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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버릴 게 없었던

그저 나의 포트폴리오가 돼 가는구나

by 유우미


사실, 꼭 이뤄야만 하는 꿈이란 건 없었습니다. 그저 해야 할 것만 같았던 수능 준비였고 남들 다 가야 한다는 대학진학일뿐였습니다. 취업과 동시에 반짝하는 책임의식이 생겼을 땐 나름 사명감도 들었지만 결국 오래가진 않았습니다. 남들 다 오래 그것도 꾸준히 한 직장서 다니는 이들만 봐도 제겐 호기심 대상들이었습니다. 어쩌면 전 그들보다 참을성이 적었소명감이 그다지 투철하지도 않았으며 돈이나 명예에 욕심 또한 없는 사람였습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인생을 너무 애쓰며 살고 싶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현재 제 나이 38세로 경단녀 아줌마 명찰을 지니곤 있지만 아직까지도 제가 무엇을 하고 있지 않아서 또 뭔가를 이루지 못해서 아쉽다 하는 마음은 다행히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자신을 이롭게 또 남도 이롭게 하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작고 겸손한 관심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옛 직장동료와 잠시 담소를 나눴습니다. 어학원에서 만났던 우리, 둘 다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였습니다. 지금은 각 가정의 아내로 아이의 엄마로 즉 각자의 경단녀란 꼬리표를 달고서 만났지만 말입니다. 저흰 꽤 비슷한 점이 많았었습니다. 외국어를 전공한 이들에게 한 때나마 외국어는 일할 수 있는 수단이자 도구일 수 있겠지만 결혼과 동시에 엄마가 된 이상 바로 돌아갈 직장이란 건 딱히 없었습니다. 꾸준히 그것도 틈틈이 공부란 걸 하지 않는다면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었는지 그때만큼 자신이 누구를 가르친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랬고 그 옛 동료이자 아이를 키우는 그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나이만 갖고 우린 이제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도 신중하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모한 도전을 할 만큼 패기가 있는 것도 아녔고 그렇다고 가정을 내팽개치고 워커홀릭처럼 불사르며 일할 수도 없는 처지인 경단녀들의 삶. 그래서일까 저희 둘은 꽤나 깊고 무거운 대화를 이어가게 됐지만 사실상 잃은 만큼 또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된 것도 있으니 육아 덕에 경험하게 되는 것의 감사와 예상치 못한 재미가 있음을 중간중간 끼워 넣을뿐였습니다.




그 와중에 감사했던 건 나란 사람은 그래도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는 직종에 속해있었다는 것였다. 바로 어린이집 보육교사. 한때 외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퇴근 후 밤늦게 보육교사 관련 공부까지 했던 자신의 20대는 정말 파란만장했습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쫓겼고 둘 다 허투루 할 생각은 없었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전부일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을까 지금 와선 "불가능했을 거야" 싶었지만 한편으론 그 직종 또한 나의 포트폴리오 한 장으로 채울 수 있어 다행인 시간였다고 생각합니다. 눈물 나게 열심히 살았던 그 지난 삶은 지금의 삶을 그나마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아주 고마운 시간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일까 전 여전히 제게 남아있는 열정, 무언가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스스럼없이 도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당시 저는 꽤 기나긴 쉼을 갖게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아이가 엄마와의 관계 속 안정을 찾아갈 때까지 저는 육아에 진심으로 임했습니다. 틈틈이 책을 읽었고 제 아이에게 적용해 갔습니다. 그때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자신의 일상을 여기저기 기록하다 보니 블로그나 인스타로 협찬 제의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글을 쓴다는 것으로 누군가의 사업을 도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남편은 자신을 사업 파트너 삼으며 잠시 잠스마트스토어로 물건까지 팔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로서의 자질과 여러 가지의 준비가 부족했던 지라 또 육아와 같이 병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제게는 맞지 않은 상황였습니다. 그렇게 온라인 쇼핑몰 사업은 자연스럽게 접게 됐지만 그 순간 또 다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아이가 이유식과 유아식을 진행할 때쯤 저는 아이를 위한 건강한 간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창업을 준비할까도 했었습니다. 떨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불현듯 피어난 자신의 열정은 때마침 창업의 기회를 갖고 지원해 준다는 공기업 면접관님들에게 관심을 사게 되었고 대전서 유명하다는 성심당 제과점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유용하다 생각된 강의 내용과 현장 실습 그리고 어떻게 마케팅을 하며 지금의 성심당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옆에서 직접 보고 배웠던 귀한 경험였습니다. 이후 채용에 관한 제안도 있었지만 고심 끝에 결국 육아를 1순위로 결정하곤 정중히 거절 또한 했었습니다. 누군가는 육아가 다가 아니라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제겐 그게 그렇게 쉬운 선택은 아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저는 풀타임 근무를 구하진 않고 있습니다. 남편이 대신 육아를 하면 어떻겠냐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 당시 남편은 육아에 자신이 없었고 아이는 당연히도 엄마와 있는 시간을 더 선호했기에 저 역시 모든 순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나라는 사람이 하고파 했던 일들은 또 우연히 해보게 된 경험들은 '사실상 한 번쯤 해볼 만한 귀한 경험였다'는 추억거리가 될뿐였습니다. 때론 그 1순위란 육아에 지쳐 병이 날 때도 있었고 마음이 어려워 정신과 병원을 찾기도 했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과정이 어떠했듯 그때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였습니다.


