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남겨진 '용서의 마음'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친정아빠가 지인을 따라 들어간 곳은 한 휴대폰 대리점, 그곳에서 새로 폰을 개통하면서 사건이 시작됐습니다. 쓰시던 폰이 고장 난 것도 아녔고 아직 4개월의 할부금도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왜? 바꾸셨을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아녔습니다. 이 사건의 진짜 문제는 폰을 바꾸며 제대로 된 혜택을 받았다기보단 오히려 손해라 생각되는 계약조건때문였습니다.
폰을 바꾸면 위약금이나 이전 단말기의 할부금을 면제해 주겠단 조건도 있었습니다.(실제로 대리점에 가보니 크게 광고를 해 놨더군요) 하지만 저희 아빠는 예외였나 봅니다. 오히려 이전 것과 새것의 할부금을 동시에 충실히도 내야 할 이중계약이 되어있었기 때문였습니다. 또 새 폰은 3년 약정의 5만 원가량의 요금제로 가입이 되어있었고요. 참고로 저희 아빠는 퇴직하시고 폰 쓸 일이 거의 없어 4만 원도 안 되는 알뜰요금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가입을 하게 하셨을까 조금이라도 받는 혜택이 있었나 싶었지만 보험부가세라는 명목으로 6천 원과 9천 원짜리의 두 금액마저 달아놓았던 상태였음을 보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자 돌아오는 담당 직원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했습니다.
이미 아버님께서 이와 같은 조건 하에 사인을 하셨다, 그리고 폰이 개통된 상태에서 단순 변심이란 이유로 취소할 수는 없다. 어딜 봐서 의문을 제기한 게 단순 변심으로만 보이셨을까 싶었습니다. 그 순간 그분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쳤고 이젠 조건 변경도 아닌 개통 취소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아무런 혜택도 없이 말도 안 되는 보험부가세, 충분히 알뜰요금제를 권할 수도 있었을 텐데 3년 약정의 값비싼 요금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은 상황 전개였기 때문였습니다. 그런데 취소는 무조건 안된다는 직원의 답변은 점점 더 의혹을 불러일으켰고 갑자기 합의를 하자는 식의 이상한 조건을 제시하였습니다. 급 이전 단말기의 할부금 면제와 새 폰으로 바꾸고 나서의 요금제 또한 원복, 그리고 그렇게 안 된다 했던 약정기한과 요금제 변경도 해주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미 의심을 넘어 불신이 생겼을 때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약 당시 지면으로 된 계약서에 서명한 아빠의 사인과 직원분이 사용하는 패드 상의 사인이 전혀 다르게 표시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인에 대한 해명을 들으려 하자 전혀 다른 얘기로 얼버무리는 직원의 태도 심지어 얘기 끝에 나오는 그분의 목적, 바로 '실적'이었습니다. 개통 취소는 자신의 실적에 영향을 끼친다며 그 부분에 대한 손해를 제게 따지는 것이었기 때문였습니다. 너무 황당한 나머지 더 이상 이 분과는 대화할 필요를 못 느껴 바로 전화를 끊고는 고객센터에 문의했습니다.
고객센터로 연결된 직원과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그분은 제 상황을 자세히 공감해 주시며 바로 상위부서에 보고서를 제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바로 대리점 직원에서 연락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개통취소를 도와주겠다고 말이죠. 고객센터 쪽에서 이야길 잘 전달해 주신 덕분에 문제는 해결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게 남아있던 황당함은 결국 그 직원의 뻔뻔한 태도에서 화로 변질 돼 터지고 말았습니다. 또 한 번 자신의 실적 이야길 던지며 만약 폰에 흠집이 나면 당장에라도 취소는 없다는 식의 협박, 드렸던 물품들 모두 고스란히 갖다 달라는 무례한 말투는 정말 고객을 고객처럼 대하며 물건을 파는 게 맞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계약 상황 당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해당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다고 판단되는 상태) 정직하게 판매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뭐라 한 마디 정도는 하시지 않을까 했는데 기대 이상의 어이없는 답변을 듣고는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습니다. 계속해서 퉁명스럽게 말을 이어가자 "입장 바꿔 당신에게도 부모님이 계시지 않느냐, 당신의 부모님께도 그렇게 판매할 수 있느냐" 물었더니 그제야 말을 멈추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급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게 될 법한 상황 아니 더 과장되어 누군가에겐 악행으로 비칠만한 상황을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그 직원과 그렇게 일하게끔 닦달했을 사장님을 비롯해 살기 어려운 이 사회마저 회색빛으로 보일 뿐이었습니다. 특히 그놈의 실적이 뭐라고, 자신의 양심마저 팔아버렸을까 심지어 그러한 행동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 구는 태도에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그분은 더 이상 제게 아무런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대리점 방문만 부탁하셨습니다. 곧 아빠와 함께 찾아뵙겠다며 직원 분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대리점에 찾아 간 날, 전 드디어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180도로 바뀐 직원의 태도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마치 고객을 왕으로 생각하며 응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아부에 곁에 있고 싶지도 않아 멀찍이 떨어져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내용들, '양심 있게 판매하겠다', '고객님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최고의 폰으로 보답해 주겠다'하는 느낌의 문구들 앞에 참았던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밖에는 버젓이 '이전 단말기 할부금과 위약금 모두 면제!'라고 세워 둔 표지판을 더불어 사은품으로 라면 한 박스와 여러 실용성 있는 물품들까지 제공한다며 써붙여놓은 걸 보곤 애써 누르고 눌렀던 화가 또다시 올라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하진 않았지만 이들의 정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들 앞에서 실망감에 얼굴을 들 수조차 없었습니다.
