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런 날도 그저 너라는 걸 잊지 마
한동안 글의 소재 즉 쓰고픈 제목이 도통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서 날아오는 알람 메시지에도 무응답으로 답할 때가 많았습니다.(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딸아이와 함께 읽은 책을 통해 뭔가 스치듯 이야깃거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재우고는 곧바로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부터 평소와는 다른 감정에 휘몰아쳐 있었습니다.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일이었는데도 막상 닥쳤다 생각하니 그저 싫다는 감정에 아이를 대하는 태도마저 딱딱했습니다. 아이 역시 엄마의 달라진 태도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가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을 있는 대로 다 표출하고는 유치원에 등원할 정도였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마술에 걸린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급 변할 수도 있는 걸까? 자신의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도 아녔고 그렇다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 있었던 건 아녔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은 크게 요동쳤고 생각은 많았습니다. 결국 이유의 원인 즉 생각 끝에 결론을 내리진 못했지만 그저 복용하고 있는 약을 조금 줄여서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이유 없는 불안 증세가 있어 현재 정신과 상담과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 약을 줄인 이유는 사실 그동안 자신의 상태가 이전보다 많이 호전되었고 또 한 번 더 임신을 준비해 볼까 하여 교수님과 함께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였습니다.(늦은 감 있고 여전히 두렵지만 둘째를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쨌건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아침부터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려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뒤늦은 아침을 먹고 청소를 하고 밀린 일들을 찬찬히 처리해 나갔습니다. 집구석구석 정돈이 갖춰져 갈 때쯤 주방으로 건너갔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오늘 저녁에 먹을 음식들을 미리 요리하고자 했습니다.
시금치된장국에 팽이버섯 전 그리고 잡곡에 톳가루까지 뿌려 넣어 지은 밥까지 해서 후다닥 그리고 부산스럽게도 움직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배꼽시계도 울려줘 엉덩이를 붙이고는 늦은 점심까지 먹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었지만 문자가 띠링하고 울렸고
때마침 오늘내일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냥 오늘 해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까지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마치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을 향해 바로 운전대를 돌렸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저녁시간이 됐음을 알았고 그렇게 남편과 아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잠들기 직전 각자 또는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맞이하여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주말 시어머니 일로 잠시 청주에 갔다가 늦은 저녁 아주버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아주버님께서 제 아이에게 책을 한 권 선물로 주셨습니다.(현재 도서관에서 근무하시다 보니 가끔씩 책을 선물로 주시곤 합니다) 그때도 지금의 여유로운 저녁 시간에도 눈에 들어온 책제목이 참 맘에 들어 "한 번 읽어볼까"싶어 아이와 앉아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
제목은 '네 기분은 어떤 색깔이니?'으로 유명한 최숙희 작가님의 그림책이었습니다. 아이와 도서관에 갈 때면 줄곤 잘 빌렸던 책들의 작가님이라 친숙했었는데 이건 처음 보는 책이었습니다. 발행연도를 보아하니 2023년도에 나왔던 책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보진 못했던 책이라 그런지 괜스레 설레는 마음까지 들며 함께 책장을 펼쳤습니다.
사실 전 아이와 둘이 있을 때 "OO아, 오늘 네 하루는 어떤 색깔이었니?"라고 물으며 대화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저도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읽어가면서 책 내용이 우리 둘만의 대화와 닮아있었고 색이 말해주는 감정의 모습이 좀 더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어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이 역시 내용이 맘에 들었는지 한 번 더 읽어달라고 말했고 그러다 세 번째 읽어줄 때쯤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아이에게 "오늘의 하루 속 이러한 색이 있었니? 또 이 색은 있었니"라고 물으며 대화를 했었는데 유독 핑크색이 많은 좋은 날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였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도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전 팔랑팔랑 대는 설렘의 노랑과 알쏭달쏭한 기분의 보라, 급 화가 났던 감정의 빨강, 그러다 기분 좋은 핑크, 살짝 자신에 대해 실망감을 갖게 된 회색빛까지 하루 만에 오만가지 감정 속에 휩싸였었다고 자신에겐 그런 하루였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을 바라보며 그랬던 제 하루가 그마저도 제게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 문구 때문였습니다.
"내 기분은 알록달록 무지개색, 자꾸자꾸 달라져, 자꾸자꾸 달라지는 수많은 기분이 모두 나야, 모두 나를 이루는 색깔이야."
사실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과 솔직하지 못했던 모습, 괜히 눈치 보며 자신 없어한 초라함까지 드러날 땐 습관적으로 숨기고 싶었던 자신이었습니다. 당연히 좋게 보일 리 없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 행동들이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겁냈고 감추려 바빴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앞서 언급했던 책의 마지막 문구는 마치 더 이상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는 식의 위로처럼 들려왔습니다. 그 감정과 모습 또한 지금의 너를 이룰 수 있었던 색였음을, 그러니 자신이 가졌던 그리고 느꼈던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었고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줬습니다.
'불안'이란 감정,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의식하며 보이는 위축된 시선,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고 또 불같은 모습을 보였다가도 깊숙이 뻗어내려 가는 외로움이란 감정까지 이 모든 느낌의 모양들 또한 제 자신을 이뤄올 수 있었던 그저 하나의 색이었단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은 지나간 모든 색들의 감정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더 멋질 너의 색을 기대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전 살면서 자신이 겪었던 모든 일들이 훗날 어딘가에 다 쓸모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제가 그러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 감정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많다 여겼고 그래서 가지 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마치 모두가 인정할만한 마치 세상이 알아줄만한 긍정적이고 밝은 대체 감정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알게 모르게 스스로 자존감을 낮추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감정들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버려야 한다 생각된 감정들을 쓰레기 취급하면서 말이죠.
제가 가진 양면의 감정들 혹 확신을 주지 못했던 약간 애매모호한 감정들까지 더 이상 그러한 것들에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말자며 타일렀었는데 이제야 진정히 나를 바라봐주는 시간은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됐습니다. 이전과 달리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봐줘야 할지 이번 기회로 조금은 알 것만 같습니다. 바로 가지 칠 것도 버릴 것도 없는 나의 모든 감정과 생각, 행함의 다양한 모양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함을 말입니다.
오늘 아침 제게 일어난 여러 감정들, 확신 없는 무언가의 무언가가 섞인 마치 혼란스러운 생각 속 행동였지만 그래서 정의 내리긴 어려운 그런 하루였음에도 이 또한 앞으로의 자신을 이뤄갈 그저 그런 색깔의 하루였음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렸다가도 이 흔들린 모습조차 자신을 이뤄갈 그저 색 하나에 불과했음을 그러니 그 감정도 괜찮았다고 토닥여주고 싶습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는 당신의 감정은(기분은) 어떤 색이었나요? 혹여 원하던 색의 하루가 아니었다 하다가도 그마저도 의미가 있었고 꼭 당신의 인생에게서 필요한 색였음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