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이를 통해 배우게 된 것

거리 두기보단 품어주기

by 유우미


아이가 올해 새 학기를 시작할 무렵 우연히 알게 된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 생각이 겹칠 때 많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말투라던가 편견 없이 반응해 주는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이 친구 엄마들과는 너무 깊게 관계 맺지 말자는 주의였었는데 이 분을 만남으로써 처음으로 그 선을 넘어보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엄마들 역시 금세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 간의 관계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난감해하는 건 엄마들 몫이었습니다. 둘 다 여자아이였고 6살이면 감정의 섬세도가 최고치를 달릴 때 많아서인지 5분 간격으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아직은 서로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도 느껴지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도 두 아이 다 미숙했기에 겪어야 하는 배움의 과정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엄마들은 이를 지켜보며 간섭하게 되면서도 안타깝고 인내심이 필요한 시간였습니다.


한 번은 유독 나의 아이와 그분의 아이가 만나면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경쟁심을 갖고 질투심을 곧잘 느꼈기에, 잠시는 좋아라 하며 상대를 챙기다가도 찰나의 순간 토라지면 앞으론 다시 안 볼 사이처럼 구는 두 아이의 모습 때문에 엄마들은 그 사이에서 곤욕을 치러야 했기때문였습니다. 아이들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엄마들 간의 사이 역시 묘한 긴장감이 흘렀고 자칫 잘못하면 어른들의 감정싸움마저 될 것만 같아 조금씩 의식하며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다가도 시시때때로 바뀌어가는 아이들 장단에 어른들이 너무 놀아나면 안 될 것만 같아 스스로 먼저 평정심을 유지해야겠다 맘먹기도 했는데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 아이가 상처받았음을 감지했을 때 상대 아이와 엄마가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럴 수 있지 넘어가도 됐을 법 한데 그 마음이 잘 드러나지 않았었습니다. 뒤늦게 아이와 아이 엄마는 저와 제 아이에게 연신 사과를 건넸지만(웃으며 그럴 수도 있지 않냐며 멋쩍은 듯 넘어갔습니다) 어쩐지 이전과 동일하게 대화하기란 쉽지 않은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른이란 이름으로 좀 더 의연하게 태도를 취하고 싶었지만(아무 일 없었다는 식의) 그러지 못한 걸 보니 저 역시 좀 더 철이 들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역시나 '거리두기'가 답일까 싶었습니다. 초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한 언니에게 이 일을 고민처럼 얘기했더니 단호히 돌아왔던 답변이 바로 거리 두기였었는데 역시나 이 방법이 최선일까 싶어 그래볼까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의 태도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등 친구인 그 아이를 챙겼고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며 놀다가도 또 싸울지언정 그러거나 말거나 붙어 다니며 놀기 바빴기에 저 혼자 거리 두기를 한다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였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그 사랑의 태도는 어느새 제게도 전염이 되어 생각의 방향을 바꾸게 했습니다.


바로 '그럼에도 품어주기'라는 마음의 태도를 말입니다. 다음날 또 제 아이는 상처받고 상처를 준 그 아이는 여전히 상황을 피해버리며 도망 다녔는데 엄마들은 또 난감한 상황이 되었던 그때, 저와 제 아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서로 간에 오해하고 있던 마음은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조금씩이라도 전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면서 말이죠.(6살이면 그래도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은 배워야 하는구나, 배울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원함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스스로의 감정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상대의 감정 또한 헤아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봐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각자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미숙하더라도 대화하려는 노력까지 말입니다.


어쩌면 어른인 저조차 쉽지 않을 때 많기에 요즘은 아이와 집에서 대화 연습을 합니다. 혼자서 크는 아이다 보니 부모인 제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를 자주 하려 합니다.


요즘 제 아이는 천천히 거절하는 연습부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 상대와 대화를 시도할 때 의사를 묻는 것과 기다려주는 태도까지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밀어내고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닌 자신과 더불어 다른 이마저 온전히 사랑해 갈 줄 아는 즉 시행착오를 겪여 어우러짐과 포옹력을 배워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제 아이는 지금 갖고 있는 그릇보다 더 큰 그릇이 되어 수많은 이들을 품고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늘 바라왔던 진정한 사랑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생활 즉 인간의 사회성은 겉으론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겠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의 신념과 마음가짐, 태도의 방향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상대를 대할 때 어떤 사람으로서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부모로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며 타인을 대하고 있었는지, 그동안 맺고 싶어 했던 관계가(거리두기 또는 밀어내기, 원하는 모양의 사랑만 유지하려 하기) 정답이 아녔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짜 서로를 위한 관계 맺기란 바로 이런 것,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품어주고 온전한 사랑을 주기까지의 시행착오를 함께 겪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 배우 송강호 씨가 후배 배우한테서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게 많다며 칭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 엄만 당신이 자신보다 더 많이 경험하며 살아왔다는 이유로 스스로 내린 정답만을 가르치기 바쁘셨는데 전 오히려 요즘 제 아이를 통해 진짜배기 사랑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배움은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생각지 못한 이들을 특히 어린아이를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