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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ine 육은주 Jul 26. 2022

애증의 386

누가 한류를 만들었나 2


제일 첫 주역은 필자가 속한 세대이자, 한때는 짧게나마 그 시대의 신세대였으나 현재는 정치적 민주화 가치를 독점하고 있다고 뒤세대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애증의 386’이다. 물론 386이 민주화 가치에 이어 한류의 가치까지 독점할 수는 없다. 386이 한류의 부상에 기여한 것은 대중문화를 사랑해 마지 않는, 대량 생산된 첫 세대였다는 의미에서다. 

386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매우 정치화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탈(脫) 정치화, 대중문화 대량생산의 첫 물꼬를 튼 세대이다. 386세대란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타난 집단적인 세대론의 첫 논의의 대상으로, 이제는 나이 들어 586이 된 지금까지도 인구분포상 가장 많은 퍼센티지를 차지하고 있는 대량생산 키드들이다. 초중고교까지 한 반에 70명이 넘게 구겨져 넣어 있던 엄청난 과밀학급과 2부제, 3부제 수업, 극심한 학벌쟁탈 대입 눈치경쟁을 거쳐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와 졸업정원제 폐지의 수혜로 엄청난 수의 대학생들이 대량생산되었다. 대학생은 80년대 이후 더 이상 과거같은 초엘리트 집단의 위상은 아니었다. 공장 생산식의 제너럴, 범용 엘리트들이었고, 386은 정치적으로는 '독재타도'를 부르짖는 극렬한 민주화 운동권 집단인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입으로는 ‘미제타도’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어린시절부터 '6백만불의 사나이','소머즈''맥가이버' 등 각종 TV 외화로, 미국 팝과 미국 영화로, 미국 대중문화의 세례를 흠뻑 받고 자라난 ‘할리우드 키드’들이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특성들이 386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으며, 이런 내적 갈등과 혼란 속에서 창작의 욕구, 문화생산의 에너지가 싹틀 수 있었다. 80년대는 또한 미국 헐리우드 영화의 황금기로 수많은 명작들이 생산되었고, 팝 음악에서는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을 시작으로 마돈나를 비롯, 수많은 록, 메탈 그룹들이 호령하던 미국 문화의 황금기이기도 했다.

봉준호 박찬욱 황동혁 감독 등 현재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감독들 모두 이런 80년대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그 시대의 아픔은 물론, 그 시대의 폭력적이면서도 묘하게 자유로운 분위기의 모순, 이런 이질적이고 충돌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작품활동의 자양분으로 삼은 명장들이다. 

한마디로 80년대 이후는 이런 이질적인 에너지들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발효되던 창작의 에너지가 분출되기 직전의 익어가는 시기였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봉준호 감독은 희대의 명작 ‘살인의 추억’을 통해 80년대와 그 시대의 억압적 정서를 미학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봉 감독은 2020년 폭력적인 미학을 가미한 블랙코미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부문 상을 수상한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한류의 원천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자기가 통과해왔던 이 시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문화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던 시대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사족으로, 개인적으로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기생충'으로는 코리아 프리미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은 영화 교과서에 실려도 아무 손색없을 만큼 플롯부터, 미장센, 음악, 라스트신의 임팩트까지 정말 잘 만들어진 최고의 명작이지만 2000년대 초인 그때만해도 '코리아 브랜드'가 약해 세계영화광들, 매니아들에게만 그 진가가 알려졌다.

아무튼 80년대부터 이어지는 90년대는 시네필(Cinephile), 영화광들의 전성시대였다. 문화에 관심있는 대학생이라면 영화관련 개론은 필수로 읽어야 했고, 에이젠스타인의 몽타쥬 이론부터, 타르코프스키, 장뤽고다르 등 예술영화 감독 이름 몇몇쯤은 줄줄 읊을 수 있어야 했고, 시네21, 키노 등의 영화잡지에서 필명을 떨친 영화평론가들이 스타가 되기도 했다. 학문으로 ‘글로 먼저 영화를 배운’ 그들은, 경복궁 뒤 프랑스문화원에서 매주 상영되는 프랑스 예술영화관람을 루틴으로 삼았으며, 남산자락에 새로 생긴 영화 아카데미에서 영화촬영기법을 배우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들끓던 문화창조의 에너지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나라 관객들의 영화 및 영상 관람 수준과 비평 수준이 엄청나게 까다롭고 높은 것도, 현존하는 한국 영화 대가들의 작품들이 프랑스 영화적인 예술성과 비판의식, 문제의식을 가진 동시에 할리우드적인 대중성과 재미를 겸비하고 있는, 세계 영화에서 보기 드문 특이한 지형을 점유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바탕과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받은 바 크다

또 386세대부터는 고학력 엘리트 계층이면서도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뛰어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 시작했고, 90년대부터는 이것이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순수한 대학생들의 음악과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90년대부터 대학가요제는 서서히 가수등용문이 되기 시작했고, SKY 학벌을 가진 대중가수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새로운 사운드로 새로운 음악시기를 연 신해철, 그의 그룹 '무한궤도'에서 파생되어 나온 '015b'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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