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숨기고, 고통을 삼킨다. 그것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인간에게는 감정이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에 감정을 통해 인간에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을 휘젓고, 상대의 감정을 움직이며,
무력한 상대의 고통을 짓밞아, 모든 걸 잃을 순간까지 쫓아간다.
"너의 존재는 가치가 없고, 도움조차 되지 않을 것인데.
미련하게 버티고 있는 네가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 인간의 존재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인간의 존재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 인간이기에 비로소 살의라는 걸 볼 수 있다.
어떤 말도 귓가에 맺히지 않고, 어떤 말도 마음을 울릴 수 없다. 어떤 마음이든
설득할 수 없음을 알텐데. 미련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기만 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네놈한테, 어떤 영향을 끼치든 나랑 관계가 없는데,
대체 왜? 짓밞아 죽이려는 건데. 네가 뭔데? 신조차 인간을 건들지 않아. 근데 왜? 대체 왜?"
의문만 가지다, 차갑게 식은 남자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신조차 건들지 않는다.
신이 인간에게 축복을 하는 이유는 단순한 흥미일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히 믿어가는 꼴이
마냥 우습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잠시나마 망설임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겠지.
유일한 목격자는 이미 적셔졌으니까.
"인간의 존재는 무력하고, 나약하다.
그렇지만 그래, 관계가 없지, 그래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내가 맞았다고. 끝까지 살아남은 내가 맞았다고. 누군가가 말해주었으면 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상태가 되었지만.
그 누구도 다가올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들의 마지막 행보가 머릿속을 아른하게 한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던 환경에서 버텨온 결과가 지금이라는 것에 허망하기만 하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든 걸 진실로 고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면,
생애 또한 지금과는 정반대의 형태를 하고 있을테지만, 그래도 선택의 후회따윈 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
"모든 존재를 짓밞아 갉아 먹는 한이 있어도,
말할 수 있다. 처참하게 망가진 존재의 모든 걸 잡아먹는 최악의 존재로
다시 나타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비참한 운명이더라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감정에는 과거의 감정같은 미련함은 남아있지 않다.
모든 걸 기대하고 살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감정임을 알아도, 마음으론 알아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모습에 한탄을 하면서도, 끝 없이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다스릴 뿐이다.
칼을 집어든다. 사람을 향해 다가가, 허벅지 쪽에 칼 끝을 대곤, 욱여넣는다. 감정이 담긴 행위가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 보이고 싶은 동점심 또한 아니다. 그저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써의 얼마 남지 않은 자그마한 인간성이라는 것이니까.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존재에게 유일하게나마 들이밀어준 하찮지만, 없으면 허전한 존재이니 말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예전과는 다르다. 무엇이든 말하고 싶지만, 꺼낼 이유가 없다.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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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없습니다. 목적을 숨기면서까지 대체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감정을 그 사람에게만 알려주었을 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저번주의 글과 이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이번엔 남자의 공백일려나요. 남자의 마음 속에 숨겨둔 진심을 끄집어 내서라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번 주에 물었던 질문에 답할 시간이 된 거 같습니다. 저는 역시 상처로 뒤덮인 사람은 아닌가봅니다. 그렇다고 칼을 쥐어내서 사람의 장기를 뒤틀면서 그들의 고통을 자극이라 칭하는 남자 역시 아닙니다. 하지만, 확실히 어딘가 엇나간 듯한 기분은 있습니다. 망가지고, 사라지고나서야. 말할 수 있었던 감정을 내뱉을 수단이 글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람이 될 수는 없던 거 같습니다.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두렵습니다. 남자도 비슷한 환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통을 삼키고 감정을 침묵함으로써 얻은 이득이 남자에겐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도 갖고 싶네요. 그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