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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Aug 10. 2022

킹덤 시리즈의 조용한 반란

한류 혁신성 -1


가치 하이브리드


보편성에 이은 한류 가치 측정 두번째인 혁신성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은 2019년 처음 발표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이다. 필자는 조선 좀비의 등장, 사극의 글로벌화, 갓을 필두로 조선 복식의 글로벌한 인기 등을 다룬 기존 언론 보도보다는 동서양 가치의 융합, 밸류 하이브리드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킹덤은 한류의 대표 가치인 인간 중심, 인간적인 매력 요소에 외부에서 유입된 가치를 하이브리드(hybrid) 해서 재창조되었다. 

이 시리즈는 조선을 떠올리게 하는 가상 중세 국가를 무대로, 왕권계승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왕세자의 성장기, 자각, 깨달음의 여정(journey)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리즈 구성은 세자 이창을 중심으로 하되, 이어진 시리즈 2와 프리퀄 '아신전' 등을 통해 보여지듯, 여러 등장 인물들의 영웅적 서사가 ‘따로 또 같이’ 펼쳐지는 복합적이고 복층적인 스토리 구조를 갖고 있어,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이자 여러 세대에 걸쳐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는 초특급 문화상품 스타워즈(star wars)를 떠올리게 한다. HBO 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벤치마킹했다고들 하지만 필자 눈에는 구성상 스타워즈의 대서사와 더 닮아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별 생각없이  ‘킹덤’ 드라마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세자 이창이 좀비가 된 국왕을 베는 충격적인 장면에서였다. 하지만, 아무도 이 장면에 대해 필자만큼 놀라지도 않고 언급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이 장면의 의미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리즈에서 한국인의 눈에 가장 중요하고도 놀라워야 하는 장면은 좀비 떼들의 무시무시한 광속도 달리기 스펙타클이 아니라 세자가 부왕, 즉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이다. 

실제 조선시대의 의복과 장소를 그대로 재현한 바와 다름없는 이 가상의 동양 중세 국가에서 아무리 좀비가 되었다 한들 하늘과 다름없는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부모가 돌아가신 후 3년 상을 유교 원칙대로 치르느라 3년간 식음전폐, 이로 인한 건강악화로 각종 국정 차질, 국력 소모 등의 부작용을 겪었던 것을 보자면 상상하기 힘든 현대적인 접근이다. 

킹덤의 김은희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배고픔에 대한 인간의 고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는데, 필자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 인간본성과 인간조건에 천착한 김 작가의 기획의도와는 다르게 결과론적으로는 동양적인 가치관에 서양적인 가치관이 이식되어 현대적이고도 글로벌한 시각의 드라마 시리즈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시리즈는 특히 권력 투쟁 묘사에서 미국 HBO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많이 차용한 듯 보인다. 악당인 영의정 조학주 (류승룡 분) 성격과 행동 묘사에 있어 보여준 폭력성과 잔인성, 권력욕에 불타 아버지인 조학주마저 독살하는 딸 중전 캐릭터 등이 그러하다. 

한편, 배고픔을 참지 못해 좀비가 된 인간 군성들과 그들의 인간적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을 계발하고 성장해가는 세자의 이야기에서는 서양의 그리스 신화부터 미국의 스타워즈 사가(saga)에까지 관통하는 살부와 혁신, 성장의 드라마가 보인다. 

필자는 이 시리즈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가치의 하이브리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 하이브리드를 제외하고는, 만듦새에 있어, 제작비의 효율적인 집행이나 좀비 장면의 스케일에서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약간 떨어지는 부분이 보이는 등 결점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결점을 상쇄할 만큼 가치 하이브리드의 매력은 앞으로 한국 드라마 시리즈 제작에 있어 한가지 방향을 제시했다고 본다. 

또 하나의 문제는 비단 킹덤 시리즈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드라마나 콘텐츠 제작 전반의 문제인데, 우리의 제작 노하우 비교우위가 경쟁국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가치 융합 아닌 오로지 제작 측면에서만 본다면 방심하면 중국, 태국 등지에 금방 따라 잡힐 수 있다. 필자는 태국을 주목하고 싶은데, 태국이 우리보다 일찍 일본을 비롯한 국제화 자본에 노출되어 있어서 국제화라는 점에 강점이 있다. 

실제로 태국이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 판권을 사간 후 리메이크한 쇼는 복면의 화려함과 스케일에서  원조인 우리보다 국제적으로 더 큰 관심을 끌었다. 복면가왕을 리메이크한 미국 방송 관계자도  한국 오리지널보다 태국 리메이크판을 더 먼저 접했다고 한다. 우리는 가면은 수수한 반면 ‘인기, 용모 계급장 떼고 노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다’는 애초 연출 의도에 따라 출연자들의 인생 스토리와 토크 등도 강조를 한 반면, 태국은 보여주는 ‘쇼’에만 몰입한 것이 오히려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데는 강점으로 작용했다. 

끊임없이 내용과 형식상에 혁신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류 드라마나 콘텐츠는 언제든 금방 경쟁자들에 추월될 수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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