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geline 육은주 Jul 29. 2022

장기판의 말



지금까지 우리 내부의 한류의 주체와 동력 등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과연 한류가 우리만의 실력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필자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뉴욕시의 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었다. 뉴욕에 도착한 직후인 어느 겨울날, 대학 카페테리아에 혼자 앉아 처량맞게 차가운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BGM으로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 익숙한데, 놀랍게도 노래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신승훈이었다. 

어느 날은 지하철을 탔는데, 멀끔한 백인 청년이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필자는 서 있었기 때문에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의 노트가 보였다. “배 고파요, 물 주세요, 화장실 어디예요” 등 ‘고~급 서바이벌 한국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필자가 다니던 교회의 중국계 미국인 여자 목사는 K드라마 광팬이었다. '남자 주인공들이 너무나 로맨틱하다'했다. 모로코에서 온 남자유학생은 'K드라마가 건전해서 아랍권에 통한다'진단했다. 세미나장에서 만난 히스패닉 여학생은 ‘호소력이 짙어서’ 백지영을 좋아한다며 즉석에서 노래를 불렀다.

2010년 그때도 이미 한류는 아시아를 제패하고 미국에 상륙해 있었다. 다만 주류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었고, 아시아계나 히스패닉계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러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업계와 언론이 급작스럽게 한국대중문화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12년 여름,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싸이(PSY)의 ‘강남스타일’부터 였다. 미국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싸이를 초청하고, 싸이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말춤을 가르치고, 마돈나와 합동공연을 하는 등 삽시간에 월드스타로 등극했다. 강남스타일은 '언타이틀' 출신 유건형 작곡으로 노래도 워낙 잘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뮤직 비디오 클립이 워낙 재미있어서 유투브 바이럴 영상으로 삽시간에 수억건의 조회수를 올렸다.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메인 차트 2위까지 올라 7주간 머물렀으나, 당시는 빌보드가 유투브 조회수를 집계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위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흥분한 미국 언론은 ‘강남이 도대체 어디냐’부터 시작해서, PSY의 음악세계 조명, 한국의 전통적인 해학과 풍자의 정서까지 수많은 기사들을 쏟아냈다. 2022년 7월 현재 싸이 강남스타일 10주년 기사를 내며 재조명하는 것도 우리나라 언론이 아니라 CNN이다.

PSY 이후 K pop은 BTS, 블랙핑크 등으로 이어져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2018년 맨해튼을 다시 방문했을 떄, 32번가 코리아 타운 입구 헤롤드 스퀘어에서 뉴욕의 청소년 소녀들이 그룹 그룹 모여 신나게 케이 팝 커버댄스를 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싸이, BTS, 블랙핑크 등의 세계적인 인기가 오롯이 우리만의 실력일까, 스타는 태어나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국과 미국이 세계 미디어와 언론산업을 장악하고 있고, 우리는 그런 영향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세계적 스타 만들기는 거의 그들의 마음과 손아귀, 그들의 미디어 전략 아래에 있다. 

싸이는 이 전략의 수혜자는 아니다. 싸이는 우연히 한국적 음악 콘텐츠가 세계에 먹힌다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한 선구자였고, 그 수혜자는 BTS, 블랙 핑크, 그 이후 그룹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 등의 글로벌 OTT업체와 한국 컨텐츠업체들과의 협업 및 글로벌 유통 전략을 통해 추측컨대, 미국의 전략은 한국을 체스판의 킹으로 사용, 일본 동남아, 인도, 중동까지 범 아시아를 한국 콘텐츠 및 한국 문화로 통일하고, 중국을 에워싸는 것이다. 중국을 문화적으로 고립시키고 나아가, 중국을 한국이 상징하는 문화적 가치 아래에 두는 것이다. 

문화를 통한 호감 전략의 대표적인 성공사례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아메리칸 컨슈머리즘, 아메리칸 제국주의, 맥도날드화, 디즈니피케이션이라 비판받지만, 미국은 이 문화적 호감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지구촌 소비경제를 리드하고, 미국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을 글로벌하게 양산하여 미국의 지평을 넓히고 호감을 극대화해왔다. 

미국 입장에서 보기에, 한국은 '성격이 좀 더럽기'는! 하지만-직설적이고,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문화적으로는 통하는 것이 생각 외로 많은, 미국 문화 학습의 우등생이자, 장학생이다. 

이런 글로벌 문화 전략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류를 우연히! 빵 터뜨렸지만, 현재로서는 빡쎄게 고생해서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처지이기만 하다. 그 문화 상품의 전략적인 사용은 미국이 하고 있고, 우리는 미국에 의해 사용되는 장기판의 말 같은 상황이다. //

작가의 이전글 멍석이 깔리자 판의 주인공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