kind of makes us family.")).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고 그를 살해한 죄로 옥살이를 한 식스는 정상적인 가족을 무척 꿈꿨을 것이다. 피츠로이를 통해 약간의 자유를 얻은 그는 클레어를 만난 뒤로 삶의 의미를 깨달았는지 그녀의 부모라도 된 것처럼 그녀를 구하고 지킨다. 설정상 그녀에게 부모가 없고, 결국 피츠로이는 먼저 죽고, 정말 식스가 그녀의 사회적 부모가 된다. '자유'의 그는 '구속'의 학대를 되물림하지 않고 그녀에게 가족이 되어주고 사랑을 실천한다. 정상적인 가족을 형성하는 게, 그리고 친부가 했던 것과 반대로 사랑을 물려주는 게 식스의 존재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가족'과 '사랑'을 추구함으로써 자기가 받았던 '구속'을 스스로 물리친다. 아버지 피츠로이, 어머니 마가렛, 딸 클레어, 그리고 아내 미란다(파트너처럼 동행하고 부부처럼 다투기도 한다.)는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친부와 감옥이라는 두 번의 '구속' 뒤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얻었지만 CIA의 비밀(비리) 자료를 입수한 식스는 세 번째 '구속'을 당한다. 센터장 카마이클이 부정을 저질러 왔으며, 시에라 프로젝트의 요원들이 제거될 것임을 알아버린 것. 식스는 살려면 CIA의 수뇌와 대적할 수밖에 없다. 시시포스가 굴리는 바위를 들어 하데스를 쳐 죽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시포스가 돌에 깔려 죽는다. 흥미로운 점은 실질로 싸우는 적이 카마이클이 아니라 그가 고용한 소시오패스 킬러 로이드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로이드와 식스 친부의 유사성이다. 시시포스 형벌의 영원성을 비유할 목적이었는지, 아니면 영화의 작품성을 위해 스토리를 구조적으로 만든 것인지 식스의 마지막 '구속'이 로이드를 통해 첫 번째와 유사하게 반복된다. 물속에 식스의 머리를 넣어 고문하는 행동. 친부는 화장실 욕조에서 하고 로이드는 마지막 결전의 지상 연못에서 한다. 정상적인 성격이라 할 수 없는 친부, 악명 높은 성격 파탄자 로이드.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한쪽은 마초이즘에 심취해 있고 다른 쪽은 백바지에 쫄쫄이를 입는 게이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수잔이 마지막에 총 들고 협상할 때 카마이클와 로이드가 각별한 사이였다고 얘기한다. (Thoes two had this absurd bromance.)) 근데 이런 대조도 거시적으로 따지면 유사성의 구조에 속한다. 180도 다른 것도 대칭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구속'에서 총을 쏴 아버지를 죽였듯이, 마지막에 로이드도 총을 맞아 제거된다(물론 식스가 직접 쏜 건 아니지만). 식스는 드디어 완전한 '자유'를 얻는 듯하지만 CIA의 또 다른 수뇌인 수잔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게 되고 ― 클레어의 안전과 자기 목숨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 결국 특수 시설에 수감된다. 필자는 이 결말 부분의 투옥을 굳이 네 번째 '구속'이라고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세 번째 '구속'의 악당들이 카마이클과 수잔과 로이드였고, 로이드만 죽은 뒤 카마이클과 수잔이 이어서 식스를 가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말의 거래가 세 번째 '구속'의 연장이라고 보는데, 식스는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초인적 싸움 실력으로 수감 시설의 군인들을 다 때려잡고 탈출에 성공한다. 총알 피해 달리는 미란다의 활극에 비하면 충분히 영화적 허용이라 볼 수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클레어가 감시당하고 있는 집에 그녀를 구출하러 왔을 때 식스는, 틀어 놓은 음악의 가사처럼 은색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원래 회색(gray man)인데 이제 CIA의 '구속'에서 벗어났으니까 은색(silver bird)으로 진화한 것이다. 확실히, 홍콩 집에서 클레어를 처음 만났을 때는 회색의 짙은 양복을 입고 있는데 마지막의 버지니아 집에 나타났을 때는 그보다 밝은, 그래서 은색 같아 보이는 사복 차림이다. 은빛 새여, 나의 아가씨를 멀리 날려버리세요. (Silver bird, fly my lady away.) 은빛 새여, 그녀를 만 위로 데려가세요. (Silver bird, take her over the bay.) 그리고 그녀가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 보러 가게 해주세요. (And let her go see what's on the other side.) 식스는 정말 새처럼 클레어를 데리고 멀리 떠난다. '구속'의 반대편에는 '자유'가 있다는 걸 클레어는 보게 될 것이다. 산 정상에서 바위를 던져 하데스를 죽인 시시포스는 이제 힘든 오르막길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가면 된다. 역시 그 반대편에는 '자유'가 있다. 이 영화 <그레이 맨>은, 그러니까 시시포스의 승리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