원만하게 개통취소가 이뤄질까 했는데 갑자기 이번엔 보증보험사 측에서 해킹 오류가 떠 전산상 문제가 있기에 바로는 또 취소가 어려울 것 같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전의 할부금이 문제가 되어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취소도 여렵다하는 것였습니다. 그 순간 "사전에 할부금 좀 면제해 주지 그러셨어요"라며 너스레를 떨자 아무 말 못 하는 직원, 덩달아 옆에 있던 직원분들도 저를 피하시는 게 느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보험사 측에서 오류가 해결되면 연락을 주겠다 해 대리점을 나서려는데 혹시 받아야 했던 사은품이 더 있었냐 그럼 돌려드려야 할 것 같은데 뭐 없었냐 물었더니 달랑 우산 한 개뿐이었습니다. "창문에 써 붙인 수많은 사은품은 그럼 누구를 위한 걸까요?"라고 또 한 번 웃으며 한 마디 내뱉자 돌아오는 건 직원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도대체 고객을 위한다는 부분은 어디 포인트에 있었던 걸까 시종일관 마음에 우울함이 가득해 그곳을 급히도 빠져나왔습니다. 그러고 나서 여전히 보증보험사 측의 해결만을 바라며 최소 처리가 되길 기다리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늘 아침 OO고객센터 상위부서 즉 과장님 급 되는 분께서 제게 전화를 주시곤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 후속 조치가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신경 쓰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였습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될 일이었나 그들은 나에 대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점점 무겁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그저 이 사건이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통화하며 힘을 다 빼고 나니 또다시 밀려오는 사람에 대한 허탈함, 그리고 인간의 추악함이 보였습니다. 직원을 탓해봤자 그 사람은 그저 그렇게 일해야 할 것 같아 했을 테고 그 대리점은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으려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라도 운영을 하려 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였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더 이상 누구를 탓하지도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이제는 화가 아닌 '용서의 마음'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이전에 자신의 집에 찾아온 요양보호사가 물건을 몰래 조금씩 훔쳐갔을 때도 할머닌 그분을 불러다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새로운 사람으로만 교체를 원했을 뿐 그 사람의 잘못은 스스로 뉘우치길 바랄 뿐이셨습니다. 만약 할머니께서 지금 살아계셨다면 제게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하지 말라고 이제는 용서하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았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고 한계가 있으며 하는 모든 일에 완벽할 수도 정직하게 행하지도 않음을 잘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신 이외에 모든 존재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고 그저 그러한 자들 앞에 더 이상은 힘을 빼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한 상황 속에서 아직까지도 그 사람들을 어떻게 믿냐는 엄마의 불안 섞인 전화 너머로 "엄마 이제 그만,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우리 그저 원만하게 일이 잘 해결되도록 기도하자." 말씀드렸습니다. 상황도 사람도 그 어떤 것도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면 그 순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과연 신은 이미 벌어진 사건을 통해서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 말입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봤습니다.
목적이 선을 가리키려면 과정 또한 선으로 메꿔져야 함을 말입니다. 목적이 선으로 향한다 해도 방법이 선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만을 꾀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것은 선으로 보일 뿐 숨겨진 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전 더 이상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말도 더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연락 오는 그 직원에게조차 더 이상은 그 말을 말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상위부서 과장급 되시는 그분께도 그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뿐 이제는 벌어진 일만 잘 해결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모두와 원만하게 지내긴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뜻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도 있을 테도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사람들조차 만나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것만 챙기려 하기보단 더 이상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서를 택하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선으로 가는 목적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은 스스로를 돌아봐 깨달음이 있는 여지를 남겨두도록 말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먼저 '평화의 도구'가 되어 나아갔을 때 이뤄질 수 있는 미래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니 오늘 누군가를 미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면 아주 잠깐은 자신을 위해서 '평화의 도구'가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삶 또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