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번성하리라
7월이 다 끝나갈 때쯤 그날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바빠졌던 건 8월, 그리고 9월에게 손인사 하게 될 때쯤? 잠깐의 쉼표란 걸 찍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잠시 책을 읽다 쓰고 싶은 고백이 있어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사실상 대단한 고백이라기보다 혼자만의 독백 같은 일기를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읽었던 페이지 속에는 '지나갔으니'라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번성'이란 단어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무엇이 지나갔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삶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이 번성하길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문득 꽤나 힘들었던 시간들만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잊고 싶어도 사실상 잊히기 어렵다거나 시간이 꽤 흘러야 희미해져 가는 그런 순간들 말이죠. 유년시절 어딘가 꼭꼭 숨겨놨던 혼자만의 열등감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끔 동력은 됐지만 늘 불안했습니다. 점점 더 커져가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나선 더 잘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자퇴와 자살까지 머릿속에 그리기도 했습니다. 운 좋게 교환학생을 다녀왔지만 생각지 못한 여러 일들로 없던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있던 자신감은 바닥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이란 게 흘러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나름의 사회생활도 열심히는 했지만 깊이 잠재되어 있던 이유 모를 불안들은 결국 제 발목을 붙잡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 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는데 과정은 늘 부딪힘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후 한 번의 유산 그리고 천사 같은 아이를 만나게 됐지만 선천성 질환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편히 자 본 적 없는 마치 불안과 또 다른 불안이 마구 뒤섞인 시간이 있었습니다. 온갖 스트레스로 응급실도 여러 번, 몸과 마음이 망가져갔던 자신였습니다. 그 여파는 자연스럽게 불편한 부부관계로, 불안정한 아이와의 애착관계가 되어 끝이 없는 깜깜한 동굴 속을 거닐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다 간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시금 병원 문턱에 들어섰고 조금씩 삶의 균형을 맞춰가려 애썼던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자신의 자존감은 점점 더 회복돼 가고 가족들과의 관계 역시 평화를 맞이한 날들이 많아져 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 자신의 달란트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주 가끔씩 일이란 것도 하고, 다니는 교회에서는 봉사도 열심히 하는 요즘입니다.
이렇게 지나고 나니 또 지나고 보니 말입니다. 이제까지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더욱 실감이 납니다. 그땐 정말 힘들고 아팠던 시간들로 여겼었는데 지금의 자신을 사랑해서인지 요즘은 되려 감사로 다가오는 시간 같습니다.
성경의 한 인물 중 요셉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형들에게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였고 결국 그들에 의해서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낯선 땅에서 오해받아 감옥살이에, 참 쉽지 않은 일들 여러 겪게 되지만 그는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두 아들을 낳게 되는데 첫째를 '잊게 하다'라는 뜻의 므낫세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과거의 고난과 상처를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했음을 의미하죠. 그리고 두 번째 아들을 낳는데 '열매를 많이 맺다'라는 뜻의 에브라임 이란 이름을 지어줍니다. 바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었고 지나간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졌음을 믿고 고백하는 의미로 말이죠. 그래서일까 이제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미래를 향한 소망을 품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느끼는 감사에는 평소 느끼는 감사의 깊이와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아직 그 상처란 시간 속에서 나오길 꺼려하는 삶의 조각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조각마저 언젠간 빛 가운데로 나와 그 시간이 있었고 지나갔기에 미래의 자신이 되었다고 감사 고백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삶이 아직은 터널과도 같은 시간 속에 있다면 그저 힘내라고, 다 잘 될 거거라고 저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지나갈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시간이 당신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분명 고통일 테고 아픔이겠지만 그 시간을 그저 흘러가게 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시간이 있어야 훗날의 당신으로 빚어져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그 시간도 그저 당신의 일부가 될 것을 잊지 않았음 합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하루가 온전히 지나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읽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Roman Skrypn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