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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Jul 28. 2022

멍석이 깔리자 판의 주인공은

누가 한류를 만들었나 4

대한민국과 한국인은 매우 스타성이 뛰어나다. 스타성은 한국인이 무대 체질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스타성은 종종 위기 속에서 발현된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제2차대전과 그 후 이념전쟁 체제전쟁의 대리전 성격이 짙은 한국전쟁 이후 거의 완전한 폐허에서 맨손으로 새로 시작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정치경제 후발주자에서 시작해서, 세계 10대 무역강국을 이루고, 3050클럽(인구 5천만 이상 규모에 국민소득 3만달러)을 달성했다.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이루는 대의제 민주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민주국가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런 기적적 성취를 이룬, 현대사의 유일무이한 ‘스타 국가’이다. 

대한민국과 그 구성원인 한국인이 얼마나 스타성이 뛰어난가하면, 우리가 치러낸 국제적인 이벤트들의 유치과정과 그 결과물에서 잘 드러난다. 88서울 하계올림픽부터 2002 한일월드컵,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니들이 개도국 주제에 무슨 올림픽이냐”, “뭘 보여줄 거냐”, “축구 실력은 되냐”, “동계 스포츠 저변과 시설은 있고?” 등등 외부의 조롱부터, 시기상조라는 내부 반대까지 어려움을 딛고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걸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어거지’로 유치한 것이 맞다. 그리고 거기에 제물은 항상 공교롭게도 일본이었다. 88올림픽도 개최지로 거의 내정되어 있다시피 한 나고야를 막판에 뒤집은 거고, 한일 월드컵도 일본이 거의 작업해 놓은 것을 막판에 공동주최로 일본은 실리, 우리는 명분을 챙긴 게임이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3수끝에 어렵사리 얻은 개최권이었다. 

그렇게 와글와글, 시끌시끌, 떠들썩,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으면서도 기어이 그 이벤트들을 한국인들의 ‘살판나는’ 무대로 만들어버린다. ‘동서화합의 장’으로 정확히 컨셉을 잡아 세계평화와 그 이후의 구소련의 몰락에 이바지한 88올림픽. 우리는 매스게임의 기존 룰을 뒤집었다. 모든 것을 뺀 정적과 여백에서 굴렁쇠 소년 하나만이 드넓은 초록 운동장을 가로지르게 하여 한국적 미감과 감각을 보여주었다. 2002 월드컵, 20년이 지난 지금도 온국민이 짜릿하게 기억한다. 히딩크 감독과 월드컵 대표팀의 ‘설정 과다’에 ‘실제같지 않은’ 그야말로 ‘만화 같은' 명승부와 이에 화답한 국민들의 환호에 대한민국 땅덩이가 실제로 들썩이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온국민이 빨간 티셔츠 맞춰 입고, 길거리로 뛰쳐나와 응원을 벌이는 바람에, ‘한국인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한 마음으로 온 국민이 제대로 미친 놈들’ 이라는 걸 전 세계에 생중계로 보여주었다. 2002년 월드컵의 판이 깔리고, 문이 열리자, 축제의 주인공은 자신만만하던 일본이 아니라 ‘놀 줄 아는, 뭘 좀 아는’ 우리 한국인들이었다. 공동주최의 한 축이었던 일본은 조용히 안중에서 사라졌다. 

이어령 선생이 우리 문화를 설명하는 한 축으로 ’신바람’론을 주창하셨다면 우리 후학들은 여기에 ‘멍석론’을 하나 추가해야 할듯하다. 판이 깔리기 전에는 지리멸렬하고 어수선해 보이지만, 일단 멍석이 깔리고, 판이 열리면 그 위에서 신명 나게 놀아 제끼는 건 우리 한국인들이다. 

80,90년대 정치경제적 갈등 속에 응집된 문화생산 욕구와 열망이 빵 터지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게 올림픽과 월드컵이다. 1988올림픽은 그 전까지 우리 식, 코리안 스탠다드(Korean standard)만 고집하던 우리들이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눈뜨고, 내외부를 총체적으로 정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2002 월드컵 승리의 짜릿한 추억은 한국인들에게 거대한 공동체적 자긍심과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2002 월드컵 이후 본격적인 문화산업 글로벌화의 시동이 걸리고 2018 평창 이후 우리가 생산하는 각종 문화상품들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이 서서히 붙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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