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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Jul 30. 2022

왜 BTS였을까

BTS는 한류 K Pop의 상징이 되었다. 우리가 현재 시점에서 BTS로 서두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BTS보다 뛰어난 비주얼의 보이그룹들은 우리나라에만도 많다. 그들보다 더 우월한 신체조건, 댄스 실력을 갖춘 그룹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BTS는 그들이 갖지 못한 것, 메시지, 즉 밸류를 가졌다. 가치(밸류)가 BTS와 여타 보이그룹의 오늘날을 가른 결정적인 차이이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클린턴 선거 캠페인-가 아니라 ‘바보야, 문제는 밸류야’이다. 음악을 좀 아는 사람들이라면, 뮤지션이라면 음악에 메시지를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BTS는 최초에 누구도 그들에게서 가치를 담은 메시지나 진지한 음악성을 기대하지 않는 "K-POP공장'의 ‘아이돌 보이 그룹’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와, 메시지와 가치를 노래한 최초의 아이돌, 어린 뮤지션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으면서도 메시지를 담고, 대중성이 있었던, 이같은 행보를 앞서 간 이는 90년대에 활동한 가수 신해철 등 이라고 볼 수 있고, 방탄이 2020년 빅히트 연말 결산 공연에서 바친, 신해철에 대한 오마주를 보면, 젊음과 청춘의 불안과 스토리를 담은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둘은 시대를 넘어 접점을 갖는다. 

사실 BTS는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 데뷔한 이후로 초창기 국내에서는 큰 팬덤을 이루지는 못했다. '방탄소년단' 이라는 다소 코믹한 이름 때문에 심심찮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데뷔 초창기 김흥국이 라디오 프로그램 소개하면서 ‘방탄조끼’라 하여 유머 소재가 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활동을 시작한 SM엔터테인먼트의 엑소(EXXO) 등에 비해 국내 팬덤으로는 적잖이 밀렸다. 

필자는 힙합을 스토리텔링 (story telling)이라는 문학적 방법론이 음악적 방법론으로 확장된 스토리 싱잉 (story singing)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방탄이 건네는, 흔들리는 청춘에 대한 위로는 헤르만 헤세가 그랬듯, 비틀즈가 그랬듯, 보편적 문학성으로 전세계 청춘들의 보편적 공감대를 건드렸다. 

방탄이 팀명 방탄소년단을 소리 그대로 영어 철자로 줄인 BTS (Bang Tan Sonyundan 또는 Bullet proof scout)로 BTS가 되었을 때,  옷을 갈아 입었을 때, Army(군대)라는 이름그대로 극강의 응집력과 조직력을 가진 팬덤과 함께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 올라탔을 때,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의 청소년 아미들을 넘어 미국의 십대, 영국 십대들의 비주류, 주류에서 소외받고 고통받는 비주류들의 팬덤으로 시작한 방탄의 위로는 급기야 일부 비주류 팬덤을 넘어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물결을 타고 전세계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현상이 되었다. 국내외 팬들과 SNS를 통해 진심을 담은 소통을 하면서, 해외 주류 미디어에서 차차 그들 음악의 작품성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무시하고 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BTS가 초창기 밀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군소 레이블 빅히트(현재는 하이브Hybe) 출신이었기 떄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만큼 안면, 연줄이 중요한 곳이 드물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뚫고 들어가기도, 안정적으로 자리잡기도 어렵다. 

2019년 2월, BTS의 아버지 방시혁이 서울대 (서울대 미학과 출신) 졸업식에 초대받아 후배들에게 한 연설을 보면, 자신을 키운 것은 팔할이 분노라고 했다. 대체 무엇에 대한 분노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강고한 기존 엔터테인먼트 3사 레이블과 기존 방송 언론 권력이 나눠갖고 있는 강력한 독점 구조에 대한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엔터그룹의 3대 수장 SM(현재는 카카오), JYP, YG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은 모두 ‘나름대로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인맥의 라인을 넓혀온 사람들이다. 이수만은 대학가요제 가수 출신으로 빼어난 개그감과 말솜씨로 MC등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이고, 박진영은 빼어난 춤 감각으로 김건모 등의 댄스 그룹의 안무를 짜주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춤꾼에서 출발, 가수, 작곡가, 입담의 고수 예능인 등 자신의 역량을 업그레이드해가며 만능엔터테이너로 오랜 기간 활동해왔고, 양현석은 재야의 초절정 댄스 테크니션으로 1992년 시대를 흔든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한 아이’을 맡아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도 처음부터 엔터 모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이 핫한 연예상품을 연이어 내놓고 히트시키는 제작자가 되고 세계 시장을 두드리게 될 야심을 가지게 되기 까지는 본인의 노력과 실력도 있지만, 방송계에 오랫동안 다져놓은 각종 인맥과 인연과 연줄이 끈끈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은 미국 연예계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이라고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미국 연예산업의 기본도 인맥, 인연, 연줄인 것은 똑같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때문에 한국 출신 가수가 한국어로 된 음악을 하며, 그 음반으로 미국 팝의 본고장 무대에 서고, 빌보드 차트에 오르며,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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