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한다

하나님의 부르심 #1

by 유우미


먼저 J와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가긴 했지만 정작 J에 관해선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려하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었는데 동아리 홍보차 왔다면서 자연스럽게 선배의 권유로 한 기독교 동아리에(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들어갔다. 그리고 1대 1 매칭이 된 한 언니와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J의 존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것이 나와 J의 첫 만남이자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2)


J와의 만남은 매일 지속되었고(아침에 일어나면 성경말씀을 조금씩 읽었다, 말씀을 읽으며 J의 존재에 대해 그분이 하시던 일에 대해 알아갔다) 만남 속 관계가 깊어갈수록 J는 늘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같은 상황 속 저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말이다. 그리고 점차 자신의 모든 것을 입으로 내뱉길 원하셨다. 심지어 차마 입 밖으로 내뱉기 민망한 생각들조차도 말이다. 그렇게 세상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J와의 대화는 되려 자신만을 향한 깊은 사랑의 관심으로 다가왔다. 결국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더욱 특별한 관계로 새로이 지어져 갔다.(성경의 시각으론 이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이라 이야기한다)




1년이 지났다.


그리고 J와 자신이 이전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몰랐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고 주변에선 얼굴 표정과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다는 얘길 자주 했다. 열등감과 겁 많던 사람이 어느새 만족과 평안이 가득 찬 삶으로 살아가는 줄였다. 물론 늘 좋았던 순간만 있었던 건 아녔다. 때론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망도 했고 바랐던 것에 아무런 대답 없는 기다림의 순간도 많았다. 또 타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했던 것들이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날 때면 이전 습관 즉 도망치거나 눈속임을 또다시 하기도 했다.


이전과 새로운 삶 중간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J는 책망보단 한결같은 사랑으로 다가오셨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로 재듯 훈계하려 하기보단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채 다음은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란다는 자비와 용서의 손길만 내밀고 계셨다. 사실 J앞에 설 때면 꼭 발가벗은 느낌였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훨씬 자유했고 평안했다. 겪게 되는 모든 일 앞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속에서 오로지 자신만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저 나는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해가며 살아갔을뿐였는데 삶의 모습은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J는 '그럼에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는 사랑의 속삭임에 끝이 없었다. 그 결과 이젠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태도와 행동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도 겉핥기식의 사랑법이 아닌(잠깐의 만족만 주는 사랑법) 자신의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늘 부족하다 여겼고 만족을 몰랐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해야 될 사람들을 사랑은커녕 용서조차 못했던 자신였는데(자기 연민에 빠져 이기심만 가득했다) J는 어느 순간 J를 닮은 자녀로서 사랑을 하게끔 했다. 그것도 넘치는 사랑을 표현할 수도 있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저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J만의 사랑법이었다.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상황 그리고 사람들) 그럼에도 사랑할 수 있는, 마치 자신은 더 이상 줄 수 있는 사랑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병이어의 기적처럼(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몇 천명이 함께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는 성경 이야기) 퍼붓고 퍼부어도 흘러 너무 칠 수 있음의 사랑법이 바로 J만의 사랑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모든 면들을 온전하게 또 유일하게 다 받아준 분이 바로 J였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법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또 한 가지 이 사랑법은 모든 이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실였기에 더더욱 당신도 경험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써봤다. 이제 당신이 주인공 되어 새로운 삶의 첫 페이지를 시작할 수 있음에 확신한다.




언제부턴가 J의 깊고도 넓은 사랑 앞에서 때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신다는 감격에 겨워 하염없이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그것이 눈물이었는지 쌓아뒀던 '죄'라는 뭉텅이였는지 뭐가 됐든 두 가지 다 멈추지 않고 터져 나왔다.



성경에서 정의하는 죄란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해서는 안 될 행동 즉 강도 살인 도적질 등을 하는 것이 죄이고, 해야만 하는 행동 바로 부모 공경이나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 정의한다. 또 미움, 시기, 질투 등 상대를 향한 부정적 마음을 품는 것도 죄라 말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눈물, 콧물이 뒤섞여 범벅이 됐던 날이 몇 차례 있었다.


그것은 이전엔 없던 습관, 바로 회개의 시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스스로 그렇게 인정한 순간 모든 것이 안 좋게 흘러갈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역시 그랬다. 그랬던 자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거의 고해성사 급이었다. 때론 다른 이에게까지 터놓을 수 있을 만큼의 용기도 생겨났다. 부끄럽고 추했기에 숨기고 싶던 것들이(성경에서 말하는 '죄') 이제는 오히려 빛이 있는 곳을 향해 드러내기 바쁜 시간 들였다.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날수록 그 죄에 따른 책임을 J가 대신 지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선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6)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다가오셨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 사랑이다.(그때 당시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하셨기에 그저 묵묵히 죽기를 순종하셨다)

아무런 자격 없는 자신을 대가 없이 오직 사랑으로, 저자의 죄에 대한 결과를 J가 대신 죽음으로 책임지셨다. 이것이 바로 회개 가운데 허락된 J만의 사랑, 십자가 사랑이었고 바로 은혜 중 가장 큰 은혜였다.




회개.


그저 자신의 연약함, 추악함 등을 드러냈을 뿐인데 동시에 자신을 인정하는 시간도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은 ''하지 않게 되었다. 벌어진 상황, 그때 만난 사람들, 내게는 없는 무언가를 향해 화내지 않고 화를 품지도 않았다. 오히려 같은 상황, 같은 사람들로 인해 벌어지는 것들 속에서도 받아들이는 태도가 자랐고 되려 자신의 속생각 속마음에 진실되게 다가갈뿐였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 조금씩 달라지더니 변화의 시작점엔 항상 자신의 방향만이 중요할뿐였다. 이제는 모든 변화의 시작이 자신에게서 비롯됨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중심엔 J가 보여주신 사랑이 깃들어져 있을 때 가능함을 믿는다.




저자에게는 자라오며 겪은 일들로 사랑의 한계가 있다.(추후 천천히 풀어볼 예정이다) 이만큼은 줄 수 있겠다 싶어도 그 이상을 주긴 어려운 사람이다. 아니 줘야 될 사랑 앞에서 손 내밀기조차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오직 J와의 사랑을 기억하려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던 J를 떠올리며,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죄마저 떠안은 J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제는 J가 보여주신 사랑만으로 살아가려 한다.


'사랑은 이런 거야'라는 인간의 잘못된 기준에 얼굴을 돌리기로 했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변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이 정의하는 사랑 역시 언제든 바뀔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 때문였다.


혹 이제는 좀 다른 사랑을 해보겠노라 한다면 용기를 내길 권면한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J와의 사랑을 해보길 말하고 싶다.

일요일 연재