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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Bipolar Disorder


나에게는 양극성 장애가 있어.


아니 사실 그런 건 없을지도.


어느 날 신이 너의 앞에 갑자기 나타나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저지른 모든 실수와 잘못과 실패들이 사실은 너의 잘못이 아닌 어떤 병 때문이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아?


난 왜 이럴까. 왜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을까. 왜 평범할 수 없을까. 왜 슬플 땐 슬프고 행복할 땐 행복할 수 없을까. 평범하다는 건 어떤 걸까. 난 뇌의 어떤 부분이 망가져 버린 걸까. 난 태어나지 말아야 했던 걸까. 난 이상한 사람인 걸까. 난 괴물인 걸까.


수도 없이 되묻고 되물어 메아리쳐 돌아왔던 생각과 의문들. 그 모든 고민 끝에 찾아간 정신과에서 들려준 답변. 당신은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병의 이름은 양극성 장애, 흔히 말하는 조울증입니다.


아 그랬구나. 그렇구나.


널뛰기하는 감정들. 한없이 기쁘고 한없이 우울한 두 감정 중 어느 한 곳도 나에게 집이 되어주지는 못했어. 차라리 한 없이 기쁘지. 차라리 한 없이 우울하지. 하나의 선위로 감정이 솟아올랐다 끝없이 추락해 버린다.


그동안 실패했던 관계들이 떠오른다.


설익은 반가움과 설렘으로 시작했던 많은 관계들. 결국 모래처럼 흘러내려 버렸어. 순식간에 녹아버렸어. 감정이 앞서고 말이 앞서서 그만 나를 잊어버렸어. 그랬으면 안 됐는데. 남은 나를 모르니 나라도 나를 알았어야 하는데.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흐린 눈을 떠버렸어. 감당하지도 못할 말을 내뱉고 책임지지도 못할 약속을 내뱉었어. 이번에는 다를 거야라고 외쳐보아도 결국 난 그 자리 그대로야. 자괴감에 나를 숨기다 감당하지 못해 멋대로 도망쳐 버린다. 그때 난 나를 직시해. 그래 나 이런 사람이었지.


한껏 나를 꾸미고 치장한 채로 시작한 많은 연애들. 있는 힘껏 다정함을 연기하고 입에 사랑을 담았어. 그래도 사람은 변하지 않더라. 결국 한 꺼풀 한 꺼풀 발가 벗겨져. 벌거 벗겨진 난 참 초라해. 이런 나를 정말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진부한 자괴감에 나를 담가본다. 한 없이 나를 사랑하다 한 없이 나는 혐오해 본다. 지겨워 이런 감정. 쓰는 나도 지겨운데 읽는 너는 어떨까.


나에게는 양극성 장애가 있어.


그래서 온전히 행복하지 못해. 이 행복 끝에는 필연적인 우울이 있다는 걸 난 알거든. 온전히 불행하지도 못해. 이 우울 끝에 예고 없는 행복이 찾아온다는 걸 난 알거든. 계속해서 돌을 굴리는 삶. 시지프스 같은 삶. 그런 삶을 난 살고 있어.


나에게는 양극성 장애가 있어


아니 사실 그런 건 없을지도. 어떤 친구가 말했어. 병명 뒤로 숨지 말라고. 그거 정말 비겁한 거라고. 불쌍한 척 그만하라고. 맞아.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나에게 정말 그런 병이 있는지.


선 위로 감정이 파도친다.


이 파도의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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