육아, 저에겐 이만한 직업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엄마라는 직업은 그 어느 직업보다 정말 보람 있고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하게 되기 때문였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자신 또한 함께 성숙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자리이기도 했기에 아이를 원하시지 않는 부부에게조차 오히려 아이를 권장할 정도의 사람이 되기도 했기 때문였습니다. 그렇게 육아는 자신의 영원한 동반자이자 육아란 직장의 사장님이 바로 자신이었다는 것에 지금으로선 참 감사할 따름였습니다. 육아를 하며 얻게 된 장점 중 하나는 바로 몰랐던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는 것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새로움은 또 시간이 꽤 지나고 다른 호기심과 열정을 낳았습니다. 보육교사 자격증에 이어 저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파 내 아이를 더 잘 알아가고파 '장애영유아를 위한 보육교사' 과정을 공부하기로 맘먹었기 때문였습니다. 30대 중반이 되어 오랜 시간 노트북 앞에 앉아있자니 정말 쉽지 않은 시간였습니다. 때마침 아이는 유치원을 다녔던 때라 등원 이후엔 여유가 좀 있었는데 그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여러 일들을 처리해야 했기에 결국 진짜 집중하며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육퇴 이후밖엔 없었습니다. 밤늦게까지 강의를 들었고 과제를 준비했으며 조원들과 토론에 중간 기말고사 시험을 학기마다 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격확인서까지 받아가며 제가 이뤄낸 결과는 사실상 자신의 육아를 좀 더 지혜롭게 이끌어갈 수 있게 되었고 풀리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의문들과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꼬여있던 것들을 많이 풀게 된 시간였습니다. 결국 또 한 번 제가 도전했던 것은 이전보다 더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분위기와 남편의 태도마저 조금씩 바뀌었고 저는 또다시 하고팠던 것들을 새로이 도전하게 되는 오늘날의 제가 되어있었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허락될 땐 간간히 어린이집으로 출근을 합니다. 즉 교사로서의 삶을 다양한 모양으로 지속하고 싶어 비록 정해진 날짜에 대신해서 교사 역할하는 대체교사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육아를 유지하며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토대 삼아 더 많은 아이들을 제 안에 품고 사랑해 줄 수 있어 감사할 뿐입니다. 또 여전히 제 안에 주눅보단 그래도 한 번 더 해볼까 하는 용기가 조금 남아 있기에 저는 계속해서 몰랐던 자신을 찾아가며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이전 동료가 보청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동료 역시 함께 이전 어학원서 강사로 만났던 인연였는데 뜬금없이 웬 보청기 사업? 이라니 하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동료를 만나고 나니 별안간 새로운 도전의식과 이전에 없던 또 다른 새 용기에 그 순간 당황하는 자신이었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제가 상상했던 어떠한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바로 아이라는 영역과 베이커리의 조화, 기회 될 때 '아동베이킹지도자' 자격을 따 놔야지 했는데 잊고 있었던 자신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하면서 바랐던 건강한 간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것,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테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포만감까지 전해줄 수 있겠다는 기쁨에 다시금 소망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래서 자신의 지난 삶들이 필요했구나 아니 이건 필연적인 사건들과 상황 들였구나 싶었습니다. 외국어를 전공하며 만났던 아이들, 그 아이들을 조금 더 세심히 돌보고 싶어 공부했던 시간들, 교사로서 엄마로서 살아왔던 수많은 경험의 시간들은 제 안에 수많은 것들을 깨우며 베이커로 무언가의 사업가로 조금씩 자신을 키워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삶 더 나아가 앞으로 제가 살아갈 삶을 위한 여러 장의 포트폴리오를 채워갔던 것일뿐였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지나온 자신의 도전들과 짧지만 해보면 좋겠다는 경험들 모두 역시나 하나 버릴 게 없던 것였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앞에 앉아있던 그 우연히 만났다는 옛 직장동료에게 저는 말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고 그러니 제한 두지 말라고, 가장 먼저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몰랐던 자신을 알았을 때 그 순간 한 번쯤 해봤음 하는 것들이 떠올랐다면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시도하길 바란다며 권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제게도 여전히 해당된다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녀는 이런 자신을 보며 조금은 용기를 가졌다고 말해줬습니다. 사실 도 그녀도 우리가 나중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선으로 봤을 때 경단녀가 되었기에 또 다른 꿈을 꿀 수가 있고 또 다른 모험을 시도해 볼 수도 있는 시간이 어쩌면 지금의 이 시간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경단녀가 되었다고 두려울 수 있습니다, 막상 이제 와서 무슨 일을 해보면 좋을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좀 더 투자해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었였는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음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나만의 길은 열리고 그 길로 천천히 걸어가는 당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자신과 비슷한 이들에게 지금부터라도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아주 즐겁게 채워가길 제가 응원하겠습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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